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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이자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미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우연한 기회에 방송의 오프닝 멘트로 쓰게 된 시가 어느덧 시집 한 권의 분량을 채울 만큼 되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본래의 업이 시를 쓰는 시인이지만, 매일 한 편 씩 시를 창작하는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든 와중에서도 충분한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인에게 누군가 듣고 읽기를 기다려주는 시를 쓴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용으로 창작된 것인 만큼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왔고, 또 작품마다 첨부된 시작 노트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작품에 부기된 기록들도 아마 방송용 멘트로 적은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서 시를 읽는 것이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그 내용에 공감하고, 어떤 경우에는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예컨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카프카식 이별 1>이라는 짧은 시에는, 카프카가 세 여인에게 파혼 통고를 했다는 내용의 부기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것을 ‘카프카식 예민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타의 글들과 함께 읽어나가면서 또한 시인이 왜 시집의 제목을 그것으로 선정했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방송을 듣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그리 어렵지않게 다가왔고 그래서 더욱 편안하게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방송을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이 시집이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다. 매일매일 한 편의 시를 창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그 결실이 시집으로 엮어질 수 있다는 것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에게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친구들과 여행 중
자동차로 시골 마을을 느릿느릿 지나는데
한 친구가 창밖 마을을 보면서 짚었다
저 집은 사람 떠난 빈집이네
저 집은 빈집 같아도 사람 사는 집이네
우리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내기하자고 했더니
시골 출신은 그냥 알아
사람 온기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은
보면 그냥 알아
친구 목소리가 아련해지길래
너는 눈이 온도계구나,
우리 다 기꺼이 내기에 졌다
<온도계> 전문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을 이처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이 가진 능력일 것이다. 간혹 아내와 산책을 하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원도심에도 상당 정조 공동화가 진행되어 때로는 허름하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여 그것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집의 외관만 보고도 빈집인지를 알 수가 있다. 아마 아련한 목소리를 지닌 시인의 친구도 그렇게 빈집을 두고 떠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이밖에도 시인의 감성이 충분히 느껴지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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