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시작하자마자 스크린에서 몇 분 후에 터져 나오는 총소리에 깜짝 놀랐다. 사실 그런 시대를 스토리로 하는 영화의 긴박감은 마치 그래야만 된다는 것처럼 빠르게 주의를 집중시킨다. 영화 속 장면으로 보여주는 밀실에서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런 긴장감을 살려주는 데 음향이 한몫을 단단히 커버하고 있다. 김지운 감독의 도전적인 감이 좋은 영화 “밀정”은 의도한 대로 잘 먹히고 있었다. 먼저 어둡게 짓누르는 컬러가 주는 톤이 영화의 시대 감을 잘 살리고 있다. 박희순이 분장한 김장옥이 경계의 눈빛으로 골동품상을 찾아가 금동불상을 돈과 바꾸려는 과정부터 심리적인 긴장미가 눈에 띈다. 우선 살얼음판을 걷듯 골동품상과 김장옥이 모종의 거래를 하면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눈빛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의열단의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통 작은 거래가 아님을 충분히 인상 지웠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적막을 깨뜨리는 총성으로 분위기는 터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만큼 영화감독이 의도한 바는 빠른 세트 구성과 액션을 초기에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이 영화가 만만찮은 서스펜스를 관객에게 보여줄 준비가 되었음을 예고한다.
또한, 이 영화가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흡입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속 실제 사건과 실재 인물을 끌어들여 사실성을 높였다는 데 있다. 영화 속에서 박휘순이 분한 김장옥은 실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항일 의열단원인 김상옥 열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사료에서 전하는 것처럼 김상옥 열사가 마지막 은신처인 효제동에서 최후를 마칠 때 수많은 일본 경찰에게 쫓기며 피신 중 발각되어 신출귀몰하게 피해 다니다 결국 장렬히 전사했다는 것까지도 사료와 일치한다. 그러한 사료는 당시 어린 중학생이었던 구본웅에 의해 자세히 알려지게 된다. 실제 총격전을 목격한 이 사건을 화가로 성장한 구본웅이 직접 화폭으로 상세하게 남겼기 때문이다. 구전으로 전하다 보면 사라져버릴 김상옥 열사의 일본군과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데 영화감독은 참고했을 것이다. 어차피 영화의 제목처럼 밀정이라는 뜻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이중적 심리 상태를 이용하는 역 심리임이 분명하다. 영화감독 김지운은 그런 특징을 살리기 위해 많은 고심이 있었다는 것을 스크린에서 보여주고 있다.
자! 이제부터 인간의 내, 외면을 조합해놓은 듯 복잡한 감정의 결정판 송광호가 등장한다. 그것도 삐까번쩍하는 견장까지 단 일본의 경시청의 간부다. 역시 권력에 입힌 제복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 그것도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승승장구한 경부 계급장이니 하늘의 별과도 맞먹겠다는 느낌. 하지만 이미 영화 사도에서 보여준 복잡한 심경을 잘 드러내는 데 성공한 영조역에서 보여준 연기력은 이미 많은 관객에게 또 한번 내면 속의 심리를 표출하는 연기를 예견할 수 있었다. 절대 권력을 쥔 “사도”에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영조 역과는 사뭇 달랐다. 영화 “밀정”에서 송광호는 조국이라는 가치보다 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으로 영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때 항일 운동에 몸담았던 이력만큼이나 복잡한 갈등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더욱이 독립투사역도 아닌 독립투사를 때려잡아야 하는 일본 경시청의 경부였으니 말이다. 밀정이란 다르게 표현하면 협잡꾼이나 밀고자가 된다. 당당하지 못한 행위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밀정은 아예 한 나라의 존립을 뒤흔드는 큰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 밀정이란 말이 적절한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하겠다. 송광호는 이미 국민이 아끼는 초 주연급 배우다. 거기다 이미 한류 영화의 본산을 넘어 글로벌한 배우다. 그래서 그런가 스크린에서는 유난히 얼굴이 크게 나온다. 우선 그래서 숨이 막힌다. 딱 영화 제목과 맞아 떨지는 배우임은 분명하다. 이 영화 속 주 스토리마다 개입해야만 영화가 진행되는 주요 간판급으로 열연한 것은 맞다.
거기에 송강호가 분한 일본 경시청의 경부 ‘이정출’이 개입된다는 영화적 상상력은 이미 스토리만 다르지 영화 속에서 간혹 등장하는 스토리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사실 최근 상영된 덕혜옹주에서도 당시의 여건상 가능하지 않은 배역으로 당시 조선인으로 일본 육사를 수석 졸업한 장한(박해일)을 설정 덕혜옹주의 밀착 경호 업무를 맡게 하였기에 그렇다. 따라서 조금은 색다른 설정으로 변화를 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로 그런 것이 사료적으로 검증이 된 사실이라면 모르겠지만, 하여간 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자극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철저한 자본적인 계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공유가 맡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김우진도 실제 그런 일이 종로통에서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가정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스토리 속 큰 줄기는 대립적인 관계나 큰 사건의 등장인물이 정해지면 이야기는 다 된거나 마찬가지다. 의외의 사람에 의해 영화는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 일종의 고도의 숨겨진 장치일 수 있다. 사진관을 찾아온 의열단원 연계순역을 맡은 한지민이 남긴 사진 한 장이 그렇다. 김우진을 보자 자신이 맡은 중요한 임무를 잠시 잊고 여자로 돌아간 연계순의 도발적인 언사도 의외다. 순전히 어거지를 써서 우진의 사진기에 얼굴이 찍힌 사진을 남겨놓게 된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영화에서는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스크린을 바꾸면서도 계속 또 다른 사람을 불러들인다. 위기를 알아차린 김우진이 상해로 옮겨가면서 영화는 반전하게 된다. 영화는 항상 복병 같은 사람을 만나거나 복병 같은 말 몇 마디에 큰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영화 속 장면은 의열단장인 정채산으로 분한 이병헌 특유의 말투로 이정출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정채산이 던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려야 할지 정할 때가 올 것이오.”라며 담담히 웃으며 내뱉는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인간 이정출의 양심을 건드리고 만다. 비록 출세를 위해 조국을 버렸다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양심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밀정의 영화 스토리가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이중적 심리를 통해 순간순간 판가름을 낸다는 구조다. 따라서 영화의 기본적인 골격 자체가 단단한 인간과 인간을 고리로 엮이고 엮여간다. 또한 1920년대 중국을 오가는 기차 속 풍경과 지금의 서울역이었던 경성역의 살벌한 분위기마저 이채로웠다. 거기에다 당시 중국의 사회 일면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잠시지만 호기심을 충족해주었다. 이어 벌어지는 의열단원들의 기차를 이용한 귀국 과정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장면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 그런 긴박한 상황하에서도 역동적인 동선을 투입하여 배신자를 끝까지 노출시키지 않고 이어가는 미스터리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때론 가슴까지 졸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엔 경성 역에서 피할 수 없는 총격과 안타깝게 잡히거나 죽음을 맞이한 의열단원들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다룬 김지운 감독의 의지처럼 완전하게 스크린을 채웠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제목에서 오는 밀정이라는 궁금증은 결국 배우가 해결한다. 이 영화의 송강호는 순간순간마다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의 분위기를 심리적으로 잘 소화해낸다. 영화 장면마다 클라이맥스는 위기를 부르지만, 인물과 시대의 혼돈을 응축해낸 심리 연기로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간다. 또한, 이 영화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하시모토역을 맡은 엄태구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과 유난히 불거진 광대뼈로 각인된 마스크는 연기 차이를 뛰어넘어 이정출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상대였을 것이다. 특히 뼈 속까지 스며든 황국신민으로 변신한 하시모토 엄태구가 하야시 앞에서 모종의 임무를 부여받는 모습부터 이정출에게는 역할의 위기로 다가온다. 그런 클라이맥스는 기차 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의 긴박감과 엄태구의 험악한 인상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배가시켜주었다. 위태스럽게 경성까지 도착은 했지만, 연계순은 우진의 사진관에서 남긴 얼굴 사진으로 신분이 노출된다. 결국 연계순 역을 맡은 한지민이 경성역에서 붙잡혀 얼굴을 지지는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 조국 이전에 한 여자로 살고 싶다는 처절한 모습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덕혜옹주>와 <암살>에 이어 <밀정>을 보며 우리가 사는 조국이라는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이유가 생겼다.
또한, 이 영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그중 의열단원들의 연령이 이십 대 초 후반이 다수인 점을 감안해 재즈풍의 음악을 사용했다. 의열단원 면면의 속내를 아우르듯 불안한 청년들의 심리와도 잘 맞아 들었고 그들의 사고처럼 묵직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어 송광호와 맞연기를 이어나간 공유의 변신과 엄태구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엄태구의 기이하고 냉혈한 같은 표정 연기와 지옥에서나 울려 나올 듯한 소름 돋는 목소리는 가히 이 영화에서 내내 기억에 남았다. 아쉬움이라면 좀 더 표정과 맞아 떨어지는 장면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어 송광호의 애매모호한 심리 표정 연기는 충분한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나 밀정이라면 좀 더 치밀하게 움직여주는 강인한 이미지여야 했다. 심리적으로도 너무 유약한 모습으로 보여 보는 동안 아쉬움으로 남았다. 물론 가장 인간적인 마지막에서의 장면은 예외로 한다 해도 못내 기대했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고 끝이 난다. 영화는 스크린을 끝없이 이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간간히 장면이 끊어진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스토리를 건너 뛰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마저도 김지운 감독의 의도된 조화를 염두에 둔 시네마틱 함이었다면 그것마저도 이해할 수 있다. 밀정도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갖다 대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를 영화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64년생 김지운 감독의 다음 의도는 어떻게 우리에게 도발해올지 자못 궁금하다.
첫댓글 우와 많이 배웠어요. 소설도 그렇게 잘 써야 겠군요. 주인공의 심리 갈등을 잘 살려서 정말 살아 있는..케릭터로,,,천만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라는데 전 보지 못했습니다...^^ 아 출입인원 두명..... 궁굼한디요 한 분은 누구?
어서 장가가야지
그럼 있게되는 단짝이 생긴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