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파 위에 태양처럼 둥그스름하면서도 쭈뼛한 물건이 톱니벨트처럼 생긴 프라스틱 줄 옆에 놓여있다. 자세히 보니 "탑플레이드"라는 것으로 태준이의 보물 1호다. 내가 어릴 적 갖고 놀던 "팽이" 비슷한 것인 셈이다.
곤히 잠들어 있는 태준이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다시 쇼파로 향한다. 자꾸만 "탑플레이드"가 떠오른다.
추운 겨울 마을 회관 앞. 팽이가 돌아간다. 윙윙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간다. 팽이를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 새 시간은 30년 전 과거로 훌쩍 날아가 있다. 팽이는 땅바닥에서 치는 나무팽이와 줄을 감아 던지는 줄팽이, 그리고 방안에서만 돌릴 수 있는 철(鐵)로 만들어진 팽이가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장난감 때문에 팽이는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리운 놀이가 되고 말았다.
겨울이 되면 별다른 놀잇감이 없던 시골집 아이들은 박달나무처럼 질 좋은 나무로 팽이를 만들었다. 팽이치기는 좋은 팽이를 만들 수 있는 나무를 고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나무를 잘 고르는 사람이 있고, 잘 깎는 사람이 있다. 나무도 잘 고르고 깎기도 잘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성들여 산 속에서 고른 나무를 숫돌에 갈아 날이 제대로 선 낫으로 정성 들여 깎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최고의 명품을 꿈꾸는 팽이가 만들어진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아랫채로 직행. 아침이면 조심스레 오강을 들고가 오줌을 붓던 오줌발이로 가는 것이다.
오줌발이는 텃밭에서 거름이 되기 전에 오줌을 모아두던 임시보관소였다. 오줌발이에 팽이를 담궈두면 팽이의 나무결에 금이 가지 않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너나없이 누구나 가느다란 실로 팽이를 친친 묶어 오줌발이에 사나흘간 담궈뒀다. 그러나 때로 사고가 나기도 한다. 부지런하신 할머니나 엄마가 새벽녘에 벌써 오줌발이를 들고 나가 텃밭에 뿌리는 일이 발생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명품"의 꿈을 꾸던 나는 팽이를 찾아 온 밭을 헤메고 다녔다.
마을 회관 앞 공터나 얼음 위, 학교 운동장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해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쳐 대던 팽이는 남자아이들의 전통적 놀이였다. 50cm가량의 막대기에 운동화끈이나 칡넝쿨 껍질을 벗긴 끈을 묶어 팽이를 치면 팽이는 쉴새 없이 돌아갔다. 팽이를 깎는 기술은 팽이를 쳐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팽이는 속도가 붙지 않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반면에 잘 만들어진 팽이는 팽이끈이 착착 달라붙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서너 번만 치면 부드럽고 힘차게 돌아갔다. 잘못 만들어진 팽이를 보고 튼다고 했는데, 그 다음 날이면 그 친구는 한 손에 톱을 들고 산을 올라가야만 했고 좋은 팽이를 갖게 된 친구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팽이가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팽이의 밑부분에 쇠구슬이나 못을 박았다. 못을 사용할 때는 엄마 몰래 장롱의 장식에서 끝이 뭉툭한 못을 빼내 박았다가 들켜서 혼나기도 했다. 특별히 강한 팽이를 원할 경우 동네 공업사에서 베아링을 구해 팽이의 제일 위에다 덧 씌우기도 했다. 그럴 경우 팽이는 더 세게 돌아가기 때문에 팽이치기 시합을 할 경우 웬만해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너도 나도 다 그렇게 할 경우에는 별 재미가 없었지만 큰 베아링을 씌운 팽이가 유리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또한 팽이의 제일 윗면에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흰색으로 색칠을 하기도 했다. 팽이가 돌아가면서 색동옷을 입은 것처럼 고운 빛을 내기 때문인데 잘 만들어진 팽이는 색이 고운 반면 자꾸 트는 팽이는 선이 곱지 못했다. 그러나 손으로 만든 팽이는 한계가 있었다. 제아무리 잘 만든 팽이라 할지라도 기계로 다듬어낸 팽이에 비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돈 주고 팽이를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77년 당시 연필 한 자루에 10원 하던 시절에 50원 하던 팽이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그리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팽이치기는 유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유행했고 중국은 당(唐)나라 때 성행했다고 한다. 팽이는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 운동하는 장난감으로 박달나무처럼 무겁고 단단한 나무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다.
팽이치기에는 팽이싸움이 빠지지 않았다. 서로 팽이를 돌리다가 신호에 맞추어 상대방의 팽이와 힘껏 부딪치게 해 넘어지지 않으면 이긴다. 다음은 팽이 멀리치기로 미리 줄을 죽하니 그어놓은 후 동시에 채로 팽이를 치는 것으로 멀리 날아가 오래 돌아가면 이긴다. 다음은 오래 돌리기 시합으로 상대방의 팽이와 힘껏 부딪친 다음 오래 버티는 팽이가 이긴다. 마지막은 빨리 돌아오기로 출발지점에서 일정 지점을 돌아 다시 제자리까지 돌아오는 것으로 빨리 몰고 오면 이기는 것이다.
팽이치기에서 빠지지 않는 게 거북등처럼 터지는 손이다. 놀 때는 좋았는데 돌아오면 당연한 의식처럼 손등은 갈라져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오줌 받은 요강에 손을 씻도록 했다. 특별한 약이 없는 시절에는 그게 민간처방이었던 셈이다. 그 후로 유한양행에서 안티프라민이 나오면서 더 이상 오줌에 손을 담그는 일은 없어졌지만 화끈거리며 따가운 손등 때문에 인상 찌푸리던 시간도 잠시 뿐. 눈 뜨면 아침 책가방 들고 가야 할 시간이 되어있었다.
머슴아~~들의 어린 시절을 훔친듯 신이난 팽이 소개에 눈이 똥그래지구요 덩달이 신도 납니다^^ 가스나~~헤헤 그랬지요 계집아이들은 얌전하기만 해야 했구...해가지면 문 밖 출입도 일체 엄금! ㅎㅎ 어린시절 추억먹기 그저 모깃불 곁에서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던 넓지막한 평상이 놓여 있는 마당의 여름정도..^^ 감사^^
팽이와 탑플레이드. 공통점이라면 '도는 것'이라는 것과 주로 '겨울에 한다'는 것, 그리고 '모여서 해야 더 재미있다'는 것 쯤 되겠지요. 어울려놀 게 그리 많지 않은 아들 태준이놈에게는 그나마 또래들과 모여서 찬바람에 흐르는 콧물 팔소매에 훔쳐가며 놀 수 있는 놀이가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첫댓글 요즘 아이들 참 불쌍하죠? 예전 그때는 정말 아이들에겐 태평성대 였었나봐요. 잠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머슴아~~들의 어린 시절을 훔친듯 신이난 팽이 소개에 눈이 똥그래지구요 덩달이 신도 납니다^^ 가스나~~헤헤 그랬지요 계집아이들은 얌전하기만 해야 했구...해가지면 문 밖 출입도 일체 엄금! ㅎㅎ 어린시절 추억먹기 그저 모깃불 곁에서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던 넓지막한 평상이 놓여 있는 마당의 여름정도..^^ 감사^^
가시나들은 고무줄 땅따먹기 근데 요강에 손 넣은 기억은 없는데 왜 우린 그 좋은 방법을 몰랐을까 ㅎㅎㅎ
팽이와 탑플레이드. 공통점이라면 '도는 것'이라는 것과 주로 '겨울에 한다'는 것, 그리고 '모여서 해야 더 재미있다'는 것 쯤 되겠지요. 어울려놀 게 그리 많지 않은 아들 태준이놈에게는 그나마 또래들과 모여서 찬바람에 흐르는 콧물 팔소매에 훔쳐가며 놀 수 있는 놀이가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