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선의 거짓 성경 해석에 대한 반증(1)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눅 17:26-27)
2018년 3월 2일 늦은 비 성령 예언이 불발했음에도 불구하고
3월 3일 "예언과 성취"라는 설교에서 홍영선씨는 위 성경절 중 26절
곧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는
말씀만 인용을 한 후에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바로 노아 홍수의 때와 같다는 말을 먼저 꺼냅니다.
홍영선은 그동안 우리가 면밀하게 살펴 본 거처럼,
재림은 물론 수 많은 종말적 사건들의 시기(때)를
스스로 정하고 예언하는 신종 시기파입니다.
2018년 3월 2일, 1초에 모든 병을 치료하는 늦은 비 성령이 내린다고
예언을 해 놓고 막상 그 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기감이 있는
사람들만 그 생기를 받았다고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3월 3일 설교에서는
‘어제 기가 열린 사람도 있고 안 열린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어제 기가 열린 사람들 일어나보라고 하고 그들에게
‘어제 안 열린 사람들 7일 후에 열린다’고 해 보라고 요청합니다.
그랬더니 일어난 몇 몇 사람들이 홍영선의 말에 따라 “어제 안 열린
사람들 7일 후에 열린다’라고 합창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합니다.
그러면서 노아 홍수 때도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창 7:10)라는
말씀까지 인용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마치 성경에 근거가 있는 것처럼
백성들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간 후 7일 후에 홍수가 내린 것과
자신이 몇달 전부터 호언장담한 '원하는 자에게는 조건 없이
1초에 모든 병을 치료하는 파동을 주겠다'고 예언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신학을 하지 않은 평신도 입장이라고 해도 성경을 이렇게
무식하고 억지로 해석하고 갖다 붙이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참람입니다.
원하는 자에게 '조건 없이' 모든 병을 1초에 치료하는 늦은비 성령을
주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 이제 와서 '기를 받은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7일 후에 열린다'는 또 다른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이 일이 참으로 얼마나 한심스럽습니까?
남은 그렇다고 하고 홍영선 자신만이라도 그런 능력을 받았다면,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그곳에 병 고치러 온 환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1초에 치료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옛 날 우리가 어렸을 적 친구들과 자주 하던 농담이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자신들만 기가 열렸다고 주장하는
이러한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주장에 누가 동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야말로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백성들을 현혹하고 미혹하는
사이비 교주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요?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이 맞지 않았으면 신앙인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예언을 믿고 따라간 자들은 물론 자신들의
방송을 통해 그 예언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예언을 했지만 틀렸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해야 그래도 양심이 있는 인간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홍영선은 몰염치하게도 기감이 열린 자들에게만 늦은비의 파동이
임했다고 하는 참으로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긴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생억지를 부리는 꼴입니다.
더 기막힌 것은 ‘어제(3월 2일) 기를 받은 사람들 일어나라’고 하더니
노아 홍수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한 번 기를 느껴 보라고
하고 ‘16억’이라고 하면서 ‘느껴집니까?’라고 한 후 다시 이제
“16억 1,600만 5,925명이 죽었다”라고 느껴 보라고 하더니
‘느껴지죠?’라고 하니 몇 사람들이 “예”라고 답하고 나니 앉으라고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중 쇼를 하는 사람들도 이 정도로 유치하고
허접스러운 쇼는 잘하지 않는 것이 관중들에게 기본적 예의입니다.
그런데 홍영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내뱉고
그것이 마치 자신을 추종하고 맹종하는 몇몇 사람들을 통해
증명되고 입증되는 것처럼 거짓 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들이 그러한 기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 정확한 숫자를 자신이 먼저 가르쳐 줄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기를 받았고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 스스로
노아 홍수 당시 멸망 받은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말하게
하는 것이 저들의 주장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기감이 열린 자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홍영선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그 숫자를 먼저 말해 주고 ‘맞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허접스럽고 어리숙하고 거짓된 것입니까?
홍영선은 “재림도 노아의 홍수 때처럼 같다”는 말씀을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고대 문명이 멸망하는 시간과 때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재림의 시간도 알려 주신다는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홍영선은 3월 3일 한 시간 동안 설교에서 몇 번이고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할 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재림의 시기와 때에 대해 예수님께서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그 말씀의 진위를 구분 못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홍영선은 바로 자신이
주장한 그 장본인이 바로 자신임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홍영선이야말로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성경의 앞뒤 문맥과 문장조차 살피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영선은 눅17장 2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재림의 때는
노아의 때에 하나님이 멸망의 때와 시간을 정확히 알려 주신 것처럼
재림의 때에도 재림의 시기와 때를 알려 주겠다는 말씀’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27절을 보면 무엇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등
도덕적인 타락으로 홍수로 멸망을 받은 것처럼, 재림의 때에도
사람들이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해 멸망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음을
‘노아의 때와 같다’는 말씀으로 하신 것 명확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어지는 뒤 성경절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눅 17:28-29)
롯의 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다가
유황불로 멸망을 받은 것처럼 세상 끝 곧 재림의 날에도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위 성경절들 어디에 재림의 시기와 시간과 때를 알 수 있다는
비슷한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누가복음 17장과 같은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위의 말씀을 보더라도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은 어떤 재림의 시기와 때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홍수전에 사람들이 했던 도덕적 타락상을 묘사하면서
노아 당시 타락한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다 멸망할 때까지
깨닫지 못한 것처럼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명확하게
예수님 스스로 이 말씀의 본뜻을 결코 오해의 여지없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3월 3일 설교에서 홍영선은 여느 때와 같이 화잇 부인의 예언의 신을
몇 번이고 인용하여 읽어 주었고, 3월 2일 늦은 비 성령 강림한다는
그 날 하나님과 자신이 1월 27일 맺었다는 계약서를 낭독할 때도
홍영선은 화잇 여사의 증언보감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참으로 나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홍영선이 화잇 여사의 글들을
설교 시간에 자주 인용하고 가장 중요한 늦은비 성령 강림의 순간인
3월 2일 오정(12시)에도 낭독한다는 것은 화잇의 글을 믿는다는 것이고
화잇이 선지자임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홍영선에게 화잇 여사의 다음과 같은 삼척동자도
알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은 왜 철저히
외면하고 왜 모르는 척하고 왜 믿지 않는 것일까요?
재림신자라고 공언하던 많은 사람들이 시기를 정해 왔다.
계속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정했으나
실패만 거듭했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분명한 시간은
인간의 지식 범위밖에 있다고 선언되었다. 심지어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천사들도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4T, 307(1879).
우리는 성령의 부어 주심이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분명한 시간을 알 수 없다. …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는가?
그분께서 그 때를 알려 주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를 알게 된다면 다가올 큰 날에 한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사업이 크게 지연되는 사태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시간적 흥분에 의지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1년, 2년 혹은 5년 안에 오실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10년 혹은 20년 내에는
그분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연시킬 수도 없다. ― RH, 1892. 3. 22.
“우리는 예수님이 능력과 큰 영광으로 재림하시기 전에
경과될 정확한 기간을 정하는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때를 정한다. 그리고 그 때가 지나가면 견책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주제넘은 마음으로 계속하여 새로운 때를 정한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실패함으로 그들은 거짓 선지자로
낙인을 받게 된다”(사건, 34)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서
항상 거짓되고 광신적인 운동들이 일어날 것인데 그들은 보내심을
받기도 전에 달려갈 자들이며 성취되지 않은 예언이 발생할
날과 시를 예언할 것이다. 원수 마귀는 그들의 연속적인 실패와
오류가 혼란과 불신을 초래할 것이므로 그들이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을 볼 때 기뻐한다. ― 가려뽑은 기별 2권, 84(영문)(1897).
“정한 때에 관한 또 다른 기별은 없을 것이다.
1842년에서 1844 년에 이르는 기간[계 10:4-6] 후로는
더 이상 확정적인 예언의 때는 없을 것이다.
가장 멀리까지 미치는 시간 계산은 1844년 가을까지이다” (사건, 36)
위의 말씀들처럼 재림의 시기와 때를 정하는 일에 관하여
인용한 이 외에도 수도 없는 화잇 선지자의
경고와 권면과 견책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홍영선의 눈에 이러한 오해의 여지조차 없는 화잇 선지자의
말씀들은 전혀 안 보이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요?
홍영선이 성경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억지로 해석하여 백성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화잇 선지자의 글인 예언의 신의 말씀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뜻이며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는 평범한 문장들인 것입니다.
바로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들의 공통점이 이와 같이
언제나 자신들의 어떤 주장에 대해 마치 화잇 선지자의 말씀이
지지하는 것처럼 사실은 아무 상관도 없는 예언의 신들의 말씀을
설교 때 많이 인용을 하나 자신들의 주장이 전혀 진리가 아니고
사실이 아님을 밝혀 주는 말씀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못 본척하고
백성들에게 전혀 제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다음 홍영선이 성경절을 인용하여 억지 해석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이 성경절에 대해 홍영선의 설교를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예언과 성취, 생기와 생명 주제강의 2 : 2018년3월3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도, 만일에 500년 뒤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면 내가 믿음대로 살까요
안살까요? 안 살지요. 그래서 오시지 않을 시대에는 곧 오실 것처럼
살아야 돼요. 오실 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시간을 알려 주셔야 해요”
“자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분인데 그분이 자신이 재림하시는
그 시간을 알까요 모를까요? 알고 오시겠지요. 어폐가 있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은 굉장히 위험한 말씀입니다. ....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의 불확실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오늘 죽더라도 항상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준비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날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은
오늘 이 순간도 내가 사고로 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사고로 죽었을 때도 하나님 앞에 정결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도덕적으로, 품성적으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라는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몰라..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준비되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홍영선의 위 말을 들으면서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는 말씀이 어떻게 이렇게
변질되고 전혀 다른 의미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이 어렵습니까?
홍영선은 아들 곧 예수님도 모른다는 말씀이 어폐가 있다고까지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재해석의 여지가 전혀 없는 단순명료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도 모른다’고 스스로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으로 오셔서 육신을 쓰신 예수님 스스로도 그 날과
그 때를 모르신다는 것은 육신을 쓴 어떤 인간도 절대로
재림의 날과 시간은 전혀 알 수 없음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둘째, 본래는 하나님이셨으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이 되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아들의 뜻이 아닌 하늘 아버지의 뜻을
강조하시고 구속의 계획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있음을
아들로서 인정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요 5:19)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요 5:30)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그러므로 예수님 스스로도 알 수 없다고 하시며 오직 아버지의
권한에 있으므로 너희의 알 바 아니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재림의 날과 때와 시간을 정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아들로 오신 예수님보다 더 높다고 하는 격이며 아버지의
권한마저 스스로 취하는 참람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홍영선이 인용하여 억지 해석한 성경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1-4)
이 말씀을 홍영선은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재림은 도적같이
임하지만 4절에 언급한 것처럼 어두움에 있지 않은 자들에게
재림은 절대로 도적같이 임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처럼 재림의 시간과 때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재림은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는 사건이지만, 자신들처럼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아는 자들에게 재림은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위 말씀이 그런 의미일까요?
홍영선은 놀랍게도 이 성경절 해석 역시 이 구절
바로 그 뒤 성경절을 인용하지 않는 꼼부를 부립니다.
홍영선이 언급하지 않는 그 뒤 성경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살전 5:5-8)
뒤의 성경 구절들은 어두움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자지 않고 근신하여 깨어 준비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기 때문에 재림이 저들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날마다 깨어 열심히 준비하고 예비한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무 때나 오셔도 저들에게 그 재림은 도적같이 임하는
사건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도 확실하게 재확인 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2-46)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한 것 중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것이 핵심이며 그러기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준비하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설명은 위 말씀을 더욱 견고하게 해 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47-51)
예수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악한 종들은
주인이 더디 온다고 스스로 착각하여 술 먹고 때리면 살다가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르는 주인에게
엄한 처벌과 형벌을 받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변함없이 예수님은 도적같이, 홀연히, 생각지 못한 시간에
우리에게 임하신다고 강조하고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벧후 3:10)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막 13:35-37)
이 얼마나 명확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말씀들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명확하고 확고부동한 말씀들을 제쳐두고
전혀 엉뚱하게 성경을 억지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백성들을 현혹하고 혹세무민하는 이러한 자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해 스스로 말씀하시면서 가장 많이 강조하고
반복하여 주의를 요한 거짓 선지자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3-24)
홍영선은 거짓 기별자, 거짓 선지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를 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예언한 것들은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2015년 4월 12일 일요일 휴업령 예언이 불발하자 그를 추종하던
많은 이들이 그의 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홍영선은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된 거짓 기별과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 없는
예언들을 내 놓고 있습니다.
제가 엘리야의 심정으로 감히 홍영선과
그 거짓 선지자를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단호하고도 확실하게 예언합니다.
홍영선이 예언한 아래의 예언들 중
앞으로 단 하나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
1. 3월 2일 1초에 모든 병을 치료하는 늦은 비 성령 강림(이미 불발됨)
2. 4월 25일 북한 핵 포기
3. 오키나와 해일 3월, 베이징 지진 3월
4. 백두산 화산 폭발 2018년 4월, 후지산 화산 폭발 2018년 4월,
미국 옐로스톤 화산 폭발 2018년 4월, 프랑스 지진 4월,
브라질 지진 4월, 코스타리카 지진 4월, 아르헨티나 지진 4월,
엘에이 대지진 4월, 필리핀 지진 4월, 일본 대지진 4월
5. 일요일 휴업령 2018년 6월 25일(미국 시간),
죽이라는 명령 입법 6월 28일, 호주 시드니 지진 6월,
러시아 하바로브스크 지진 6월, 스웨덴 6월
6. 북극 지하 화산 폭발 10월 22일
7. 남극 지하 화산 폭발 12월 16일
8, 재림일 2018년 12월 16일(미국 시간), 한국 시간 12월 17일
이상 이 엄청난 예언들은 성경과 전혀 상관조차 없는 것들이고
오직 홍영선이 자신이 믿는 홍영선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를 통해 받은 예언들입니다.
혹시 지진이 나고 화산이 폭발해도 홍영선이 예언한 날짜를 피하고
홍영선이 지목한 그 지역을 피해서 날 것을 내가 담대히 예언합니다.
지진과 화산 폭발은 옛날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일어나는 재난이고
예수님께서 재림의 징조로 말씀하신 것이기에
그러한 자연 재해들이 세계 곳곳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홍영선이 예언한 것들은
모두 피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이 3월 4일이니 3월도 이제 겨우 26일 남았을 뿐입니다.
홍영선이 예언한 3월 오키나와 해일과 베이징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또 홍영선이 어떤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일지가 궁금합니다.
내가 미리 예언합니다만, 절대로 3월에 그 두가지 예언은 맞지 않고
불발로 끝날 것이며 놀라운 것은 그래도 그를 추종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홍영선을 계속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3월에 맞지 않은 예언에는 관심도 없고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하며
유독 가장 많은 예언을 말한 4월만 다시 그들은 기다릴 것이고,
4월에 그 엄청난 예언들이 하나도 맞지 않아도 여전히 저들은
또다시 그 다음 예언을 기다리는 짓들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마 24:28)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한 거짓 기별만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
언제나 있었왔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단설을 가지고 침투하여 비록 택한 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려는 것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풍부하게 묘사된 경계의 말씀을 읽어보라.
이러한 경계의 말씀을 읽고도 교회가 거짓된 것과 참된 것을
식별하지 못함은 어찌된 이유일까!
어떤 연유에서든지 오류로 이끌린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들 자신을 겸비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너무나 쉽사리
그릇된 길에 빠진 것을 진심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참된 목자의 음성과 낯선 자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2기별, 393-394)
미래를 알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마귀는 과거는 무당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물론 그것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결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 주시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예언이며 마귀는 흉내는 낼 수 있지만
결코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원주에서 어느 여자 분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홍영선 집회에 최근까지 참석했던 분인데 내가 홍영선에 대해
설교한 것들을 유트브에서 보고 듣고 또 나의 다른 설교들을 듣고
진리를 깨닫게 되어 이번 3월 2일 홍영선 집회에 가려던 계획도
모두 포기하고 이번 안식일에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고 하는
참으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모든 거짓과 오류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알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면서 홍영선과 같은 거짓 선지자의 거짓된 기별들에 대해
온 힘을 다하여 연구하고 반론하고 반증하는 것입니다.
재림교단의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그것 뭐.. 몇 사람이나 모인다고?’
‘그것 내 버려두면 사그러 들어... 소수가 빠지는 것을 보니 뭐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을 왜 그리도 예민하게 반응하나?’
심지어 어떤 분들은 ‘뭐 그렇게 남들이 잘 모르는 일까지 상세하게
밝혀서 모르는 사람까지 알게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말까지 합니다.
우리에 있는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나서는
목자장 예수님의 심정을 안다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오직 한 영혼을 위해서도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한 영혼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라면 결단코 그런 삯군같은 헛소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요 10:11-13)
3월 2일 홍영선의 집회에서 만난 여러 분들이 나를 알아보는
나와 같은 안식일을 지키며 화잇을 선지자로 믿으며 살아 온
재림 성도들이었고 재림 형제들이어서 나는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암 등 중병에 걸려 모든 병을 치료해 준다는 말 한마디에
저들이 파는 온 갖 기괴한 기구들을 사서 몸에 치렁치렁 매달고
홍영선의 말 한마디에 모든 희망을 걸고 쳐다보는 저들의
눈빛을 현장에서 본 나로서는 참으로 쓰라린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영혼 구원을 해 보세요...
한 영혼 구원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주는 월급이나 받고 철밥통 같은 구조 속에 발로 뛰어 피 땀 흘려
영혼을 구원한 경험이 없는 삯군들은 우리 주변에 난무하는 이설과
거짓 기별들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훗날 우리 목자장 예수께서 오시는 날 이러한 자들에게 엄중히
맡기셨던 양들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맡긴 내 양들은 어디에 있느냐?"
* 사진 설명 : 3월 2일 금요일 오전 10시 반 홍영선 집회 광경과
집회 장소 벽에 붙여 놓은 홍영선이 아담 계보로부터
영적 계보를 이어 온 남양 홍씨 27대 손이라는 족보와 묘 사진.
첫댓글 홍영선씨에게 정신과 치료를 추천합니다.
홍영선씨같은 분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 후에
약을 복용하시면 금방 좋아지십니다.
정신 환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완전히 맛이 간 사람으로
알지만 전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거의 다 정상인데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정신 환자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볼 때 홍씨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 금방 좋아질 듯 합니다.
환청과 환상이 보이는 것이 정확하구요.
요즘 그런 병에 좋은 약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