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를 논하고자 한다면, 먼저 연개소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고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작업은 대단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단편적인 역사 기록이 보여주는 것은 결과 뿐이며, 연개소문이 실제로 어떤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 판단할 만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가 영웅인지, 독재자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단지 "과거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된 사실" 만 가지고 말하자면, 연개소문은 단지 "당의 대군이 고구려에 침입하여 고구려가 이를 격퇴한 순간에 고구려측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 이다.
당나라와 고구려가 첫번째로 격돌했을 때를 살펴보자. 이 때 연개소문은 사실 당의 침입을 격퇴하는데 별로 공헌한 것이 없다.
연개소문을 비롯한 고구려 지휘 본부가 당군을 격퇴하기 위해 편성하여 보낸 군사는 15만에 이르렀는데, (이 병력이 전부 전투병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중에 당나라가 노획물을 점검할 때 5만두나 되는 소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이 군대가 대규모 수송인원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안시성을 비롯한 요동의 방어 기지에 병참을 대려 했을 수도 있다.) 이 군대는 주필산에서 전투를 치른 끝에 와해되었다.
그 결과 안시성이 고립되었고, 10만에 이르는 군민들이 초인적인 힘과 지혜를 짜 내지 않았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안시성의 성주는 원래 연개소문과는 대치하던 입장이었다.
바로 이점때문에,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만들려 한 역대의 논자들은 처음부터 큰 논리상의 결함을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단재 신채호는 안시성 성주가 연개소문과 대치했다는 기록을 "허위" 라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의 근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단 그는 안시성이 고구려의 3경 가운데 하나이므로 연개소문의 반대파가 이런 중요한 성을 차지할 수는 없고, 당태종이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을 무마하려고 연개소문도 어쩌지 못했던 성이라고 꾸미기 위해 이런 조작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시성을 고구려의 3경 가운데 하나라고 한 것 부터가 무근거이며, 조작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안시성도 연개소문의 관할 하에 있었다" 는 자신의 독특한 견해로부터 나온 것이니 결국에는 주장이 다시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되는 순환 논증일 따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연개소문이 파견한 병력이 주필산에서 와해되었다는 기록도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끝내 어떠한 사료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추리소설에서 범인을 찾는것과 같은 태도로 사료를 재단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연개소문이 파견한 15만의 병력이 패하고 안시성이 고립되어 60일간의 농성이 시작됨은 전쟁의 대국이다. 사료의 어느 부분은 신뢰하고 어느 부분은 부정하겠다면 그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주필산에서 고구려군이 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 근본적인 이유는 전투 이후 당군이 처리한 인원이 15만에 비해 적다는 데 있다. 즉, 전투시 1만명이 사망하고 3만6500명이 투항하는데, 이는 전체 인원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나라가 정말로 패배 혹은 무승부를 승리로 뒤집어 꾸미려 했다면 어째서 이 숫자에는 조작의 손을 대지 않았을까? 앞서 지적한 것 처럼, 당시 고구려의 군사 15만에는 대규모의 수송 인력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며, 전황이 불리해진 후에 도주하였을 인원도 고려해야만 한다.
세세한 논의를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조감으로 돌아가자면 결국 이런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근거를 찾는 성격을 띠고 있다. 전쟁 동안 연개소문이 한 일이 고작 참패를 당한 군사를 보낸 것 이외에는 없었다는 식의 전개가 만족스럽지 않은 나머지 "연개소문이 보낸 군대는 사실 패배하지 않았고 결국 이 군대가 나중에 당의 군사를 몰아낸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욕구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사료를 있는 그대로 읽는다면, 연개소문은 당나라와의 충돌만 야기했을 뿐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구원하기 위해 파견한 대군은 참패를 당했고, 개모성에 보낸 지원군은 무기력하게 사로잡혔다. 이 사건 이후에 평양의 총 지도부가 대체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사료상으로는 "완전 버로우" 라고 해도 이상한 점이 없다.
역시 이런 결론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고구려의 지도부가 결코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당의 군량을 노획하였을 것이라거나, 함락된 성책들을 공략했으리라는 등의 주장이 있지만, 역시 사료에 없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런 얘기들이 진실이라고 볼만한 필연은 없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왜 연개소문의 공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유사한 상황을 거론하자면, 예컨대 임진왜란의 전승이 선조의 공적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연개소문의 경우에도, 우리가 그를 특별히 변호해 주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연개소문 옹호론은 대개 단재 신채호의 견해에서 출발하였는데, 오늘날 그가 거론한 논거는 대부분 부정되었지만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본 "결론" 만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니 괴이한 일이다.
대부분의 "재야" 이론이 그렇듯이 연개소문의 뛰어난 업적을 강조하는 주장들은 거의 예외없이 "관련 사료가 조작되었다" 는 조작론으로 귀결된다. 사료 조작설은 원래 입증이 대단히 힘든데, 특히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는 아예 증명 할 수 없는 얘기들이 많다. 결국 이런 말은, "근거는 없지만 이렇게 믿어야 한다" 는 것인데 왜 우리에게 그러한 정신적 의무가 짐지워지는 것인지 알기 힘든 노릇이다.
첫댓글연개소문에 대해서는 김용만 선생님의 저서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을 강력 추천하고 싶습니다. 민족주의적 측면을 모조리 재야의 잘못된 주장으로 올인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연개소문이 독재자였으니까 나쁘다 라는 점을 우선 생각하는데,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가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측 전략의 최종 지휘자였다는 의미도 됩니다. 과연 안시성 전투는 최고지도자인 연개소문과 무관할까요? 혹자는 "연개소문이 그 존재 자체가 나라를 말아먹게 만드는 존재"라고까지 말하는데, 저는 그런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고-당 전쟁에서 연개소문과 고구려인들의 활약상을 우선 검토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 이글은 지나친추측에의한 연개소문영웅만들기프로젝트를 비판하는시각에서 쓴글이기때문에 님이지적하신부분들이 좀 부각되었던것같습니다. 전 연개소문이 뛰어난 정치가였다거나 간웅이었다는데에는 이견이없습니다만 연개소문을 걸출한 책략가이자 무장으로만드는데에는 불만이좀많은사람입니다^^ 새로쓰는연개소문전은 이미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당전쟁에서의 전략싸움에서는 초장부터 고구려의 '완패'였습니다. 전쟁을 뒤집은것은 기적적인 해전에서의승리와 안시성전투덕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연개소문이 그전쟁을 총괄했다고해도 사실 전체적인 전략의승리라기보다는 그저각각의 전투를 훌륭히치뤄낸전쟁이라고 볼수도있을것같습니
제 생각엔 그 책을 보셨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연개소문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그의 군사적 능력 때문입니다. 1차 고-당 전쟁조차도 최종적으로는 고구려의 승리였고, 결코 '완패'라고 불릴 만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개소문은 집권한지 1년도 채 안되어 시작된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셈이었습니다. 게다가 연개소문 정권은 전쟁 대비를 충분히 준비하여 2차 전쟁에서도 사수대첩 등의 훌륭한 성과를 거둡니다. 제가 최근에 제 블로그 이야기까지 하면서도 거론하였지만, 이른바 1, 2차 고-당 전쟁에서 연개소문이 당나라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사실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중국측에서도 연개소문의 군
사적 능력을 높이 샀으며, 이러한 고구려의 대승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되었습니다. 게다가 원세조 쿠빌라이가 고려의 사신이 자신에게 온 것을 두고 말하길, "당태종조차 넘지 못한 고려를 내가 넘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고구려와 고려의 구분 문제를 떠나서, 고구려의 전승 역사가 동아시아에 널리 알려졌었다는 것입니다).
전략도없는 각각의 전투의 승리만으로 전쟁을 승리로이끌었다고 말한적없습니다. 지나친 흑백논리군요. 일단 전략적으로 '이긴'전쟁이 아닌것만은분명합니다. 고구려는 당나라보다 더많은병력을잃었고 수많은성들을 빼앗겼었습니다. 연개소문이 처음에는지다가 안시성에서 당나라대군의발을묶어놓고 반격을 꽤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어렵습니다. 총체적인 전술의 승리라고 볼수는없는전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기에 viceversa님의 말씀은 당나라측의 기록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 같습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도, 당군은 실제로 크게 고전했음에도 중국측 기록에 이것이 자세히 언급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기피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1차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가 총체적으로 승리한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 중국측의 자료를 인용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남아있는 자료라도 마땅히 활용을 해야지요. 그러나 그 기록이 중국측 입장만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기록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김선생님은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에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당군의 실상에 대해 고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고구려가 당나라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다, 따라서 고구려의 총체적 승리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실상을 간과한 것이라는 겁니다. // 그런데 저는 단재 신채호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는 왜 나온 것인지 모르겠네요 ;;
viceversa 님, 본문 중에 전제가 좀 잘못된 부분이 있는 듯 해서 언급을 하겠습니다. 안시성주와 연개소문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여 마찰이 있었다는 전제를 단재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통해 드러내셨는데 단재의 논증은 저도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결론적으로는 단재가 내린 결론이 그닥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연개소문이 정권을 탈취한 후 신라 접경지역에 있던 성 2개를 직접 공격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앙이나 지방에 연개소문 정권을 위협할만한 요소가 잔존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자칫 역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그런 과감한 행동을 벌일 이유가 없지요.
물론 이것이 내부적 혼란을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위기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연개소문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으며 그에 따른 위기감 고조가 이미 있었던 와중 이기 때문에 고작 그런 이유로 신라와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요. 따라서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대항했다거나, 혹은 임용한 선생님이 주장한 과거 유력 귀족들의 가신 세력 축출을 통한 전반적인 국력 약화 얘기는 저로서는 썩 내키지 않더군요.
좋은의견감사합니다. 그런데 단재의 연구는 과정은없이 결과만 둥하고떠버린것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빙성을뜨기힘이들고 그 열정에는 박수를보냅니다만 다소 객관적이지못한 역사가였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연개소문이 정권을탈취한후 신라의 성2개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그냥 "설마 안시성에서 언제처들어올지도모르는데 군대를뺐겠나..하는 단순한 추측으로보여집니다.." '증거'가 되기에는 한참부족해보입니다.. 이렇듯,, 사실상우리가 연개소문을 변호해줘야할 근거는 어디에도없다는것입니다..
변호해 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단인님의 말씀은 연개소문 정권이 외부의 적과 싸우러 당장 힘을 쓴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배반하는 세력이 없을 만큼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단인님의 지적을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는 심지어 흑수말갈과 같은 세력들까지 단결시켜서 대당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연개소문이 결속력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viceversa님, 연개소문이 전략적으로 능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사실의 영역입니다. 영웅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이렇듯 충분한 근거가 있는데 "피차 근거가 없으니"는 어인 말씀이신지요? 님은 지금 단재 신채호 등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초기에 가졌던 영웅사관을 현재 카페 회원분들의 주장과 구분하지 않은채 한꺼번에 비판하려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 카페 회원분들의 주장은 "연개소문이 한국사 최고의 영웅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게 아닙니다. 제가 첫 꼬리말에서도 지적했듯, viceversa님이 반론을 펴시려거든, 신채호 등의 극단적 주장과 카페 회원 분
당태종曰: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지세도 험하고 군사들도 정예병이고 그 성주는 재능과 용맹이 있어 막리지의 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성을 지켜 막리지가 공격하였으나 물리치지 못하였다 하였다."→ 카더라 통신으로 보입니다만...;;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을 보시고 이 글을 쓰신 것 같은데(아님 죄송합니다.^^;;),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은 오히려 연개소문을 영웅신화에서 벗기려고 노력한 책입니다. 영웅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비꼬는 듯한 표현은 자제해주셨음 좋겠습니다. 저 또한 연개소문이 신화 속에서나 나올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료를 있는 그대로 읽는 것' 이야말로, 역사읽기에서 가장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입니다. 19세기 랑케가 만든 '실증'의 허구에 얽매인 선학들이 수없이 저질러 왔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려는 님의 태도가 안타깝습니다. 연개소문과 여당전쟁 관련기록을 삐딱하게 봐야만 하는 이유는, 연개소문이란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기록자가 가려놓은 당대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현존 사료의 여당전쟁 기록은 그대로 읽으면 앞뒤가 전혀 안맞습니다. 그래서 '새로쓰는 연개소문전'같은 재해석이 나오게 된 겁니다.
첫댓글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김용만 선생님의 저서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을 강력 추천하고 싶습니다. 민족주의적 측면을 모조리 재야의 잘못된 주장으로 올인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연개소문이 독재자였으니까 나쁘다 라는 점을 우선 생각하는데,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가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측 전략의 최종 지휘자였다는 의미도 됩니다. 과연 안시성 전투는 최고지도자인 연개소문과 무관할까요? 혹자는 "연개소문이 그 존재 자체가 나라를 말아먹게 만드는 존재"라고까지 말하는데, 저는 그런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고-당 전쟁에서 연개소문과 고구려인들의 활약상을 우선 검토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 이글은 지나친추측에의한 연개소문영웅만들기프로젝트를 비판하는시각에서 쓴글이기때문에 님이지적하신부분들이 좀 부각되었던것같습니다. 전 연개소문이 뛰어난 정치가였다거나 간웅이었다는데에는 이견이없습니다만 연개소문을 걸출한 책략가이자 무장으로만드는데에는 불만이좀많은사람입니다^^ 새로쓰는연개소문전은 이미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당전쟁에서의 전략싸움에서는 초장부터 고구려의 '완패'였습니다. 전쟁을 뒤집은것은 기적적인 해전에서의승리와 안시성전투덕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연개소문이 그전쟁을 총괄했다고해도 사실 전체적인 전략의승리라기보다는 그저각각의 전투를 훌륭히치뤄낸전쟁이라고 볼수도있을것같습니
제 생각엔 그 책을 보셨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연개소문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그의 군사적 능력 때문입니다. 1차 고-당 전쟁조차도 최종적으로는 고구려의 승리였고, 결코 '완패'라고 불릴 만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개소문은 집권한지 1년도 채 안되어 시작된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셈이었습니다. 게다가 연개소문 정권은 전쟁 대비를 충분히 준비하여 2차 전쟁에서도 사수대첩 등의 훌륭한 성과를 거둡니다. 제가 최근에 제 블로그 이야기까지 하면서도 거론하였지만, 이른바 1, 2차 고-당 전쟁에서 연개소문이 당나라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사실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중국측에서도 연개소문의 군
사적 능력을 높이 샀으며, 이러한 고구려의 대승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되었습니다. 게다가 원세조 쿠빌라이가 고려의 사신이 자신에게 온 것을 두고 말하길, "당태종조차 넘지 못한 고려를 내가 넘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고구려와 고려의 구분 문제를 떠나서, 고구려의 전승 역사가 동아시아에 널리 알려졌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사료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한문학자들이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료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 해석 해야 한다 그러더군요.
전략적인 입장에서의 위치자가 작전술과 전술적 위치에서의 책임은 하급제대 책임자에게 위임됩니다. 괜히 군단장 위에 군사령관이 있고 군사령관 아래에 군단장이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전략도 없는 각각의 전술적 승리만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요? 그럼 왜 로마제국은 게르만족에게 용해되었을까요? 로마제국은 전술적으로는 계속해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전략도없는 각각의 전투의 승리만으로 전쟁을 승리로이끌었다고 말한적없습니다. 지나친 흑백논리군요. 일단 전략적으로 '이긴'전쟁이 아닌것만은분명합니다. 고구려는 당나라보다 더많은병력을잃었고 수많은성들을 빼앗겼었습니다. 연개소문이 처음에는지다가 안시성에서 당나라대군의발을묶어놓고 반격을 꽤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어렵습니다. 총체적인 전술의 승리라고 볼수는없는전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기에 viceversa님의 말씀은 당나라측의 기록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 같습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도, 당군은 실제로 크게 고전했음에도 중국측 기록에 이것이 자세히 언급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기피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1차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가 총체적으로 승리한 것은 분명합니다.
설령 중국측의 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는다 하더라도 단재의 주장 그 자체 또한 사료상의 근거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중국측의 자료를 인용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남아있는 자료라도 마땅히 활용을 해야지요. 그러나 그 기록이 중국측 입장만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기록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김선생님은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에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당군의 실상에 대해 고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고구려가 당나라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다, 따라서 고구려의 총체적 승리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실상을 간과한 것이라는 겁니다. // 그런데 저는 단재 신채호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는 왜 나온 것인지 모르겠네요 ;;
viceversa 님, 본문 중에 전제가 좀 잘못된 부분이 있는 듯 해서 언급을 하겠습니다. 안시성주와 연개소문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여 마찰이 있었다는 전제를 단재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통해 드러내셨는데 단재의 논증은 저도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결론적으로는 단재가 내린 결론이 그닥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연개소문이 정권을 탈취한 후 신라 접경지역에 있던 성 2개를 직접 공격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앙이나 지방에 연개소문 정권을 위협할만한 요소가 잔존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자칫 역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그런 과감한 행동을 벌일 이유가 없지요.
물론 이것이 내부적 혼란을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위기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연개소문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으며 그에 따른 위기감 고조가 이미 있었던 와중 이기 때문에 고작 그런 이유로 신라와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요. 따라서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대항했다거나, 혹은 임용한 선생님이 주장한 과거 유력 귀족들의 가신 세력 축출을 통한 전반적인 국력 약화 얘기는 저로서는 썩 내키지 않더군요.
좋은의견감사합니다. 그런데 단재의 연구는 과정은없이 결과만 둥하고떠버린것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빙성을뜨기힘이들고 그 열정에는 박수를보냅니다만 다소 객관적이지못한 역사가였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연개소문이 정권을탈취한후 신라의 성2개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그냥 "설마 안시성에서 언제처들어올지도모르는데 군대를뺐겠나..하는 단순한 추측으로보여집니다.." '증거'가 되기에는 한참부족해보입니다.. 이렇듯,, 사실상우리가 연개소문을 변호해줘야할 근거는 어디에도없다는것입니다..
변호해 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단인님의 말씀은 연개소문 정권이 외부의 적과 싸우러 당장 힘을 쓴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배반하는 세력이 없을 만큼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단인님의 지적을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는 심지어 흑수말갈과 같은 세력들까지 단결시켜서 대당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연개소문이 결속력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근거 또한 당태종의 카더라 통신이므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당서의 내용을 당태종의 카더라통신이라하신다면 제가할말은없습니다만 피차근거가없으니 기왕우리나라사람인데 영웅으로 만드는게좋지않느냐..하는가설은곤란하다는것입니다. 지나친실증주의라고보실수도있으시겠지만 연개소문을 '변호'해야하는이유는 과연무엇인가.. 하는생각이었습니다..
viceversa님, 연개소문이 전략적으로 능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사실의 영역입니다. 영웅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이렇듯 충분한 근거가 있는데 "피차 근거가 없으니"는 어인 말씀이신지요? 님은 지금 단재 신채호 등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초기에 가졌던 영웅사관을 현재 카페 회원분들의 주장과 구분하지 않은채 한꺼번에 비판하려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 카페 회원분들의 주장은 "연개소문이 한국사 최고의 영웅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게 아닙니다. 제가 첫 꼬리말에서도 지적했듯, viceversa님이 반론을 펴시려거든, 신채호 등의 극단적 주장과 카페 회원 분
들의 주장을 나누어서 비판하는 것이 옳습니다.
당태종曰: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지세도 험하고 군사들도 정예병이고 그 성주는 재능과 용맹이 있어 막리지의 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성을 지켜 막리지가 공격하였으나 물리치지 못하였다 하였다."→ 카더라 통신으로 보입니다만...;;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을 보시고 이 글을 쓰신 것 같은데(아님 죄송합니다.^^;;),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은 오히려 연개소문을 영웅신화에서 벗기려고 노력한 책입니다. 영웅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비꼬는 듯한 표현은 자제해주셨음 좋겠습니다. 저 또한 연개소문이 신화 속에서나 나올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로쓰는 연개소문에서도 1차 고당전쟁 후 고구려는 분명 더욱 수세에 몰렸다고 써있습니다. 그리고 맺음말에는 그런 연개소문에 대한 비판이 있죠.
'사료를 있는 그대로 읽는 것' 이야말로, 역사읽기에서 가장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입니다. 19세기 랑케가 만든 '실증'의 허구에 얽매인 선학들이 수없이 저질러 왔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려는 님의 태도가 안타깝습니다. 연개소문과 여당전쟁 관련기록을 삐딱하게 봐야만 하는 이유는, 연개소문이란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기록자가 가려놓은 당대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현존 사료의 여당전쟁 기록은 그대로 읽으면 앞뒤가 전혀 안맞습니다. 그래서 '새로쓰는 연개소문전'같은 재해석이 나오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