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 대구일보 (idaegu.com)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내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가만히 좋아하는」(2006, 창비) 전문
우리말이 그리워서 김사인의 시집을 뒤적였다. 어린아이가 사금파리를 가지고 놀듯, 그의 시에 나오는 사물과 대상들을 뒤적거리고 쓰다듬고 깨물고 맛보았다. 화통, 비닐봉다리, 둑방, 전주천변, 미루나무, 버드나무, 적막천지, 운동장, 솔꽃, 소나무, 멧비둘기, 우물, 두레박소리, 담벼락, 개털잠바, 이발소, 영월, 헌털뱅이, 쇠죽 쑤는 아랫목, 누룽지, 싸가지, 작은 보따리, 상수리와 생강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 남매집, 싸가지, 물미나리, 패랭이꽃, 들창 너머 먼 산,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 민화투, 쏙독새 울음…….
사실 단어가 가리키는 사물이나 대상들은 이미지와 더불어 온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된 사물이나 대상들을 가지고 논 게 아니라 추억을 가지고 놀았다는 말이 정확하리라. 벤야민은 “자연을 퇴색한 그림들의 액자 속에 집어넣어 정지시키는 것이 바로 꿈꾸는 자의 쾌락이다. 그 이미지들을 다시 불러내어 사로잡는 것이 바로 시인의 능력이다.”라고 했다. 시인은 이미지들을 불러내어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잠시 꿈꾸며 쾌락을 맛보는 자였으리라.
외국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말밖에 몰라서 우리말만 쓰고 사는 인간이 우리말이 그립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방금 이 문장을 쓰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대신에 ‘아이러니’라고 썼다고 얼른 지웠다. 같잖은 짓이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주구장창 속을 썩이다가 어버이날 딱 하루 효도하는 자식처럼 굴고 있지 않은가. 어제가 한글날이었다. 읽는 분들이 눈감아주리라 믿는다.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