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4
4. 화랑의 후예(김동리) 줄거리
어느 해 가을 파고다 공원 근처에서, '나'는 '숙부'의 소개로 접신 통령의 도인인 '황 진사'를 만나게 되었다. 숙부의 말을 빌면, 그는 정승과 판서의 후예로서 문벌이 높은 양반이었으며,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강하다고 했다.
'황 진사'는 그 이후 남루한 옷차림으로 '숙부'를 자주 찾아왔으나, '숙부'는 출타 중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숙부'를 찾아온 '황 진사'에게 성가시도록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그는 올 때마다 무슨 명약이라면서 이상야릇한 것을 내놓는다든가, 별 가치도 없는 물건을 떠맡기다시피 팔려고 하는 등, 돈에 쪼들리는 듯한 느낌이었고, 집에 찾아오기만 하면 꼭 식사 대접을 은근히 요구하였다.
'황 진사'는 그 다음 해 정월 한 달을 내내 숙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찾아와 식객 노릇만 하고 갔다. 그 해 여름, '숙부'는 대종교 사건에 관련되어 피감 되었다. '나'는 서대문 형무소에 가서 '숙부'를 면회한 후 귀가하던 도중에 광화문 통에서 우연히 '황 진사'를 만났다. 그는 그 동안 자기 조상의 내력을 찾아 다녔는데, 자신이 바로 신라 화랑의 후예임을 확인하게 되었노라며 긍지가 대단하였다.
그 후, 두 달이 지난 뒤에, '나'는 또 뜻밖에도 '황 진사'를 만났다. '숙모'와 함께 필운동 근처를 지나다 보니, '황 진사'는 아편쟁이, 병신, 거지, 중풍 환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두꺼비 기름이 만병통치라고 선전하는 어떤 약장사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그 곁에 붙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마침 '황 진사'가 순사의 단속에 걸려 점잖게 두 손을 두루마기 속에 찔러 놓고 파출소로 끌려가는 걸 보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숙모님이 '나'에게 눈짓을 하며 앞서 가셨다.
핵심정리
갈래 : 본격 소설.단편 소설. 풍자 소설
배경 : 시간(1930년대 일제 강점기). 공간(서울)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성격 : 일화적, 풍자적
표현 :
(1) 1인칭 관찰자 시점에 의한 서술로 인물의 내면을 밝히지 못함으로써, 대화와 외부 묘사가 중심이 되고 독자의 적극적 독서를 유도하고 있다.
(2) 과거의 사건을 한 장면씩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하여 황 진사의 성격과 삶의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3) 희화적인 수법으로 희극적인 주인공을 그리면서도 인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제재 : 황 진사라는 몰락한 양반 후예의 노년 생활
주제 : 몰락 양반의 시대착오적이고 자기 과시적 허세 풍자.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해 가는 양반 계층을 오만과 허위성 비판(의식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선비 후예에 대한 연민과 동정)
등장 인물
황 진사(본명, 황일재) : 나이 육십 가량의 인물. 가난하면서도 겉으로는 가문과 자존심을 앞세우는 위선적인 인물, 희화화(戱畵化)의 대상. (1) '조선의 심벌' (작중의 나의 숙부-완장 선생의 표현). (2) 몰락한 양반의 후예. (3) 변화된 세상을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전형적 인물 (허장성세의 인물)
나(서술자) : 작중화자이며, 주인공을 관찰하는 관찰자이다. 일제 강점하에서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청년.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숙부 집에서 기거. 한학적 소양을 갖추고,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 조선의 현실을 걱정하고 있는 지식인.
숙부 : 황 진사와 같은 몰락한 양반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는 인물. 금광 경영. 조선의 현실을 걱정하는 지식인. 원숙하고 포용성 있는 인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김동리의 데뷔작으로 그의 소설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된다. 작가는 전통 세계를 소재로 하여 그 전통 세계의 현재적 위상을 탐구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하는데, 이 소설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전통성은 이른 바 '조선의 심벌'과 같은 황 진사의 정신적 전통이다. 황 진사에게 내포되어 있는 전통적 정신세계의 허와 실을 구상화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구성은 다소 특이하다. 주인공 황 진사의 행동을 적절한 몇 개의 삽화로 나열하여 성격을 제시하려 한 점인데, 이것은 서술자와 서술 내용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주인공 황 진사의 성품은 한마디로 대단히 부정적이다. 거들먹거리기만 하고 실속은 없고, 허풍쟁이에다가 위선적이기까지 하며, 명분을 중시하면서도 명분에 어긋난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서도 일말의 죄의식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황 진사의 부정적 성품을 비판하고 풍자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황 진사를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허풍이나 허세로 보이는 행동의 저변에는 자존심이라는 정신적 올곧음이 있으며, 특히 과부와의 혼담을 거절하는 대목에서는 선비다운 일면이 보이기도 한다.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 시대착오적 인물이고 받아들이기 곤란한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가치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어차피 사라져 가게 되어 있는 것에 대한 연민의 정서로 작품을 썼을 가능성이 많다.
이 소설의 내레이터인 '나'의 태도 → '나'는 일제하의 지식인으로 새로운 학문과 세계관을 섭렵한 자로서 황진사의 이런 면이 용인 될 리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황진사를 경원시한다. 그러나 만남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심리적 거리는 단축되어 가는데, 처음 불쾌함의 감정이 그 다음에는 반가움으로 바뀌면서 황진사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어 간다. 결국 이 소설의 핵심은 지식인의 눈에 비친 전통 정신은 비판과 연민을 동시에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 의식의 일면을 드러내 그것을 희화화함으로써, 그것의 부정적 요소를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그 부정성 속에 감추어진 긍정적 측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틋한 향수의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