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가을
어느덧 만추(晩秋)의 계절을 지나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서
소설(小雪)이 낼모레로 닥아왔으나 날씨는 여전히 온순하기만 했었는데
비가 내린 후 살얼음이 얼며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했고
스산한 삭풍이 늑장을 피우던 은행잎들을 모조리 땅에 떨구어 버렸다
이런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려면 몸소 여기저기 나돌아 다녀 봐야 하는데
흐리거나 바람 부는 날을 피하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기회도 줄었고
가까운 영인산에도 쉬이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화살 나무
모처럼 맘먹고 영인산의 마지막 단풍을 보러갈까 하여 나섰건만
앞바람의 저항이 곤혹스러워 슬그머니 방향을 바꿔 삽교천 환종주길로 들어섰다
물이 빠진 아산만 바닷가의 갯벌을 뒤지는 주걱부리 저어새가
오늘은 몇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녀석들 밤새 쌈이라도 하고 분가를 해버렸나?"
아산시쪽의 삽교천 방조제 기념탑
생경스러운 물개 동상에 박정희의 휘호를 넣어 만든 기념탑은
오가는 사람들도 없지만 들여다 보는 사람은 더욱 없는 한갓지고 외진 곳에 세워져 있다
삽교천을 막아 도시화가 이루어진 당진쪽과는 비교되는 현상으로
이는 아산만방조제도 마찬가지로 평택쪽의 안중은 식당가가 형성돼 있으나
아산시쪽은 로타리만 설치돼 있어 길손들의 행선지만 바꿔준다
머릿말에 적혀 있는 연혁은 북한의 수령에 대한 절대 아부처럼
찬사의 글로 얽혀있어 낯간지러움을 느끼게 하고!
뒷면에는 삽교천 방조제의 개요가 적혀있어 규모나 길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현대 자동차 공장 앞을 지나 금성리를 지날 무렵
까치밥으로 남겼다기에는 너무 많이 달린 감들이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었다
강폭이 넓은 삽교호 위로 기러기들이 날고 있어 눈길을 맞춰봤더니
강물에도 기러기들이 집단을 이루어 쉬고 있는 모습이 잡힌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노랫가락이 흥얼거려질 만큼 기러기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멋스럽다
그리고 엄청 빠르다~!
상류로 올라갈 수록 강물위에 떠있는 기러기들의 숫자도 불어난다
소담한 은빛 갈대가 강변을 차지한 가운데 설레이는 마음은
어느새 기러기들의 울음소리로 다가갔고!
먹이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기러기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은
곧 더 먼 남쪽나라로 이동하기 위한 집결로서 서로간의 행선지를 정하려는 것 같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여럿이 모이니 엄청 시끄럽기는 하네!"
이제 곧 갈길을 정하여 이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말이 없는 삽교호는 곧 조용해질 것이고 이어서 귀족새인 백조(고니)들이 날아 올 것이다
참 그러고 보니 가창오리들은 벌써 다녀갔나?
겨울 철새들의 서식처(棲食處)이자 이동하는 무리들에게는 기착지(寄着地)이기도 한 삽교호는
지금 한창 손님맞이에 분주해진 것이다
저들이 날아 오를때에는 하늘이 까맣게 덮여 장관을 이루기도 하는데
새로 개통된 열차에서도 그 구경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철새 구경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선장포 노을 공원을 거쳐
대단위 억새군락지인 삽교천 습지로 찾아 들었다
강 건너 하평리 부근의 고수부지는 갈대를 베어내어 허허 벌판이 됐는데
이 곳 아산시쪽의 돈포리에 인접한 고수부지는
하얀 억새들이 신바람이 난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습지 안으로 들어가 이를 역광으로 바라보면 더욱 화려했을텐데
습지안은 사람들의 발길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고라니와 너구리들의 은신처이자 날짐승인 장끼(꿩)들의 서식처로
은둔(隱屯)의 땅이 된 습지는 장마만 잘 견디어 내면 이처럼 훌륭한 비경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식물중에 마지막으로 단풍이 드는 메타스퀘이아가 붉으죽죽해진 걸 보니
가을이 떠나긴 떠난 모양이로구나
삽교호를 한바퀴 돌아 본 흔적!
시간과 속도는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