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플라톤의 생각은 서구사회 뿐 아니라 서양 중심의 세계화를 통해 전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대한 각주의 역사다”라는 화이트 헤드의 주장도 있고, “반(反)플라톤주의는 플라톤주의의 일종”이라는 자크 데리다의 주장도 있다. 무슨 소리일까. 플라톤의 철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뿌리부터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의 신화시대에서 철학시대로 넘어가는 BC 6~5세기경에 밀레토스-이오니아 학파로 불리는 철학자 집단이 있었다. 밀레토스 지역은 오늘날 튀르키예 서쪽 부근에 해당한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사고라스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들의 추론에 의하면, 세상은 물, 불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세상을 구성하는 물, 혹은 불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각기 다른 형태로 사물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비슷한 시기, 오늘날 이탈리아 지방에 해당하는 엘레아 지역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철학자 집단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등이 있는데 그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나 질료보다는 세상을 작동시키는 하나의 원리(principle)에 주목했다. 김밥의 본질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밀레토스 학파가 ‘김’이라고 대답한다면, 엘레아 학파는 원심력을 능가하는 ‘밥의 찰기와 구심력’(의 원리)이 김밥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엘레아 학파의 철학자들보다 조금 앞선 시기의 인물인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본질은 수(number)라 주장했다. 또한 그는 수의 조화(cosmos)에 의해 세상이 작동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와 엘레아 학파의 생각을 발전시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실체(substance)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실체란 “어떤 것이 바로 그것이 되게 해주는 무엇”이다. 김밥을 예로 들면, 김밥을 김밥“답게” 해주는 그 무엇이 바로 김밥의 실체다. 누드 김밥도 김밥이라고 한다면, 김은 김밥의 실체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플라톤의 철학이란 사물을 사물“답게“ 만들어 주는 ”실체“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실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 이 세상에 생겨난 목적이 있다. (플라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생각을 확장시키면 학생은 공부를 하는 존재, 돼지는 인간에게 고기를 주기 위해 생겨난 존재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플라톤 철학에 심취한 사람에게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과 고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돼지는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영원불변한 진리가 있고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등을 구분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있다는 플라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많은 폭력을 행사하였다. 게다가 그것에 반대하는 생각마저 또 다른 플라톤주의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철학으로서 오늘날의 우리를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