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호동은 큰 왕비의 모함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다음 왕위는 대무신왕 동생이 승계해서 민중왕이 된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에 의문이 있습니다.
우선 대무신왕의 큰 부인이 호동을 시기하려고 한다면 큰 부인 소생의 왕자가 당연히 있어야 경쟁심에서 그런 생각이 갈 것인데 5대왕 모본왕인 해우를 일단 대무신왕의 큰 부인소생이라고 설정할 경우 해우가 호동보다 나이상으로는 동생이라고 보아야 할지?
일단 호동의 왕위계승가능성에 대해서는 호동이 영리했다라는 측면도 있지만 나이상으로도 큰부인 소생 아들보다 더 연상이라는 영향력도 작용했슬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큰 부인입장에서는 호동을 시기했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여기서 좀 이상한점은 대무신왕의 작은부인이 큰 부인보다 더 앞서서 아들을 낳았을 가능성인데 물론 그럴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래도 확률적으로 본다면 큰 부인이 최소한 작은부인보다 수년앞서 결혼을 했고 계속 딸만 낳다가 나중에 아들을 낳지 않은 이상은 해우가 호동보다 연하일 가능성은 어렵습니다.
또 의문점이라면 대무신왕 다음 왕위는 동생인 모본왕이 승계했는데 그 이유를 해우가 어리다라는 것으로 삼국사기에는 나오지만 해우가 그렇게 당장 왕역할을 하기에 어릴정도라면 해우는 호동보다 한참 연하라는 예기가 됩니다.
호동의 사망시기가 32년이고 대무신왕의 사망시기는 44년인데 만일 호동이 사망하는 해에 해우가 출생했다라고 하면 대무신왕 사망시기에 13세가 됩니다. 13세면 초등학교6학년에 해당되는 나이니 이정도면 왕비의 수렴첨정으로 인해서도 곧바로 왕위계승은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너무 어려서 숙부가 우선 왕위계승을 했다라고 하면 해우는 아무래도 기록상 호동이 사망한 후에 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기록으로 해우가 난폭해서 군왕감이 못되었다라는 설에 대해서는 진짜 인물이 그랬다면 대무신왕이 과연 해우에게 왕위계승이 가능하도록 했을까요? 아예 왕위계승대상에서 제외해버렸슬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민중왕이 대무신왕의 동생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왕위계승후 자신의 아들에게 다음 왕위의 계승가능성도 클것인데 그런점을 대무신왕이 파악한다면 동생에게 왕위계승을 시킬까요?
그러니 삼국사기 기록되로 모본왕이 어려서 당장 왕위승계가 어렵다라는 논리를 달려고 한다면 모본왕은 호동의 사망후에 출생했슬 가능성이 농후하며 호동이 사망하기 전까지 호동외에는 왕자가 없거나 더 있서도 후궁소생 서출(별도로 후궁을 거느렸다라고 한다면)왕자만이 존재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호동의 사망과 관련된 내용과 해우의 어린나이 모본왕의 짧은 제위등을 서로 연계하려고 한다면 서로간에 언발란스한점이 많습니다.
우선 해우를 대무신왕의 적장자라고 본다면 큰 왕비에게서 그렇게 늦은 시기에 첫 아들을 보았다라는 것인지? 물론 원래 적장자가 있었스나 일찍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죠.
그리고 호동말고도 다른 쟁쟁한 왕자들도 있는상태에서 호동사망후 해우가 출생했다면 그때까지 태자책봉을 미루는것이 현실성 있을지?
제가 추측하는 설이라면 모본왕은 대무신왕의 동생이 아니라 적장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게 한다면 제위 4년후 사망이라는 정황과 연계해서 민중왕은 모본왕의 동생으로 승계했다라는 가설을 전개하는 것이 타당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모본왕은 호동보다 연상일 가능성이 클것입니다.
또 한가지 가능성이라면 호동은 큰 왕비의 모함에 의해서 죽은것이 아니라 해명태자처럼 다른 이유로 부자갈등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을가능성이 크며 대무신왕 자신이 직접 적장자의 안정적 왕위계승을 위해서 적장자가 모본왕이라고 할 경우 모본왕에 경쟁을 하려는 호동을 제거했을가능성도 크다라고 판단됩니다.
첫댓글저는 우선 삼국사기의 기록을 신뢰합니다..김용만 선생님께서도 모본왕의 출생시기를 빨라야 30년,못해도 태자책봉된 해인 32년으로 보고 계십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기준이 완전 신동인 대무신왕이 15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모본왕이 30년생일 경우 44년에 15세죠..왕위계승에 문제가 없습니다..근데 모본왕은 대무신왕에 비하면 한참 아래죠..고구려가 완전한 체제를 갖춘 시기도 아니고 15세의 어린 아이에게 왕위를 주기는 쉽지 않았을 듯..아니 대무신왕이 물려주지 않은 듯합니다..국가회의에 의해 민중왕이 왕이 됐으니까요..대무신왕이 호동왕자가 용맹하여 아꼈지 왕위를 물려줄 의사는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왕비가 아들의 장래를 지나치게 걱정한 것뿐이죠..그리고 삼국시대나 다른 왕조에서 국가 초기에 쉽게 부자계승을 천명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그래서 종종 동생이 왕위에 오르고요..유리왕이야 당시 대무신왕이 큰 공이 있었고 신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니까 다소 모험이긴 하나 15세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고 대무신왕은 아들의 장래를 국가원로들에게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모본왕이 왕이 된 후 행적을 보면 대무신왕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용맹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리라 봅니다..그리고 호동왕자가 연상이라고 해도 10살 조금 많았을 겁니다..호동왕자가 죽은 해 대무신왕이 29세였으니까요..
모본왕이 출생시기가 늦은 것도 워낙 대무신왕이 원정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저는 기록을 신뢰합니다..호동왕자가 어머니를 범했다는 사실만 빼고요..대무신왕이 즉위하던 해 혹은 태자가 된 해에 왕비와 후궁을 같이 맞이했고 호동왕자가 그 시기에 태어났다면 가능한 이야기로 보입니다..32년에 호동왕자가 미혼이었고 그 시기에 낙랑공주와 혼인한 것으로 보아 많아야 15세(대무신왕 나이랑 비교해도 무리가 없음)로 봅니다..^^
첫댓글 저는 우선 삼국사기의 기록을 신뢰합니다..김용만 선생님께서도 모본왕의 출생시기를 빨라야 30년,못해도 태자책봉된 해인 32년으로 보고 계십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기준이 완전 신동인 대무신왕이 15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모본왕이 30년생일 경우 44년에 15세죠..왕위계승에 문제가 없습니다..근데 모본왕은 대무신왕에 비하면 한참 아래죠..고구려가 완전한 체제를 갖춘 시기도 아니고 15세의 어린 아이에게 왕위를 주기는 쉽지 않았을 듯..아니 대무신왕이 물려주지 않은 듯합니다..국가회의에 의해 민중왕이 왕이 됐으니까요..대무신왕이 호동왕자가 용맹하여 아꼈지 왕위를 물려줄 의사는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왕비가 아들의 장래를 지나치게 걱정한 것뿐이죠..그리고 삼국시대나 다른 왕조에서 국가 초기에 쉽게 부자계승을 천명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그래서 종종 동생이 왕위에 오르고요..유리왕이야 당시 대무신왕이 큰 공이 있었고 신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니까 다소 모험이긴 하나 15세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고 대무신왕은 아들의 장래를 국가원로들에게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모본왕이 왕이 된 후 행적을 보면 대무신왕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용맹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리라 봅니다..그리고 호동왕자가 연상이라고 해도 10살 조금 많았을 겁니다..호동왕자가 죽은 해 대무신왕이 29세였으니까요..
모본왕이 출생시기가 늦은 것도 워낙 대무신왕이 원정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저는 기록을 신뢰합니다..호동왕자가 어머니를 범했다는 사실만 빼고요..대무신왕이 즉위하던 해 혹은 태자가 된 해에 왕비와 후궁을 같이 맞이했고 호동왕자가 그 시기에 태어났다면 가능한 이야기로 보입니다..32년에 호동왕자가 미혼이었고 그 시기에 낙랑공주와 혼인한 것으로 보아 많아야 15세(대무신왕 나이랑 비교해도 무리가 없음)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