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조 초수대엽
‘동창이 밝았느냐…’
중부대 교수, 석야 신웅순
가곡은 가사·시조창과 함께 정가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사회의 지식층에서 애창된 예술 가곡으로 일반 백성들에 의해 불리워졌던 판소리, 민요, 잡가와 같은 속가와는 구별된다. 오늘날의 실내악과 같은 세악 편성으로 반주되며 시조나 가사에 비해 매우 세련된 예술성이 높은 곡이다. 가곡하면 흔히 ‘보리밭’이나 ‘가고파’ 등을 연상하게 된다. 이름만 같을 뿐 피아노 반주를 곁들여 작곡한 오늘날의 그런 현대가곡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대가곡은 서양음악이요 전통가곡은 우리음악이다. 현대 가곡의 악보는 오선보로 시가 노랫말이요 전통가곡의 악보는 정간보로 시조시가 노랫말이다. 음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뻗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는 낭창낭창한 맛이 서양 음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조초수대엽은 남창 가곡에서 맨 처음 부르는, 모든 가곡의 기본이 되는 곡이다. 가곡 한바탕에서 처음 부른다고 해서 첫치라고도 한다. ‘동창이…’가 바로 그런 곡이다. 우조 초수대엽을 『가곡원류』는 ‘긴 소매로 춤을 잘 추고, 푸른 버들이 봄바람에 휘날린다’로 곡의 풍도를 말해주고 있다.
1689년 숙종 15년 희빈 장씨 소생 원자의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들이 제거되고 남인들이 집권했다. 이를 기사환국이라 한다. 인현왕후 민씨가 폐위되고 희빈 장씨가 그 자리에 들어앉았다. 이로 인해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제주도로 유배 사사되었고, 역시 서인이었던 남구만도 강릉으로 유배되었다.
강릉길 심곡 마을에 이르러 남구만은 자연 경관과 천혜의 약천수에 매료되었다. 여기에서 심일 서당을 짓고 후진들을 가르치며 유배생활을 했다. 그 유명한 시조 ‘동창이…’도 여기에서 창작되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동창이 밝았느냐. 벌써 종달새가 지저귄다. 늑장을 부리다 재 너머 긴 밭을 언제 갈려고 하느냐. 소 먹일 아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느냐. 영감님은 소치는 아이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성화다.
봄은 왔다가 금세 가버린다. 시기를 놓치면 농사일을 망친다. 지금도 남구만의 외침소리가구구절절 들리는 것만 같다.
이를 당시의 정치와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동창'을 숙종 임금, '노고지리'는 조정 대신들, '우지진다'는 중신들의 모습으로 비유하고 '소'는 백성, '아이'는 목민관, '아니 일었느냐'는 관료들의 자세로 비유하기도 한다. '언제 갈려 하나니'는 경세치국에 대한 염려와 경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리 해석하면 정치인들에게 언제 나랏일을 하려고 싸움만 계속하고 있느냐고 나무라고 있는 시조이다. 오늘날의 정치 풍경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국민 대표 시조로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가곡에서 첫치로 부르는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했다. 아카시아꽃만이 향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에도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진하면서도 진하지 않은 은근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있다. 우조초수대엽이 그런 곡인 것 같다. 조용히 혼자 있을 때 조금은 외롭다 싶을 때,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이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우리 삶의 행복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조초수대엽으로는 ‘남훈전’, ‘천황씨’, ‘남팔아’, ‘동짓달’ 등 다섯 곡이 현재 전승되고 있다.
- 출처:The MOVE 5.June,2016,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