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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민'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 토베 얀손의 평전이다. 얼마 전 아내가 무민 시리즈와 이 책을 구입하였기에, 무민 시리즈를 읽고 이어서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가장 주체적으로 살았던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남성중심적 제도와 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20세기 중반 북유럽에서, 여성 예술가로서 살아온 토베 얀손의 이력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각가 아버지, 그리고 기존 체제에 익숙하지만 변화를 꿈꾼다고 여겨지는 미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토베 얀손은 태어났다. 존경하지만 두려운 아버지와의 긴장 관계가 지속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토베 얀손이 집을 떠나 독립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설명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좌파적 이념이 압도하는 유럽 미술계의 분위기에서도 좀처럼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토베 얀손은 반전주의에 대한 인식만큼은 확고했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스스로의 삶과 예술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무민 동화를 쓰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였다. 유럽에서 무민 동화가 인기를 얻게 되었음에도, 초기에는 핀란드에서 오히려 무민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냉담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핀란드의 국민적인 캐릭터로 자리를 잡았지만, 무민이 처음 탄생할 무렵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성애가 죄악시되던 당시 유럽의 문화에서 성 소수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2차대전이 벌어졌던 상황에서 미술가로 활동을 했던 토베 얀손 역시 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은 아무런 경제적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토베 얀손은 미술가로 알려지면서 벽화와 회화는 물론 신문에 장기 연재하던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무민 동화가 점차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경제적 안정도 얻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토베 얀손의 일대기는 물론 무민 캐릭터의 탄생과 각 작품이 지니는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민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자유분방함의 원천이 바로 작가인 토베 얀손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장의 제목은 '아버지의 조각, 어머니의 그림'으로, 토베 얀손의 예술적 재능이 부모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와는 평생 성격과 관점의 차이로 갈등을 빚었으나, 예술가로서는 아버지를 존경하여 <조각가의 딸>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남성중심의 문화 속에서 가사와 일을 병행해야만 했던 어머니를 보면서, 아마도 토베 얀손은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을 것이라 이해된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는 것을 끔직하게 여기고, 특히 수학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기질이 무민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무민 골짜기에 학교가 등장하지 않고 권위적인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청춘 그리고 전쟁'이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화가로 성장하면서, 당시 전개되던 전쟁 상황에 반전주의자로서의 삶을 다루고 있다. 특히 잡지에 일러스트 작품들을 게재하면서, 반전주의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게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미술가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미술가로 활동하면서, 또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삶에 대해서는 3장의 '일과 사랑'이라는 항목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시절부터 무민 캐릭터가 작가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그의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목격하면서, 일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전쟁이 끝난 이후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미술가로서의 활동을 지속했고, '일이 곧 자유이자 진정한 삶'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여겼던 내용들은 4장의 ‘무민 세계’와 그로 인해 명성을 얻고 무민 캐릭터가 점차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과정을 그린 이후 몇 장의 내용들이었다. 처음 ‘무민 시리즈’를 읽었을 때, 그 내용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토베 얀손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내용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후 동화 작가와 미술가로서의 삶,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다간 작가의 모습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마지막에 첨부된 ‘토베 얀손 간단한 약렷과 작품 활동’을 통해서, 그동안 나에게 미지수로 여겨졌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금 더 확실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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