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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만나보지 못한 핑크, 색다른 이야기’라는 부제의 이 책은 ‘핑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에서부터 그것이 상징하는 문화적인 의미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핑크가 주로 여성들의 색으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지만, 색채에 대한 감각이 포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은 남성들도 핑크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니, 빨간 혹은 핑크로 분류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아내가 구입한 것이기도 하지만, 핑크색의 상의는 철마다 1벌 이상이 눈에 띄었다.
우리말로 분홍색이라고 번역되는 '핑크'가 과거에는 마치 여성들만의 색인 것처럼 취급되던 때도 있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날 무렵에만 하더라도, 태아의 성별을 확인해주는 것이 불법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기 위하여, 간호사에게 태아의 속옷을 어떤 색으로 준비할 것인가를 물어보기도 했었다. 과거 우리 사회에 팽배하던 남아선호가 낳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으나, '분홍색 속옷'은 태아가 여성임을 드러내는 표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문화에 따라서는 여성이 파랑색, 남성은 빨간색으로 여겨지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주로 20세기 중반 무렵이 되면서, 핑크는 여성이며 파랑은 남성의 색처럼 굳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책은 '핑크'에 관한 저자의 개인적 감상에서부터, 그것이 지니는 문화적 표지와 의미 등을 상세히 살펴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핑크로부터 역사 속의 핑크와 세계 곳곳의 문화에서 발견되는 핑크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일레로 저자는 길을 가다 마주친 가게에 들러, 그곳에서 발견한 '핑크'의 목록을 그림과 함께 제시하기도 한다. ‘핑크’는 사전적으로는 빨강과 하양의 중간색으로 정의되지만, 그 중간색은 매우 다양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원래 ‘핑크’는 ‘동사로서의 찌르거나 구멍을 뚫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카네이션으로 대표되는 패랭이꽃의 가장자리가 톱니바퀴처럼 생겨서, 핑크가 패랭이꽃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대략 18세기부터 핑크가 색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핑크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핑크가 등장하는 관용적 표현은 물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과 ‘사례 연구’ 등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아이 방에서 발견되는 핑크의 목록을 제시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들이 생각하는 핑크의 이미지에 대해서 인터뷰를 시도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풍선껌’과 ‘핑크 반창고’ 등을 ‘사례 연구’의 예로 삼아, 그에 관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항목들에 대해서, 그에 관한 '실험'과 '사례연구', '목록'과 '인터뷰' 그리고 '사물연구' 등의 하위 항목을 설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한 상위 항목들을 보면 '핑크와 언어', '핑크와 연애', '핑크와 패션' 등이다. 저자가 선택한 인터뷰의 대상은 어린이로부터 그들의 부모들은 물론 색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각 예술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자유분방하게 펼쳐지고 있다. 현재 성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색으로 무지개색이 주로 통용되고 있으나, 이와 함께 핑크빛 삼각형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핑크빛 삼각형은 성소수자들을 죄악시하던 나찌의 산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저항의 상징이자 역경을 이긴 승리의 표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 경우에는 특정 색에 대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으나,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문화적인 의미로 특정 색에 대한 관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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