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한 노래는 어디에
소요산역에서 출발하여 한탄강 지류를 따라 걷는다. 한탄강의 찬바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위짜추 엉카페 버쁘바 파빠기 까토나 그리고 버니재 모두 여섯명이다. 1963년도 졸업후 버니재에게는 처음 만나는 벗들이다. 까토나도 40여년이 흐른 세월이다. 버니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끝으로 자퇴를 한다. 알량한 등록금 몇푼이 그 친구에겐 버거울 뿐이렷다. 동기들보다 1년 후에야 졸업장을 손에 쥔 것이다. K대 수학과에 입학을 했으나 여전히 친구에게는 등록금 마련이 요원할 뿐이었으니. 어디에다가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만한 곳은 없다. 하루 세끼 굶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그 시절이 아닌가. 답답한 그 심정 하소연할 곳도 없는 그를 누가 알기나 했을까. 그저 컴컴한 터널 속에 갇혀있는 절망의 나락이었을 게다. 결국 버니의 대학생활은 종지부를 찍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청계천에서의 처절한 삶을 견뎌야만 했을 게다. 어울리지도 않는 공돌이의 생활이 오죽했을까. 익숙지도 않은 어설픈 손놀림에 돌아오는 것은 온통 상처뿐이다. 담담히 지난 날을 읊조리는 녀석의 얘기를 남의 일처럼 흘린다. 옆에서 듣고 있는 동기들의 가슴은 그저 답답함이었으리라. 너와 나 누구나 그 세대를 그토록 겪어야만 한 동북고등학교 9회 동기들이 아닌가. 그 누가 읊조렸던가.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고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돌아보기도 생각키도 싫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인간의 삶의 행로는 헌법이나 유엔헌장처럼 정해진 것은 없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도 없는 내일이라는 길을 그저 걸어야만 한다. 못 다한 청춘의 꿈과 희망의 노래는 어디로 갔을까. 한탄(恨歎)으로 까맣게 타버린 한 많은 과거는 한탄강에 흘려 보내고 가슴에 남아있는 응어리일랑 한잔술로 날려 보내면 어떠할까. 한탄강 민물새우매운탕과 함께 말이다. 지금은 지방에 자그마한 별장도 갖고 여유가 묻어난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애띤 소년들의 이마와 얼굴은 삶의 흔적이 깊게 패여있다. 함께 공을 차며 날고 뛰고 구르던 날렵함은 어디로 갔을까. 거부정한 몸매에 어기적 거리는 발걸음은 피할 수가 없다. 마음만은 까까머리 청소년으로 윤회를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모두 가 종합병원의 문턱을 피할 수 없는 노인네이면서 말이다
2019년 2월 9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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