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침에 내게 갈치 상자를 건네주었네. 해풍에 그을린 어부들의 굵은 팔뚝으로. 미로를 헤엄치는 외롭고 긴 영혼을. 빛의 날카로운 이빨을. 한번도 건너지 못한 멀고 먼 곳을. 깊은 풍랑을. 갈치 상자만한 은빛 가슴을. 푸른 바다가 검은 내게 배를 대고서
아침 항구는 활력이 넘친다. 뱃사람들의 입에서는 흰 입김이 솟고 경매꾼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와 손짓 발짓은 경외스 럽기까지 하다.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먹을거리만이 아니다.
인생이란 미로와 풍랑을 동시에 건너야만 한다는 암시와 함께 한 번도 건너지 못한 '먼 곳'이 있다는 것도 가르친다.
우리도 이 아침 이 시인처럼 갈치 상자를 받아 안으며 영혼을 받아 안았다고 생각해 보자. 혀끝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멀고먼 인생의 끝도 생각해 보는 지혜가 따로 있으랴. 문태준 시인의 새 시집 '먼 곳'이 침체된 우리 시와 순수 지향(가벼운 처세술 말고!)의 인문학이 널리 퍼질 수 있는 활력소로 작용하면 좋겠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