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답사지는 남산이었다. 신라시대에 앞선 답사지 중 하나인 황룡사가 진골, 고위 계급의 성지였다면 남산은 일반 평민들의 성지였다고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부처님을 그려내기 위해 남산에 올라 몇십 년간 돌을 깎아 불상을 만들기도 하고, 탑을 쌓거나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품은 부처님을 남산에 그려낸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가장 정형화 되어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민들에게 있어서 남산이야말로 불국토이자 진심을 담아 불교를 믿고 귀의할 수 있는 성지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번 남산 산행은 그저 평범하게 산을 오르는 산행이 아닌, 신라 백성들의 불심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의 불교를 만날 수 있는 배움의 장이었다. 실제로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정말 여기까지 와서 불상을 깎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만한 위치에 온갖 작품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황룡사만큼 거대하지 않고, 석굴암만큼 섬세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신라 백성들에게는 바로 이것이 그들만의 부처고 불교였을 거라고 생각 되어진다. 어찌 보면 가장 직설적인 종교의 외침이었던 만큼, 남산을 산행하면서는 불교에 대한 생각을 종종 했다. 더 정확하게는 믿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몇십 년의 삶을 바쳐 단 하나의 불상을 이 산에 깎아 놓은 걸까.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불교가 가진 위상이 거대했던 것일까. 도대체 왜. 무엇을 보고서. 이들은 무엇을 위하여 무엇으로 그 삶을 살아냈는가. 그 살아 숨 쉬는 작고도 그렇기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이러한 물음들을 가져보았다. 내가 보고 느끼는 남산의 숨결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근본의 자리에 있을 무언가를 두드리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남산 산행을 하며 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들어도 알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듣지 않으면 언제 들을까. 나에게는 오로지 지금이 유일한 역사의 현장이다.
열다섯 번째 답사지는 불국사였다. 불국사. 이름 그대로 통일 신라의 불국토에 대한 끝없는 자부심, 혹은 깊은 소망과 바람이 나타나는 절이다. 그리고 이 또한 재상이었던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던 만큼 굉장히 과학적인 건축 기법들 위로 다양한 상징이 말하는 불교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사전에 이미 불국사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를 하고 간 만큼 세세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다. 언뜻 놓치고 지나가기 쉬운 곳에도 마음에서 나오는 깊은 뜻을 담아 잘 보이지 않는 상징을 새겨놓는 사람들. 그것이 어찌 보면 창작자의 심리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졌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남들이 보지 않고 흘려 넘길 자리에도 대충 지나치지 않고 자신만의 디테일을 새겨 넣는 것. 그래야 몇몇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본 불국사는, 불교는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따르는 역사 속 무수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머무는 사람들의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와 같았다. 극락전 간판 뒤에 숨겨진 날렵하게 생긴 멧돼지 조각. 무려 몇백 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장식은 이제 와 발견되어 몇백년 만에 불국사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또 비로자나불이 짓고 있는 손 모양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 검지가 서로 맞닿아 있음으로써 부처님과 수행자는 하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처님 세계로 향하는 일주문과 결국 두 세상이 다르지 않음을 나타냄에 있어서 불이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문. 그리고 불국사의 상징과도 같은 석가탑과 다보탑 또한 보이지 않는 상징들이 숨어져 있다.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금강좌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탑으로, 그 바닥에는 울퉁불퉁한 자연석과 자연석의 모양에 맞춰 깎아 놓은 석가탑의 바닥이 보인다. 이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는 심계가 담겨 있으며, 그 옆의 다보탑은 깨달음을 나타내고 있다. 층수가 불분명한 다보탑의 외관은 층수로 탑을 규정하는 기존의 방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그와 동시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거친 정사각형에서, 네 모서리가 잘려 나가 팔각형이 되고, 이후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각이 없는 원의 모양이 된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이미 자각하는 순간 과거의 일일 뿐인 한순간의 섬광이기에 다시 팔각형이 되었다가 원형이 되며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수행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정말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탑으로만 보이던 석가탑도, 다보탑도. 모두 누군가의 깊은 마음에서 나오는 영감이 표현 되어 진 예술품이다. 이러한 일상 속의 놓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마주하는 것. 이것은 내가 불국사에서 느낀 즐거움이었다. 모르기 때문에 공부하고, 내가 공부한 만큼, 고민하고 사유한 만큼 보이는 것들. 내가 보고자 한 만큼 나에게 내비춰 주는 세상.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나는 불국사가 말하는 가르침을 보기 위해 학생으로서 공부했다. 적어도 이번 답사에서 나의 자리는 이런 모습을 띄고 있었다.
열여섯 번째 답사지는 흥무대왕릉이었다. 흥무대왕릉은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이 묻힌 묘다. 금관가야의 김해 김씨를 성씨로 물려받아 27대 왕 선덕여왕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장에서 신라의 장군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무흔을 세우고, 30대 왕 문무왕 재위 기간에는 두 눈으로 삼국 통일을 보고 자신의 가문을 극진히 대접받는 자리까지 올리고 죽은 사실상 성공한 인생이 바로 김유신이었다. 성공한 인생. 내가 김유신이라는 인물을 보며 떠올린 단어였다. 말 그대로 김유신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역사적으로 어떠한 업적을 남겼다는 점보다는 개인적으로 정계에서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어떻게 처신을 해가며 자리를 마련하고 성공해 나갔는지가 더 돋보였다. 김유신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당시 정황을 나타내기보다는 신라 안으로 정치적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더 잘 그려내고 있다. 훗날 왕위에 오르리라 생각한 김춘추와 혈연으로 연을 맺고, 선덕여왕의 최측근으로서 선덕여왕이 있을 수 없는 자리에서 군을 이끌고 승전보를 터트리는 등 자신의 입장에서 가능한 한 가장 큰 이익을 얻기 위한 선택들, 그 노력들. 내가 만난 김유신은 그 자체로서 굉장히 얽히고 섥힌 이야기가 많은 주인공과 같은 인물이었지, 거대한 다른 이야기를 대변하는 인물의 인상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로서 4박 5일간의 모든 답사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일상이 역사다. 나는 이번 여행의 주제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미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립하였다. 그랬기에 다시 생각하고 되새기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신라 역사 기행을 이어 나가는 동안 일상이 역사다라는 주제를 잘 떠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행을 끝마치고 난 후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한 편의 글로 정리하며 이번 여행의 주제 또한 정리하는 중이다. 일상이 역사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나에게 있어서 역사란, 언제나 그랬듯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머나먼 옛날 분명히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지금의 내 삶의 형태가 존재하는 거라고 하지만, 결국 이야기일 뿐인 이야기. 마치 한 걸음 물러나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지, 그 꽃 한 송이에 목매달아 계절을 바꾸려 하고, 어떻게든 시들지 않게 하려다 가시에 찔리고 상처받는 그런 태도로 역사를 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박물관에서 처음 그랬듯, 역사란 내 생각보다 나와 가까이에 위치한 것임을 실감하는 경험들이 여러번 있었다. 역사가 흐르는 자리. 그 자리가 의외로 내가 지금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자리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모든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며,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함으로서 끊임없이 변화를 맞이한다. 내가 이렇게나 근 이야기를, 삼무곡에 입학해 써 온 글들중 가장 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단 하나의 문장을 진심을 담아 적기 위함이었던 거 같다. 예전에 일상이 명상이다를 주제로 삼고 떠났었던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만난 스승님, 박호창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 중 이 한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림 그리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림을 그리러 온다고.”
뭐든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이 글을 쓰기 전, 여행을 떠나기 전, 몇 개월 전부터 항상 품고 있었던 문장도, 이제서야 이 자리에 써넣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흐르고, 세상은 바뀌고, 나 또한 내일은 다른 모습으로 하루를 마주하지만, 어찌 되었거나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전부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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