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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無爲自然) 연습하기
낼 모레면 설이다. 나이를 하나 더 보태는 날이다. 요새는 친구들이 노년의 삶에 관한 카톡을 많이 보내온다. 노년의 마음가짐, 노인의 건강비법, 노년의 행동지침 등. 엊그제 받은 카톡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 1월 23일, 사우디 국왕이 20여 년간의 집권을 접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총리직과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손에 쥐고 이슬람 성직까지 장악한 힘의 메카였던 그도 세월 앞에 손을 들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우디는 지금도 우리나라 돈으로 3경원에 해당되는 3,000여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 묻혀 있고, 자신이 소유한 재산만 해도 18조에 이르렀지만 결국 폐렴 하나 이기지 못 한 채 91세의 일기로 생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슬람 수니파의 교리에 따르면 “사치스런 장례는 우상숭배다.” 라고 하여 서거 당일 남자 친척들만 참석한 가운데 수도에 있는 알오드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시신은 관도 없이 흰 천만 둘렀으며 묘는 봉분을 하지 않고 자갈을 깔아 흔적만 남겼습니다. 비문도, 세계 지도자들의 조문도 없이 평민들 곁에 그저 평범하게 묻혔습니다. ‘공수래공수거’의 허무한 삶의 모습을 실감케 하였습니다. 일찍이 세기의 철학자요 예술가이며, 예언가이자 종교지도자였던 솔로몬 왕은 이렇게 인생을 술회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가치를 다 가져본 솔로몬도 그것을 허무하다고 탄식했다면 아마도 친구들과 나누는 찻잔 속의 따스한 향기가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의 명상을 적어본다. 장자의 책에 나온 이야기. 숲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다. 한 나무는 아주 오래돼 밑동부터 썩은 나무였고 다른 나무는 아주 훌륭한 나무였다. 그 나무는 늘 옆의 늘고 못생긴 나무를 업신여겼다. 죽는 날만 기다리는 아무 쓸모없는 나무라고 놀려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왔다. 숲을 둘러보던 나무꾼은 대번에 훌륭한 나무 한 그루를 알아보고 도끼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 나무는 고통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옆의 나무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칼이나 도끼에 상하거나 찍혀 베어지지 않고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니?” 그러자 늙은 나무가 말했다. “나는 못생기고 늙어서 그들에게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거지. 세상일도 마찬가지지. 만약 무엇에 소용이 되면 살아남지 못할 거야.” 무위란 행위가 없음(non-action)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무위도식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아니다. 무위란 보통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려는 행위, 자기중심적인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의 부자연스런 행위를 일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 자발적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고 이름 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즉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동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유를 가진 자연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이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중국 선사들은 ‘무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갈망하지 않는 것이다. 싸우지 않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라. 나뭇가지는 움직인다. 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무가 고통스러워하는가. 나무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다. 무위의 삶이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삶이다. 바로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완벽한 삶이다.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 귓가에 들려오는 새소리, 코에 닿은 향냄새, 혀로 느끼는 달콤한 맛, 바로 이 순간의 삶이 무위의 삶이다. 우리는 얼마나 ‘무위’의 삶을 영위하는가? 늘그막이라도 무위자연을 연습하여야 한다. (2015.2.15.) <다른 블로거의 글> http://blog.naver.com/sojunghanmom/100200624468
무위자연(無爲自然) 無爲自然(무위자연) 無(없을 무) 爲(할 위) 自(스스로 자) 然(그러할 연) 도가(道家) 노장사상(老莊思想)의 중요개념이다.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이라는 뜻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하면 흔히 루쏘(Jean-Jacques Rousseau)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하고, 문명을 거부한 깊은 산 속에서의 생활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자연(自然)은 ‘자연보호(自然保護)’에서 쓰이는, 산 강 나무 숲 등을 말하는 명사(名詞) ‘nature’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을 가진 하나의 문장(文章)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어떤 일이건 너무 억지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그냥 두라는 말에 가깝다. 즉 ‘natrue’ 보다는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 ‘Let It Be’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순리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부합하는 자연보호(conservation of nature)는 산에 계단을 만들고, 케이블카를 만들고, 강둑을 시멘트로 도배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nature)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내버려 두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스로 유지해 간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어둠이 내리고 다시 해가 떠오른다. 의료역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신이 중요하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감기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우리 몸은 스스로 콧물을 흘려보내서 콧속을 씻어 내고, 기침을 하여 기관지의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뱉어낸다. 열을 올려서 면역세포가 활동하기 좋게 만들고, 아프고 피곤하게 만들어 무리한 활동을 못하게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나고 아프고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나는 것은, 우리 몸이 우리 몸을 스스로 치료를 해 내기 위해서 일으킨 현상 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기에 걸렸을 때, 무엇을 해야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저 잘 쉬기만 하면 몸 이 스스로 나아지게 된다. 하지만 보통 감기에 걸리면 그냥 쉬고 내버려 두지 않고, 열나면 해열제 아프면 진통제 등을 먹는다. 나아지려고 약을 먹고 좀 편해질 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 몸이 일으키는 회복작용을 방해만 할 뿐이다. 건강해야 되고, 공부 잘 해야 되고, 취직 잘 해야 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야 되고, 좋은 집을 사야 되고, 돈 많이 벌어야 되고, 건강한 아이 나아야 되고, 공부 잘 시켜야 되고, 취직 잘 시켜야 되고, 좋은 사람과 결혼 시켜야 되고, 정말 끝없이 해야만 되는 것 같은 것(爲)들이 많은 세상 이다. 요즘처럼 위(爲)가 많아서 문제 일 때, 오히려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건강하고, 공부 잘 하고, 취직 잘 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좋은 집 사고, 돈 많이 벌어서 먼 훗날 행복해 지려고 아등바등 불행한 오늘을 만들어 갈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금 내 옆에 그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해하고 행복해 하면 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쉽다면 너무 쉽고 어렵다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출처] 무위자연(無爲自然)|작성자 소중한몸 |
첫댓글 영암군노인대학 카페로 담아갑니다.
남곡님의 글은 늘 배울점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