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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지하드
지하드의 원래 의미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지하드(jihād)를 가리켜, 이슬람교의 신앙을 전파하거나 방어하기 위하여 벌이는 이교도와의 투쟁을 이르는 거룩한 전쟁(성전)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이슬람법에 따라 모든 무슬림 성년 남자는 의무적으로 이 지하드에 참가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아랍어에서 지하드의 원래 의미를 살펴보면, 노력 혹은, 분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아래 꾸란 구절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신의 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모든 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영적인 어려움에 대한 자기의 내면적 노력과 분투를 말한다.
“믿는 자들이여 허리 숙여 부복하고 주님을 경배하며 선을 행하라. 하나님의 길에서 성전하라. 그 성전은 그분의 권리라. 그분께서 너희를 선택하사 종교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했노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조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르라.” (꾸란 22:77~78)
그러므로, 무슬림들의 표현을 빌려서라도 지하드의 원래 뜻은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충돌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 의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를 거룩한 전쟁(성전)이라고 불렀다. 이는 이슬람교를 가리켜 스스로 평화의 종교라는 무슬림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하드는 전쟁에서 사람들을 끔찍하게 살상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천국으로 직행하는 무자헤딘(mujāhidīn)
이슬람교가 태동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수많은 이교도와의 충돌과정에서 전투가 불가피했다. 이때 전투에 참전하는 무슬림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영적인 지하드에서 물리적인 지하드를 파생시켰다. 그리하여, 모든 무슬림 병사에게 당시의 전투를 거룩한 전쟁으로 인식하게 했으며, 이들을 향해 성전에 참여한 전사라는 뜻의 ‘무자헤딘’이라고 불렀다. 이슬람교에서 알라의 전적인 권한이기에 인간들에게는 늘 불확실한 구원과 천국이 지하드에 참전해서 전사한 무자히딘 병사들에게만은 예외 사항으로 만들어졌다. 즉, 아래 꾸란 구절처럼, 지하드에 참전해서 전사한 모든 무자헤딘은 바로 천국으로 직행하며, 천국에서 그들이 받을 상급은 매우 크다는 것으로 고무하고 있다.
“그로 하여금 알라의 길에서 투쟁케 하라. 이들은 현세를 버리고 내세를 구하려 함이거늘 알라의 길에서 투쟁하는 자에게는 살해당하던, 승리를 거두던 알라는 그에게 크나큰 보상을 주리라”(꾸란 4:74)
이런 의미에서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지하드를 둘로 나누어서 보이지 않는 내면적 투쟁을 의미하는 정신적이고 영적 지하드와 보이는 물리적 전투적 지하드가 되었다. 그래서 전자를 대(大) 지하드, 후자를 소(小) 지하드로 부르기도 한다. 후자의 전투적 지하드는 이슬람과 그 공동체를 수호하고 건설하기 위해 비 무슬림들과의 실제 전투에 참여해서 무력으로 투쟁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면서도, 이슬람법 이념에서 전 세계는 이슬람 주권이 확립된 이슬람 세계(dār al-Islām)가 되어야 하며, 아직 그 주권이 확립되지 않은 세계는 전쟁 세계(dār al-harb)로 정의하면서 이슬람의 주권이 확립될 때까지 그곳에서는 지하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와 지하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위협을 느끼게 되자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그는 메디나에서 어느 정도 그의 세력을 형성하자 메카를 정복하기 위하여 메카 사람들의 무역로를 차단하고 대상들을 습격하는 등 무력을 사용한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바드르’ 전투가 발발하였다. 당시 그 전투에서 삼백의 무슬림이 천명의 메카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꾸란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바드르’ 전투 직전까지 메카의 꾸라이쉬 부족에 대한 무력 공격을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너희가 (전투에서) 불신자를 만나면 그들의 목을 쳐라.”(꾸란 47:4).
무함마드 후계자들의 지하드
무함마드 사후 4명의 정통 칼리프(후계자)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중 첫 번째 칼리프인 아브 바크르만 나이 들어 죽고, 나머지 세 명의 칼리프는 모두 다른 무슬림 정적들에게 암살당했다. 바로 이 암살 행위에 지하드 개념이 덧붙여졌다.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부패한 지도자나 이슬람법을 어기는 자들도 지하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제4대 정통 칼리프인 알리는 제3대 칼리프인 우스만의 친척이며 시리아 총독인 무아위야로부터 공격받게 된다. 이때 알리를 따르는 무슬림들로부터 시아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알리에 대항한 무아위야는 움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수니파를 형성한다. 이것이 이슬람의 거대한 두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시작이며, 이들은 처음부터 죽고 죽이는 살인을 통해 원한의 깊은 감정의 골을 절대 메울 수 없이 중동에서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알리의 아들 후세인은 무아위야의 군인들에 의해 ‘카르발라’(지금의 이라크)에서 죽임을 당하는데(A.D. 68), 시아파 무슬림들은 후세인이 수니파 무슬림들에 의해 죽임당한 날을 후세인 순교일로 정하고 매년 추모행사(아슈라)를 가지면서 수니파 무슬림들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다. 이 사건이 바로 오늘날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들 사이에서의 갈등과 충돌의 시작이다.
카리지파와 지하드
‘이탈자’, ‘탈퇴자’라는 뜻을 지닌 ‘카리지야’라는 말에서 유래된 카리지파는 제4대 칼리프인 알리 진영으로부터 이탈한 자들이다. 카리지파는 시아파를 만든 알리와 수니파를 만든 무아위야 모두를 알라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암살을 단행했다. 하지만, 카리지파는 알리만 암살하고(AD 661년), 무아위야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카리지파가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에 끼친 영향은 정권에 대항한 혁명적 반란과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하드를 관행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리지파는 모든 무슬림이 실천해야 하는 다섯 가지 덕목인 오행(五行)에 이슬람의 지하드를 더해 육행(六行)으로 간주하여 이를 의무화했다.
현대 이슬람 지하드
오늘날 이란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 호메이니는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한 병사들에게 지하드의 순교자라고 부르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 점에 있어서는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는 자들에게도 역시 무자헤딘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대 이슬람 지하드의 가장 큰 적은 누가 뭐래도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돕고 있는 세력이다. 9·11 테러의 주범으로 알카에다를 이끌던 오사마 빈라덴의 잔인무도한 행위가 이슬람의 지하드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하는 무슬림들이 있지만, 오사마 빈라덴 자신은 이슬람의 지하드를 수행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전투원이든 민간인이든 미국인과 그 동맹자들을 죽이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개인적인 의무다. 이는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사원을 해방하기 위해, 신성한 메카 사원을 저들의 손아귀에서 해방하고 그들의 군대를 이슬람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이다.”
이슬람의 무자히딘과 천국
이슬람 안에는 우리처럼 대속자나 구속자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구원의 확신, 즉, 자기들이 천국에 갈 확신이 없다. 그러나, 꾸란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을 하나를 확실히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슬람 지하드에 참여한 무자헤딘이 순교하는 것이다.
꾸란은 지하드에 참전하여 순교하면 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알라는 믿는 자 가운데서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재산을 사시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그들은 알라를 위해서 성전하고 투쟁하며 순교하리니.”(꾸란 9:111).
그렇다면, 지하드에 참전한 무자헤딘들에게 보장된 천국은 어떤 곳인가? 꾸란에 소개된 천국은 남자들이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은 술을 마시고, 눈이 크고 예쁘며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알라를 믿고 선행을 하는 자를 천국에 들게 하리니 강이 흐르는 그곳에서 영생케 하리라. 그곳에는 순결한 아내가 있노라. 또한 그들을 온화한 그늘에 들어가게 하리라.”(꾸란 4:57).
“그들은 가장 축복받은 천국에서 … 그것은 머리가 아프지 아니하고 취하지도 않더라. 그들 주위에는 순결한 여성들이 있나니 그녀의 눈은 잘 보호되었고 눈은 크고 아름다우매 마치 잘 보호된 달걀과 같더라.”(꾸란 37:43~49).
꾸란의 천국은 남자들의 욕심, 그곳도 죄악으로 가득 찬 남자들의 욕심이 마음껏 성취될 수 있는 곳이다. 꾸란의 천국은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것도 거룩한 남자도 아니고 죄악 된 남자가 중심이 되고, 그 남자를 위한 술과 여자가 있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는 분명히 혈과 육의 싸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신약성경은 우리의 싸움을 가리켜 결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 무슬림들 가운데 성경의 천국이 꾸란의 천국과는 달리 이 땅에서 완전히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덧입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임을 깨달아 그리스도인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아무쪼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천국을 보장받는 더욱 많은 회심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패러다임 변화를 통한 현대판 이슬람 지하드
이슬람은 “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이란 외침을 가지고 우리만큼 포교에 열정적이다. 그러나, 위에서 기술한 수많은 이슬람 지하드의 잔인한 모습을 가지고 포교가 될 수 없음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폭력적인 지하드에서 비폭력적 지하드로 그 모양과 방법이 바뀌고 있다. 지금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비폭력 지하드가 전 세계 안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다.
무슬림 유학생들이 대학으로 들어가면서 교육 지하드로, 수많은 이슬람의 문명을 소개하는 출판, 언론, 문화 지하드로, 무슬림 이주를 통한 사회 지하드로, 오일머니를 활용한 경제 지하드로… 전 지구촌에 전혀 지하드처럼 보이지 않는 지하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슬람 포비아로 여기며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그들을 향해 우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우리의 곁으로 보내주신 복음을 받아야 할 전도와 구원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문제는 지금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는 적지 않은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이다.
마지막으로, 1986년에 개봉한 ‘미션’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소개한다. 18세기 남아메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선교사가 외친 이 한마디를 지금도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살인과 테러를 자행하는 모든 무자헤딘에게 외친다.
“만약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이 사용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다.”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114159
이란, 중동에서 기독교인들 몰아내려 민병대 이용…‘보이지 않는 지하드’ 전쟁
이란이 중동을 순수한 무슬림들만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민병대를 이용해 기독교인들을 몰아내는 상황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지하드(성전, 聖戰)’를 치르고 있다는 새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13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따르면 근동 지역의 기독교 옹호 비영리 단체 ‘필로스 프로젝트(the Philos Project)’의 “보이지 않는 지하드: 이란 민병대는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예멘에 주둔하고 있는 이란 민병대가 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을 감소시키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그닥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한 비영리단체는 “시아파 이슬람 국가가 지원하는 민병대는 ‘순수하게 무슬림으로만 구성된 나라의 신정(神政) 정권의 비전’에 따라 훈련을 받고 있고, 기독교인이 강제로 쫓겨날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보이지 않는 지하드’를 ‘강제 이주를 통한 기독교인들의 인구 감소’로 정의하면서 “이들 민병대는 대규모 인구이동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현존하는 갈등을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시아파와 수니파를 막론하고 이슬람 국가들은 비록 기독교인을 2류 시민으로 취급하면서도 무슬림들과 함께 보호해왔다. 그러나 1979년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신 시아파주의’ 또는 ‘호메이니즘’을 도입했고,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중동 탈출 배경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러면서 “코란에 의하면 비무슬림들은 정신적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무슬림들과 함께 살 만큼 깨끗하지 않다. ‘호메이니즘’은 이슬람과 이란에서 유대교-기독교의 불순함을 정화할 것을 신자들에게 촉구했는데, 이는 이슬람 신부흥운동(palingenetic revivalist ideologies)과 공통되는 견해”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기독교인을 집단으로 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대신 강제 이주시키는 대안 정책을 택했다.
레바논
이 보고서는 레바논에서 친이란 성향의 헤즈볼라가 “미니 테헤란이라 불리는 공공장소에서 엄격한 복장 규정, 음주 금지, 남녀 혼성 제한 등을 규제하면서 선교사들을 목표로 삼고 개종을 방해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의하면 1950년대 레바논의 약 54%였던 기독교인의 비율은 2020년에는 33.7%로 낮아졌고, 기독교인들의 토지소유권도 감소했다. 일부 토지는 이민자들에 의해 합법적으로 매각되었지만, 헤즈볼라가 조치한 퇴거명령과 추방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상당한 토지 소유권을 잃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레바논을 여러 차례 방문한 극우파 아야톨라 모하메드 타키 메스바 야즈디의 지시를 받았다. 메스바 야즈디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영향을 받은 제자였다.
보고서는 “2000년도 이후 헤즈볼라의 최우선 과제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선교 부흥의 산물인 레바논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을 겨냥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인도주의적 활동을 벌이던 미국의 OM선교회 선교사를 표적으로 삼았고, 선교사는 2002년 살해됐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이라크에서는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이란이 여러 시아파 민병대를 창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에 저항하기 위해 처음 고용된 민병대는 알카에다의 분파인 ‘아부 무사 알 자르카위’ 치하의 ‘이라크 알카에다(AQI)’가 이라크와 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로 변모하면서 미국 침공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라크 내 종파간의 분쟁이 일어나면서 기독교인이 최대 피해를 입었다.
1987년 이라크 인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이라크에는 15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었지만 현재는 14만 1000명까지 현저히 감소했다.
보고서는 “2003~2017년 이라크 기독교인들은 AQI와 ISIS, 이란과 연계된 시아파 민병대의 통제 아래 큰 피해를 입었다.”며 “불행히도 많은 공격이 익명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AQI와 ISIS가 시아파와 비교해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침공 직후,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민병대인 시아파 마흐디는 바그다드의 인구통계 수치를 바꿨다. 보고서는 “기독교인이 없는 수도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우선 과제였다.”고 지적했다.
알 사드르는 같은 시아파 거주지역을 만들기 위해 수니파의 특정 지역을 공격하는 것으로 그 신호탄을 삼았다. 한 예로, ‘바그다드의 바티칸’으로 알려진 알두라 지역은 5000 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교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곳에는 다양한 교회, 수도원, 심지어 교황청 대학까지 있었다. 알두라의 기독교인들은 군사 또는 테러 공격에 취약한 대상으로 여겨졌고, 대다수가 난민 캠프나 쿠르드 지역으로 쫓겨났다.
시리아
시리아는 ‘중동의 지배’라는 장기적 목표를 고려할 때 이란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이란은 수니파가 우세한 시리아에서 시아파 집단 알라위파 소속 아사드 가문을 통해 시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1년 시리아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내전이 일어나자 이란은 시리아군을 재편성하고 시아파 해방군 내에 여러 민병대를 창설했다.
이란이 아사드 정권을 돕는 동안 내전으로 60만 명이 사망하고 650만 명이 국내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으며, 660만 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했다.
보고서는 “기독교인들이 살던 여러 지역이 영향을 받았다. 2011년 시리아 전체 인구의 10.5%에 해당하는 230만 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이들 기독교인 대부분은 카미실리, 데이르 에주르, 하사카, 알레포, 홈스, 다마스쿠스, 바디 알 나사라(기독교인의 계곡)와 다라아 주변에 거주했다. 그러나 2021년까지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는 놀랍게도 70%까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시아파 민병대 때문에 수십 명의 기독교인들이 살해당했다. 또 많은 기독교인들이 몸값 때문에 납치되고, 고문을 당했으며 재산을 몰수당했다. 보고서는 2011~2019년 사이 교회에 대한 폭행이 124건이며, 기물파손 등 75건의 폭력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예멘
필로스 프로젝트에 따르면 바드레딘 알 후티와 그의 아들 후세인은 예멘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시아파 분파인 자이디스 그룹에 속해 있으며, 2014년 반란을 일으킨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후원하는 이란의 콤(Qom)에 있는 종교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단체는 또 “후티족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영토에서 기독교인들을 없어버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로마 가톨릭, 성공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 여러 교파가 있었는데 약 4만 명이었다. 또한 무슬림에서 개종한 기독교신자(MBB)들이 있었다. 현재는 약 3000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있다.”고 했다.
기독교 공동체를 위협하기 위해 후티족은 몇몇 유명한 기독교인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했다. 그들은 2016년 3월 아덴의 한 가톨릭 양로원에서 구호단체의 선교사인 수녀 4명을 포함해 16명을 살해했다.
보고서는 유엔이 앞서 말한 이란의 ‘보이지 않는 지하드’에 대해 보고할 특별조사위원을 임명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미 국무부는 이란과 민병대가 기독교인들이 거주지역에서 떠나가도록 강요하거나 이들의 귀환을 막아 기독교인 수를 줄인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크리스천퍼스펙티브
극심한 박해로 인해 이란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매일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과 같은 박해를 경험하고 있다.”며 기도를 요청해 왔다. (관련기사)
그러나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박해를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관련기사)
또한 수많은 성도들의 기도와 현장에서 헌신한 사람들을 통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회적 변화가 있다. ‘가정교회 예배’가 불법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바 있다. (관련기사)
가혹한 박해를 경험하고 있는 이란과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자.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께서 사로잡으시면 죽음을 뛰어넘는 믿음이 빛나게 될 것을 믿는다. 또한 온갖 위험에서 지켜주시도록 간구하자. 그들의 절박한 필요를 채워주시고 인도해주시도록 함께 구하자. 어둠은 절대로 빛을 이길 수 없다. 각 나라로 뻗어가려는 이란의 악한 시도가 있다고 해도 그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구원을 이루어내실 것을 믿는다. <UTT(Understanding The Times)제공>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114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