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음감에 관하여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대 음감에 대하여 들어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절대음감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도 싶어할 듯하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절대음감이 무엇이고, 또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점이 다를까? 그래서 위키백과 사전에 절대음감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절대 음감(absolute pitch, perfect pitch)은 기준이 되는 다른 소리의 도움 없이 소리의 높이를 음이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하나의 소리에 비해 다른 소리가 얼마나 높거나 낮은가 하는 것은 상대적인 음감이다. 이에 대해, 소리 높이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 능력을 가지는 경우, 특히 "절대음감"이라고 부른다." 즉 일반사람은 음의 높이를 상대적으로 파악해서 구별하는데,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그 음 자체의 (음)높이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일반인과 비교해서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것이 질문이다.
필자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아카펠라를 배워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아카펠라 동호회에 등록을 하고 참여를 하는데, 어느 날 아카펠라 선생님(이하 선생님)이 어떤 회원을 보고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하였다. 그 회원은 피아노를 전공해서 현재 피아노 레슨을 한다. 그리고 본인도 자신이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인정을, 그래서 필자가 읏으면서 '인간 피아노'라고 하자 빙그레 웃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나서 신기했지만, 겉으로는 차이가 없는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씩 피아노 없이 스케일(다장조)을 부르는데, 드디어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불렀다. 필자가 유심히 들어보니, 스케일에 있어서 각 음정의 진동(수와 폭)이 각각 다른데, 그 진동이 정확하게 맞는다. 예컨대 '도' 음정과 '레' 음정의 진동이 각각 다르고, 거기에서 각 음정이 차이가 나는 데, 그것이 피아노의 진동과 정확하게 맞는 것이다. 어떻게 피아노에서 나오는 음정의 진동과 똑 같을 수가 있는지 필자는 참 신기했다. 필자가 '도 음정을 낼려면 생각해서 내야 하는데, 이 회원은 그냥 '도' 음정이 나오는 것이다. 이어서 다른 회원이 같은 스케일을 불렀는데, 그 회원은 진동수가 정확하지가 않다. 마치 진동 주변을 서성이는 느낌, 화살 과녁의 중심점이 아닌 부분에서 서성이는 느낌이다.
요컨대 음의 높이에 따라서 진동 수와 진동 폭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음정이 나온다. 그 차이를 절대음감을 가진 회원은 정확하게 파악하여서 불렀고, 반면 상대음감을 가진 회원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르지 못한 것이다. 둘 차이는 미세했지만 분명하게 드러났다. 여기에서 필자는 절대음감을 가진 회원은 파악했는데, 왜 다른 회원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절대음감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고 선생님이 말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대음감을 가진 회원도 기본적인 스케일(다장조)은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자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 과거에 의문을 가진 생각과 연결이 되었다. 필자가 문화의 집에서 운영하는 생활악기 오케스트라에 리코더로 참여할 때에, 앨토 섹스폰을 부는 사람이 굉장히 쉬운 '아리랑'과 같은 3박자도 마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섹스폰을 못부는 것이 아니라 분 경력도 오래되었고, 공연도 여러 번 가질 정도라는데 쉬운 박자도 못 마추는 이유가 궁금하였는데, 딱 연결이 된 것이다.
필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위 상대음감을 가진 회원은 연극을 한다고 하였다. 연극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잘 드러나는 분야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는 5음계의 정서로 서양음악의 7음계와 음과 음사이의 간격이 다르다. 예컨대 그 진동 수가 다른 것이다. 추측컨대 연극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서가 그 회원의 영혼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 회원의 영혼에 우리 음악의 정서가 자리잡아서, 서양음악의 7음계를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겉으로 들으면 그 회원의 스케일은 무난했다. 아마도 필자도 앞서서 절대음감을 듣기 전에는 그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말은 그 회원이, 자신이 스케일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음악을 하는데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서양음악을 할 경우에는 뭔가 정확하지 않은 부분을 그 회원도 느꼈을 것이다. 바로 말하면 영혼의 문제라서 알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해야 한다-.
생활 오케스트라의 섹스폰 연주자가 박자를 못마추는 경우도 같다. 필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노래교실에서 트롯을 배우면서이다. 노래교실에 세 번정도 나갔는데, 처음에는 뭔가 서양음악과 다른데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트롯이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다는 사실, 서양음악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섹스폰 연주자도 섹스폰 동호회에서 트롯을 연주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공통점이 발견된 것이다. 필자가 들어보니 트롯음악에서 서양음악의 음계가 정확하게 표현되지가 않았다. 그 진동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예전 서양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어머니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가 있을 듯 하다.
연극을 하는 회원의 영혼과 같이, 섹스폰 연주자도 오랜 시간 트롯을 연주하면서 영혼이 우리 민족의 5음계 정서에 매몰된 것이다. 5음계와 7음계는 각각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다르므로 진동이 다른데, 영혼이 이를 파악해야 하는데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영혼이 그 정서에 매몰되었다는 것이지, 5음계와 7음계의 진동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가 중심사안은 아니다.
1년 이상 생활오케스트라에서 연습을 한 듯한데도 여전히 박자를 마추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그 두사람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결론은 그 두 사람의 영혼이 서양음악의 음계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영혼은 내가 하는 그 일에 매몰되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오랫동안 하게 되면 그 일 이외에 다른 일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우리 음악과 서양음악은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 차이를 영혼이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혼이 그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면 자아가 표현할 수없으므로 표현하기는 더욱 더 불가능하다. 그래서 방법이 있다면 인간의 자아가 상속에 있기 전, 자아가 드러나기 전에 서양 음악을 접하는 것이다. 자아가 상 속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상속에 들어가기 전 자아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즉 상을 통하여 자아에게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본다. 따라서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을 벗고 대상을 보지 못한다. 이때의 자아가 상속의 자아이다. 결론은 안경을 쓴 자아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해온 교육방법이다. 영혼이 즐겨 그 일을 할 때 영혼이 받아들이고, 영혼이 받아들이면 자아에게 전달되고, 자아가 그것을 표현한다. 이것이 영혼이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따라서 결론은 영혼이 받아들이도록 할려면, 내가 그 일을 즐겨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영혼은 내가 하는 그 일에 매몰되기 때문에, 즉 내가 하는 그 일과 영혼은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즐겨 그일을 해야 영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즉 내가 그 일과 하나가 되어야 그 일의 능력을 얻는다. 만약 그 일을 하면서 재미가 없고 하기 싫으면 영혼은 그 일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점점 영혼은 그 일이 하기 싫을 것이고, 당연히 능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영혼이 보이지 않아서 간과하지만, 영혼의 그 차이를 우리가 파악해야 우리가 능력을 얻는다.
두 회원은 오랜 시간 우리 음악의 정서에 영혼이 몰입했고, 결과 영혼이 서양음악의 7음계를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영혼이 서양음악의 7음계를 파악해야 하는데, 특히 영혼이 불안하거나 자신감을 잃는 상황은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들므로 주의해야 한다. 본인도 뭔가 다른 것(박자나 음정)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주위에서 재미있게 몰입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못하는 아이에게 못한다고 하거나 여러 사람앞에서 망신을 주는 행위는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결론은 인간의 본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영혼이 어떤 경우에 능력을 얻는지 알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능력을 가질려면 영혼이 즐겨 그 일을 해야 하고, 결과 영혼이 능력을 얻고 그 능력을 자아가 표현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지금과 같이 인간의 내부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은 더욱 힘이 들 것이고, 힘이 들어도 능력을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도 도외주지 않는, 스스로 혼자서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우리 모두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그 일을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7-14세 사이는 자아가 다른 대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 이 상황에서 아이는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마치 보호막이 없는 상태, 모든 존재에서 나오는 해로움을 막아내는 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위의 해로운 독들이 그대로 아이의 자아에 전달된다. 결과는 아이들의 영혼이 어떤 일에도 즐겁게 그 일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슈타이너를 따라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탐구한 결과이다. 모든 진동은 에테르체의 진동인데, 이 진동이 삼라만상의 생명의 힘이다. 이 진동은 우주 에테르의 진동이고, 우주 한 가운데에 인간이 위치하기 때문에 인간도 이 진동을 한다. 이 진동을 표현한 것이 음악의 음계이다. 이를 피타고라스가 명명하였다고 하였다(아카펠라 선생님이 하신 말씀). 절대음감은 우주 에테르의 진동을 영혼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진동을 자아가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진동을 받고 같이 진동할 터인데, 상대음감이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아가 상속에 들어가기 전에 절대음감은 그 진동(우주 에테르의 진동)을 영혼이 받아들였을 것이고, 반면 상대음감은 받아들이지 못한, 받아들였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능력이란 영혼이 그 일에 매몰되어서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누구라도, 영혼이 그 일에 매몰되도록 즐겨 그일을 하면 그 일의 능력을 자아가 얻는다. 다만 그렇게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이 능력을 얻지 못할 뿐이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영혼이 즐겨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주위가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