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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었을 때 조금은 특이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작을 읽었던 아내에게 그 내용을 물었을 때, 그 작품 역시 판타지에 기반한 내용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판타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몸에 무언가를 새기는 ‘문신’을 소재로, 조금은 환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부분적으로 분명히 구분되지만, 장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시미’는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인물이다. 결혼을 하고 남편의 폭력을 피해 어린 아들을 남기고 집을 탈출했고, 그 이유로 양육권까지 박탈당하고 이혼을 한 상황이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간혹 연락을 하던 아들에게도 엄마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10층의 화재 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남자(아버지)와 그 현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젊은 여성(딸)을 발견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화재가 일어나고 10층에서의 투신이 있었지만, 불은 금방 진화되었고 화재의 원인이나 사건의 경과조차 전혀 알 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남는다는 설명과 함께.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인물이 ‘시미’의 직장 동료인 ‘화인’이라는 것이 서서히 밝혀진다. 그리고 오랫동안 화인이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왔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폭력을 휘두리던 아버지가 10층에서 투신을 했지만, 화인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시미’가 화인이 소개한 문신가의 가게를 찾는 것이다. 그곳에서 마주친 이상한 기운들, 이곳을 찾기 전에 ‘화인’의 목덜미에 새겨져 있던 도마뱀(샐러맨더)이 사무실에서 동료들의 화제가 되었다. 그것을 놀리는 상사들에게 면박을 주고서 화제를 돌릴 수 있었던 ‘시미’에세 화인이 고마움을 표하면서, 전해준 명함을 따라 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미’의 개인사와 문신을 둘러싼 괴이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 후에는 당사자들의 몸에 있던 문신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인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하겠다.
사라진 문신의 주인공들은 상처를 간직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아버지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화인, 그리고 변사체로 발견된 화장품 업체 사장의 폭력에 휘둘리다 옷장에서 묶인채로 발견된 여성, 마지막에 팔목에 별을 새겼던 ‘시미’조차 그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몸에 문신을 새겼거나 새기며, 그 문신이 스스로 몸에서 떠나간다는 것도 그러하다. 결국 이 작품은 몸에 새겨진 ‘문신’이 자신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면서 강고한 현실에 어쩔 수 없어, 그저 막연히 무언가를 바라며 몸에 새겨넣은 문신의 문양들은 그들의 억눌린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겟다.
이 작품을 읽고, 문신의 의미를 좀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 <문신의 역사>(조현설 저)라는 책을 찾아 보았다. 그 책에는 문신의 역사와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애초에 문신이 지닌 주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었다. 주술(呪術)이란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적 힘을 빌어 해결하려는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따라서 지금은 자기 과시나 미적인 용도로 주로 활용되고 있는 문신이 문화사적으로는 애초에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섬기는 대상을 몸에 새긴다거나, 혹은 강한 동물의 모습을 새겨넣어 자신이 그와 같으 힘을 갖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바로 문신의 이러한 측면에 착안하여, 그것을 다소 환상적으로 풀어내고자 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때문에 문신이라는 행위가 바로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라는 제목과 결합될 수 있다고 이해된다. 문신은 단순히 문양 하나를 몸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소늘 놓는' 행위라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활용된 문신이라는 소재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이 당사자들에게 하나의 희망이자 탈출구로 작용을 했다는 ‘환상적’인 설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이 작품의 ‘환상’은 문신이 지니는 의미와 결합시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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