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되던 해 나는 빨간색 색연필하고 철끈으로 갱지 묶은 연습장 끼고 명찰 달고 명찰 밑에 손수건도 깨끗한 것으로 달고 교실이 꼭 낡은 풍금 같은 풍산국민학교에 기역 니은 배우고 더하기 빼기 배우러 갔습니다 우리는만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해서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로 끝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잘도 외어 상으로 공책도 받았습니다 봄날에는 논물 속에 잠긴 개구리알도 건드려보며 학교로 가는 길에 들꽃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가방 속에 참고서 빵빵하게 넣고 까만 교복 입고 까만 교모 쓰고 배지 똑바로 붙이고 남녀공학에다 이름도 긴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에 꼬부랑 영어 배우고 수학도 배우러 갔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해서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로 끝나는 새마을노래를 음악시간마다 열심히 불렀습니다 풀여치처럼 새침하던 계집애들 얼굴도 훔쳐보며 학교로 가는 길에 키도 부쩍 자랐습니다
그리고 고등하교 시절, 나는 성문종합영어 속에 김춘수며 황동규며 고은 시집을 몰래 숨기고 교복 단추 하나 풀고 교모 삐뚜룸하게 눌러 쓰고 김대건 신부 동상 있는 대구 대건고등학교에 총검술이며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배우러 갔습니다 졸업반 때 늦가을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서거한 뒤로 몇날 며칠 라디오에서 장송곡만 들려 왔습니다 나는 꼭 시인이 되고 말겠다 두고 봐라 다짐하며 학교로 가는 길에 콧수염도 듬성듬성 돋아났습니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16년 동한 학교 다닌 덕분에 스물네 살 되던 해 국어 선생이 되었습니다 2급 정교사 나는 중고품 삼천리자전거를 타고 국정교과서 가르치러 이리중하교에 갔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가르치는 학교로 가는 길은 어린 조국을 키우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길위에서 목숨을 걸어도 좋은 말 한 마디 교사는 노동자다, 이 말 한 마디 했다는 이유로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 1989년 8월 7일 학교를 쫓겨나니 남들이 거리의 교사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도 나느 갑니다 해직교사가 되어 내 어릴 적 걷던 것처럼 들길을 걸어 국민학교도 시내버스 타고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갑니다 전교조신문 나르고 설문지 나누고 서명도 받으며 어떤 날은 굴비도 팔고 연하장도 팔러 교무실로 갑니다 라면 끓여 먹고 후딱 설거지 한 뒤 담배 한대 피우고 교장이 앞에서 막아도 교감이 옆에서 눈치해도 갑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등교하는 아이들 가방 보며 학교로 가는 길에 그렁그렁 눈물도 고입니다
우리가 지켜낸 깃발은 지금 끄떡없습니다 그 깃발과 함께 내일 나는 학교로 가겠습니다 빼앗긴 아이들과 분필과 교원의료보험증을 되찾으러 아침이면 출석 부르고 퇴근 후에는 소주 한잔 하러 꿈이 아니라 희망이 아니라 천만 번의 맹세가 아니라 나는 내일 내 사랑 이리중하교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학교 떠난 뒤 교과서가 개편되었다는데 이제 새로 수업지도안 준비하는 일이 큰 걱정입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절대 아닙니다
첫댓글 좋은글 맘에 담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