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 민용태 시창고
새집 / 민용태
자고 나면, 머리에 새집이 지어 있곤 한다. 새는 없고, 지푸라기들만 앙상하게 간밤의 온기를 안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를 본 적은 없는데,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민교수님, 머리에 새집 지었네요!” 한다. 아무리 머리를 다시 빗어도, 자고 나면 어김없이 내 머리엔 새집이 남아 있다.
나는 문득 새집이 내 머리보다 먼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내 머리가 생기기 이전, 거기는 새집이었고, 거기에는 늘 새가 살았고, 그때 새는 내 머리와 하늘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했던 것은 아닐까, 솟대 위의 새처럼, 장자의 대붕(大鵬)이라는 새처럼.
나이 들어, 내 머리에 자꾸 흰털이 비치는 걸 보면, 이건 분명 어떤 새가 버리고 간 깃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두짝처럼 자꾸 반질반질해져 가는 내 머리 보기가 안타까워, 간밤에 먼 은하수에 날아와 이런 희뿌연 기억을 다시 뿌리고 간 새.
아니다. 새는 아직 내 머릿속에 있다. 내 귀에는 아직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내 이마에 새의 부리가 느껴진다. 갈수록 구두창처럼 굳어져 가는 내 이마를 새 한 마리가 쪼고 있다. 새똥이 수북이 쌓인다.
민용태 시인은 전남 화순 출생.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를 졸업,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6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시간의 손] [풀어쓰기] [ㅅ과 ㅈ 사이] 등. 저서로는 [서양문학 속의 동양] [성의 문화사] [세계의 명작을 찾아서] [스페인 문학 탐색] [라틴아메리카 문학 탐색] 에세이 [색깔있는 메세지] [사랑과 행복의 하이테크] 등. 1970년 스페인 마차도문학상을 수상, 스페인어 시집이 여러 권 있다. 현재 고려대 스페인어과 교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출처] 새집 / 민용태|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