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양 철학의 역사는 ‘실체(substance)’에 대한 탐구의 역사다. 가령 서양철학자인 마르크스의 탐구에 의하면, 세계를 움직이는 실체는 ‘자본의 운동법칙’이다. 실체의 반대말은 가짜다. 마르크스주의자에 의하면 자본의 운동법칙이야말로 실체이고, 나머지 사회법칙은 실체가 없는 가짜다.
플라톤에 영향을 준 파르메니데스는 눈에 보이는 현상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서 열등한 것으로 보았다. 눈에 보이는 현상(stantia=physika=appearance)의 이면에 존재(sub, meta)하는 본질, 또는 실체(sub+stantia)를 탐구하는 플라톤 이후의 서양철학은 따라서 형이상학적(meta+physika)인 특징이 있다.
허경의 수업을 들으면 허경의 생각에 갇혀버릴 수 있다. 곰브리치의 미술사를 들으면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실체에 대해 탐구해온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의 종교와 사상과 철학은 실체가 없다는 주장(~ism), 실체가 오직 하나 있다는 주장, 실체가 여러개 존재한다는 주장, 실체가 있다면 그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장 등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허무주의가 있다. 불교, 니체, 포스트 구조주의,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장 보드리아르, 리오타르 등은 허무주의자에 속한다. 실체가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는 회의주의도 있는데 여기에는 절대적 회의주의(퓌론,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흄 등)와 실체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론적 회의주의(데카르트)가 있고,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이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칼 세이건, 마틴 가드너, 리처드 파인만, 리처드 도킨슨)가 있다. 이밖에 실체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인간은 알 수 없다는 불가지(can‘t know)론도 있다. 불가지론자에는 흄, 칸트, 키에르케고르, 헉슬리, 다윈 등이 있다.
실체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1원론에는 플라톤주의,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스피노자, 마르크스주의가 있고 두 개(예컨대, 대등한 선과 악) 있다는 2원론에는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데카르트(정신과 물질), 주자(이기이원론)의 사상이 있다. 다원론에는 라이프니츠가 있다. 민주주의 사상은 회의주의에 속하기도 하고 불가지론에 속하기도 하면서 다원론에도 속한다. 진리가 있는지 알 수 없고, 진리가 있다 하더라도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거나 진리가 여러 개일 수 있으니까 투표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자는 사상이 민주주의다.
참고로 엄밀한 의미에서 1원론자는 스피노자가 유일하다. 스피노자는 무한 능력을 가진 자라면, 자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의 존재도 곧 그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전체는 A와 A의 여집합인데, 만물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예컨대 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신(naturing nature)과 신의 피조물(natured nature)이 모두 포함된 자연(nature)만이 곧 신이고, 전체라고 보았다.
실체(substance)의 구성성분에 따라 지구상의 모든 생각은 유심론과 유물론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유심론은 물질을 지배하는 관념, 정신, 영혼 등이 실체의 주요 성분이라는 생각이다. 불교, 플라톤주의,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데카르트 사상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유물론은 물질의 운동법칙이 실체라는 입장이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홉스, 마르크스주의, 근대적 과학주의와 행동주의 등이 유물론자와 유물론 사상들이다.
내가 가진 생각(관념)이 외부세계(external world)에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관념론(구성론)과 실재론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관념론, 혹은 구성론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오직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외부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우리는 대상이 우리에게 보이는 형식만 알 수 있다. 예컨대 우주의 일부인 장미의 실제 색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장미의 붉은 색은 복잡한 파장이 장미에 반사되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보편적인 형식에 불과하다. 세상은 보편적인 형식에 대한 관념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이 같은 견해는 아낙사고라스, 피타고라스, 플라톤주의자, 신플라톤주의자,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칸트, 헤겔, 후설, 하이데거 등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와 성리학도 관념론의 일종이다.
이에 반해 실재론은 내가 가진 관념이 외부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다는 입장이다. 관념은 세계를 반영할 뿐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반영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내 눈에 보이는 게 다”라는 선남선녀의 악의 없는 생각들이야말로 대표적인 실재론이다. 혁명은 너무 앞서가도 안 되고, 기회주의적으로 뒷북을 쳐서도 안 되며 현실에서의 실천을 통해서만 그 시기를 파악해서 행동에 옮길 수 있다는 레닌의 행동주의도 실재론에 속한다.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세계가 단계적으로 변화한다고 보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도 실재론이다. 가설과 검증을 통해 실체, 본질을 규명하는 근현대 과학주의도 실재론이라 할 수 있다.
(추신1) 현대 과학주의는 실재론에 입각해 있지만, 그 실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학자들이 모여 투표를 했는데, 빅뱅이론을 신뢰한다는 의견은 37%에 불과했다. 빅뱅이론과 다른 평행우주이론에 대한 지지 의견은 19%로 2위를 차지했다.
(추신2)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실체,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허무주의다. 하지만 허무주의에는 긍정적 허무주의와 부정적 허무주의가 모두 존재한다. 남녀관계는 결혼 아니면 이별밖에 선택이 없다는 실체론자의 주장은 부정적 허무주의지만, 동거와 같은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주장은 긍정적 허무주의에 속한다. 실존주의는 실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관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허무주의에 속하지만, 어떤 관점을 선택하며 살 것인지에 따라 긍정적 허무주의가 될 수 있다. 현재의 삶은 의미가 없으며 해탈, 혹은 천국만이 의미 있다는 종교야말로 부정적 허무주의가 될 수 있다. (해탈이나 저승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첫댓글 아하~!
어렵다, 어렵다 하고 끝내버리는 철학수업을 깔끔히 정리해주신 고주백님~
고맙습니다.
수업내용을 제대로 옮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당연히 헛점도 많습니다. 주옥 같은 얘기들을 어디에 붙일까 고민하다 포기하는 경우도 태반입니다. 그래도 좋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