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정신 완행열차는 연착입니다
양재일(시인, 본지 발행인 겸 주간)
늙으면 한 해 한 해가 다르다고 하는 말을 ‘나는 괜찮겠지’ 하고 흘려버렸는데 정답이었습니다. 작년만 해도 하루 만에 100평쯤 밭에 거름 내고 삽 한 자루 들고 밭 갈고, 비닐까지 씌워도 자고 나면 개운했는데, 보름 전 서른 평 밭에 감자와 방울토마토 등을 심으려고 봄 농사 준비를 했는데 보름째 뼈마디가 쑤시고 얼굴에 병색이 짙어졌습니다.
3월 말까지 시인정신 봄호를 출간해야 하기에 보름 전에 교정과 편집 다 끝내고 머리글만 남겨두고 여유까지 부리며 한나절 자잘한 농사 준비를 했을 뿐인데, 몸에 병이 드니 내 뇌도 연식이 오래된 차처럼 구리스도 엔진오일도 다 말라 엔진이 붙기 직전인 것 같습니다.
머리글 한 줄 쓰기가 지옥입니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초음속으로 북진을 해오고, 3월이 사흘밖에 안 남았는데, 남쪽의 꽃 소식을 전하며 ‘시인정신 봄호 나왔냐’는 어느 시인의 카톡에 나는 쫓기고 있습니다.
50리 떨어진 양평읍의 산야엔 하늘이 연둣빛 파스텔화를 그리고 있는데, 양평의 변방 고래산 자락 산골엔 3월 달력이 뜯길 날 며칠 안 남았는데도 겨울의 때를 벗지 못한 나무들이 고사목처럼 서 있습니다.
4월 초하루, 연착 1일째, 오늘 아침에도 내 꼬마 경차의 유리엔 여전히 성에가 짙은데, 얼어붙은 땅을 파지 못해 변을 못 본 고양이들은 변비입니다. 나는 쇠스랑을 들고 팥고물처럼 흙을 부수어 화장실을 만들어주는데, 여긴 아직 툰드라라 나도 이웃들도 오리털을 입고 있는데, 우물 안에 갇혀 겨울만 보인다고, 봄은 아직 멀었다고 시인정신 봄호의 연착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반경 100미터를 둘러봐도 산수유, 진달래는 보이지 않고 냉이꽃도 꽃인가요? 우리 동네에 처음 핀 봄꽃, 냉이꽃이 우리 집 돌담길에서 어린 날 마른버짐 핀 동생처럼 서 있습니다.
지난겨울, 발목도 덮지 못한 세 번의 착한 눈 때문일까요? 나는 눈 귀신이 안 와서 행복했는데, 물도 배불리 먹지 못한 냉이 씨앗들은 동토를 벌리고 나올 힘이 없어 아직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부모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냉이 몇 놈 추위 속으로 가출해 이파리도 채 자라기 전에 손이 끊길까봐 자식 만들려고 꽃부터 피웠습니다.
자식 손에 끌려 이승의 종착역인 요양원으로 갔다 몇 달 못 살고 지금은 하늘 어딘가에 계시는 이웃집 할매들에게도 봄꽃은 사치였고 겨울은 지옥이었나 봅니다.
“양씨, 나는 불에 타 죽어도 여름이 좋아” 하시던 할매들의 독백이 졸음처럼 들리는 4월 초하루입니다.
어제 화원에 가서 꽃이 핀 수선화 열 개 사다 심었습니다. 꽃을 보면 오리털을 벗고 나의 엔진 속에 오일을 채울 것이고 그래야만 시인정신 봄호도 속도를 낼 것 같습니다.
시인정신 완행열차, 이번 봄호는 며칠 연착입니다.
죄송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연착이라는 단어가 자꾸 되뇌여 집니다.
병원에 계시면서도
시인정신 권두칼럼을 올려주셨네요
100세 시대 아니 120세대라고들 합니다.
먼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건강 잘 챙시세요
짠한 글귀입니다.
내 뇌도 연식이 오래된 차처럼
구리스도 엔진오일도 다 말라
엔진이 붙기 직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