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하지만 여러분이 차후에, 브람스의 교향곡 4번과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두 곡을 감상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그제 현장에서 메모한 글을 올려봅니다^^
1886년 마이닝겐에서 브람스 자신의 지휘로
자신의 교향곡 4번이 연주되었을 때 그의 감흥은 어떠했을까?
또 그는 어떤 생각과 마음을 담아 이 곡을 만들어냈을까?
연주장에서 음악을 듣는 동안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주 없이 곧바로 테마가 시작되는 이 곡은
무거운 듯 서정적으로 흐르며 장엄한 분위기를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삶을 압도하는 애잔한 색채는 무거워서 벗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애상적이다.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워 놓아버릴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묘사한 걸까?
그래서 더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답게 2악장으로 가면,
그 어두운 서정성은 호른의 선율로 시작하여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흐르는 클라리넷의 숙연한 음색에 깊게 자리한다.
3악장은 1, 2악장과는 달리 경쾌하고 화려한 색채를 띠며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음악적 분위기가 대조적으로 전환되어
앞의 분위기는 더 어둡게, 3악장은 더 경쾌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서 그 장엄함은 극에 달하는 듯하다.
매력적인 서정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강하게 압도하는 관현악 선율은
현악기의 애잔한 선율에 힘을 얻어 더욱 비장한 슬픔과
삶에 내재한 수많은 갈등을 소리의 현상으로 표현해내는 듯하다.
그런데 그 어두움은 암흑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니라
정련된 아름다움 속에서 숭고하게 마무리된다.
그제, 사이먼 래틀 경의 지휘로 베를린 필에 의해 해석된 이 곡은
청중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웅장한 음향으로 그 넓은 콘서트홀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음악적 형식에 그들의 삶이 채색되어 공명된 그날의 연주는
작곡자, 연주자, 청중 모두에게 개별적 체험을 보편적으로 승화시키게 한,
하나의 음악적 사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브람스의 교향곡이 연주되기에 앞서,
조성진의 협연으로 이어진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길지 않은 삶이지만 그가 만들어 가는 삶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연주였다.
이곡은 1악장과 3악장이 변칙 화음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이국적이면서 재즈풍의 대중음악적 요소를 유쾌하고 재치 있게,
그러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반면, 2악장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잔잔하게 흐르며 힘을 놓아버린 듯하면서도
음들 사이로 긴 호흡을 풀어내는 피아노 선율은
플륫이 노래하는 천상의 소리를 만나
서로의 음악적 공간을 완전히 다른 세계에 데려다 놓는다.
언뜻 불협화음처럼 보이는 소리군들이 자연스럽게 연주자의 손을 타고 흘러나오려면
그 낯선 조화에 대한 체험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그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테크닉은 그런 자신의 체험을 담아내기에 과하지 않고 충분했으며
그 공간을 살아낸 그의 시간도 그의 테크닉을 발휘하기에 넘치지 않고 편안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콘서트 홀이 워낙 크다보니
독주 악기의 음향과 그 여운이 내게 전달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그날의 감동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생의 체험인 것임에 틀림없다.
음반을 통해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다 전달 할 수 없어 조금 안타깝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연주를 보내준
베를린 필하모니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멋진 음악을 보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