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화랑의 후예’를 읽고 (이다솜)
그 어느 날 숙부님께서 '조선의 심볼'이라는 황 진사를 나에게 인사시켰다. 거무스름한 두루마기에 얼굴이 누르퉁퉁한 황 진사는 나이가 육십 가량 되는 노인이었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완장 어른(숙부)을 찾아온 황 진사는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를 약이라 우기면서 비굴하게 끼니를 해결하려 한다. 그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는 그의 친구 책상을 팔아서 밥값을 해결하려고까지 한다. 이러한 황 진사는 몰락한 양반의 자손으로 자처하며 과거의 집착과 긍지를 결코 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진사 행세를 한다. 그는 끼니를 때우기조차 힘들 만큼 가난하지만 솔잎 한 줌과 낡은 주역책을 때묻은 전대 속에 차고 다니며 지략과 조화를 부려 보고 싶어 한다.
늘 눈에 괸 눈물에서 혈육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숙모님과 나는 그의 중매를 들게 된다. 그러나 황 진사는 젊은 과부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인 즉 황후암 6대 직손이 어떻게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에게 장가를 드느냐는 것이었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어 완장 어른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황 진사는 두루마기를 빨아 입은 위에 시커먼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철 소식이 없다가 숙부님이 '대종교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되었을 때, 자기 조상도 모르고 지내다가 비로소 옛 조상을 상고해 냈는데, 그 옛 조상이 바로 화랑이라고 좋아하는 황 진사를 길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두 달 후, 나는 숙모님과 함께 곰쓸개, 오리 혀, 지렁이 오줌, 두꺼비 기름 등으로 만든 약을 온갖 불구자와 병신들에게 속이며 팔다가 순사에게 잡혀 가면서도 점잔을 떠는 황 진사를 보게 된다.
이 작품은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어가는 시대에 적응을 못하고 권위와 가문만을 중시하는 구식인을 비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황 진사' 는 무기력한 사람이다. 경제 활동이라곤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혼인도 못하고 육십이 다 된, 어찌 보면 거의 쓸모없는 사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삼십이 안 된 여자와 재혼을 한다면 오히려 여자쪽이 손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는 끝까지 옛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출가했던 여인을 맞을 수 없다면서 혼인을 거절한다.
이렇게 시대상에 뒤떨어져 있는 사람은 옛날에만 존재했던 것일까? 세상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 발전 속도는 이제 거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요즘에도 앞뒤로 꽉막힌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수적이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끝까지 옛날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 아마도 지금의 몇몇 기성세대들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 앞뒤로 꽉막힌 사고를 지닌 기성세대들이 조금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조금은 개방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