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8)
# 출가외인
고 진사 시집간 맏딸 집에 가
섭섭한 대접 받고는
화를 꾹 참으며 나오는데…
맏딸 부친 부고 소식 듣고
대성통곡 하더니 친정집으로......
점잖은 고 진사는 평생 화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오장육부가 뒤집혔다.
겨울이 되자 해소천식이 심해진 고 진사는 사십리 밖
황 의원을 찾아가 약 한첩 지어 집으로 가다가 문득
딸 생각이 나서 발길을 돌렸다.
십리만 더 가면 재작년에 시집간 맏딸 집이다.
오랜만에 딸도 보고 사돈댁 살아가는 모습도 볼 겸
고개 넘고 물 건너 막실 맏딸 집으로 한걸음에 내달았다.
절구를 찧던 딸이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 “아버지, 어인 일로…”
하고 달려나온다. 바깥사돈도 사랑방에서 나와 고 진사의
두손을 잡는다.
“이렇게 불쑥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사돈어른.”
“별말씀을…. 어서 사랑으로 들어갑시다.”
사랑방에 좌정하자 사돈이 문을 열고 외쳤다.
“아가, 술상 좀 봐 오너라.” 맏딸이 한참 만에 술상이라고
들여오는데 반되짜리 호리병에 안주라고는 깍두기
한접시에 말라붙은 새우젓뿐이다.
민망해진 사돈이 문을 열고 “아가, 닭 한마리 잡으려무나”
하고는 술을 따른다. 술잔이 종지라 가양주려니 했는데
막걸리다.
이번엔 사돈이 직접 부엌에서 사발 두개를 들고 와
막걸리를 따르는데 딱 두사발에 호리병이 바닥났다.
고 진사가 꾹 참으며 말했다. “술 한잔이면 됐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돈이 사랑방에서 나갔다.
속이 뒤틀려서일까. 고 진사가 급히 뒷간에 가서 앉았는데
사돈과 맏딸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가, 내가 잡을게. 그 부지깽이 다오” 하자 맏딸년 하는
말이 정말….
“아버님, 씨암탉 열두마리와 저 송아지는 제 혼수로 가져온
은비녀를 팔아서 사다가 키운 겁니다.
절대로 못 잡습니다.” 사돈이 힘없이 말했다. “알았다.”
고 진사가 사랑방으로 돌아가 곰방대에 불을 붙이려고
부싯돌을 치는데 맏딸년이 들어왔다.
“아버지, 동짓달 짧은 해에 밤길이 걱정입니다. 가시다가
허기지면 이거 드십시오.”
고 진사는 사돈이 팔을 잡는 것도 사양하고 곧장 사돈댁을
나와 딸년이 싸준 삶은 감자 세알을 개울에 던져버리고
주막에 들어갔다.
막걸리 세병을 마시고 대취해 집에 다다랐을 땐 삼경이
가까웠다.
보름이 지나 동짓달도 기울어지는 그믐날, 막실 맏딸이
부친상 부고를 받았다.
맏딸은 부고를 가지고 온 머슴 억쇠를 잡고 물었다.
“아버지가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소?” “약을 달여 드셔도
해소천식에 차도가 없더니 마침내 지난밤 사경 녘에
피를 토하고 이승을 하직하셨습니다요.
” 억쇠가 훌쩍이자 맏딸도 처마 밑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하더니 장옷을 걸치고 억쇠를 따라 친정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맏딸은 친정 동네 들어서면서부터
섧게 섧게 울어대더니 병풍이 둘러쳐진 빈소 앞에선
곡소리가 애간장을 녹인다.
“아버지 드리려고 담아놓았던 오미자술을 씨암탉백숙 안주로
그렇게 맛있게 드시더니 보름 만에 이게 무슨 변고입니까,
아버지~.” 맏딸의 곡은 이어졌다.
“그토록 유하고 가시라고 잡았건만 이렇게 가시다니,
아버지~. 몰게골 논 다섯마지기를 제게 주신다 해놓고,
감골 밭 세마지기도 제게 주신다 해놓고….”
바로 그때다. 쾅! 병풍이 넘어지더니 죽었다던 고 진사가
고래고래 고함치며 뛰쳐나왔다.
“야 이년아! 네가 언제 씨암탉을 잡고 오미자술을 내놓았으며 내가 언제….”
“제가 거짓말한 것이나 아부지가 거짓말하신 것이나
오십보백보이니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맏딸은 바로 뒤돌아서 시집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늙은 호박 한덩어리와 깨 한되, 다듬잇 방망이
하나 훔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