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51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 (2부 시작)
☆ 남자에게 무서운 세 가지는? ☆
집을 나선 김삿갓은
길을 피하여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마누라의 눈에 띌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집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지자
비로소 안도(安堵)의 한숨이 나왔다.
▶자고로 남자에게 무서운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그 첫째는 외진 산길에서 호랑이와 마주치는 것이요,
그 둘째는 빚쟁이와 마주쳤을 때가 아니겠는가?
또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는 생각도 없는데
늦은 밤 마누라가 밑물하고 평소(平素)와 다르게 정겹게 웃으며 가까이 올 때가 아니겠나?◀
마누라로부터 멀리 벗어났다는 해방감(解放感)에
김삿갓은 빙그레 웃기까지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쯤 아내가 자신이 집을
떠나오며 남겨둔 서찰(書札)을 보았을 것이고 크게 낙담(落膽)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자 미안한 마음 또한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집을 타고 앉아 지내는 것은
도무지 적성(適性)에도 맞지도 않고
불편(不便)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산꼭대기 바위에 걸터앉은 김삿갓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그곳에는 새털구름이 송판(松板) 조각처럼 깔려 있었고, 적당(適當)히 휘갈겨 쓴 글씨처럼 흐트러진
구름도 있었다.
이렇게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대조적(對照的)인 자연미(自然美)를 한동안 감상하던 김삿갓, 가족을
버리고 또다시 방랑길에 오르는 것도
이 같은 자연(自然)을 맘껏 즐기고 싶은 이유(理由)가 아니겠나 스스로 위안(慰安)했다.
하늘가에 떠도는 구름을
오랫동안 즐기던 김삿갓,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서쪽 하늘의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始作)하는것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어디로 가야 할까?)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이 많은 김삿갓!
방향을 남쪽으로 잡아 충청도(忠淸道)를 거쳐 경상도(慶尙道)나 전라도(全羅道) 방향(方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경기도(京畿道)를 거쳐 한양(漢陽)과 황해도(黃海道), 평안도(平安道)를 가 볼 것인가?
어느 곳이든지 다 가서 보고 싶었으나, 먼저 어느 쪽이든 길머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지팡이를 공중에 던져 떨어지는
지팡이 꼬리가 가리키는 방향(方向)으로 가자!)
이렇게 결정(決定)한 김삿갓은 짚고 있던 죽장(竹杖 : 대지팡이)을 허공(虛空)에 던져보니 둥실
떠올랐던 지팡이가 풀밭에 털썩 떨어지며 가리킨 방향(方向)은 서북쪽이었다.
(서북쪽으로 먼저 가라는 점괘(占卦)가 나왔으니
그렇다면 경기도(京畿道)와 한양(漢陽)을 거쳐 황해도(黃海道)와 평안도(平安道)를 가 보리라.)
이렇게 결심(決心)한 김삿갓은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내려가니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마침 나무꾼이 있어 길을 물었다.
"한양(漢陽)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오?"
"왼편 길은 단양(丹陽)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제천(堤川)으로 가는 길이니 한양(漢陽)을 가려면
제천(堤川), 원주(原州)를 거쳐야 할 것이오."
"고맙소이다. 헌 데,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身世) 질 곳을 찾아야 하는데 부근(附近)에 그럴만한 집이 없을까요?"
"저 고개를 넘으면 초가(草家) 몇 채가 있는데
그곳에서 구해 보시구려."
"고맙소이다."
그렇게 김삿갓은 고개를 넘어 네다섯 보이는 초가(草家)에 찾아들어 밥 한술 구걸(求乞)하니 고맙게도 한 집에서 밥 한 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저녁상을 들여오는 그 집 주인의 얼굴에
수심(愁心)이 잔뜩 껴 있었다.
김삿갓은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리며
주인(主人)에게 물었다.
"고맙게도 저녁을 주셔서 아주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주인장(主人丈)께서 무슨 걱정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주인(主人)은 약간 당황(唐慌)한 빛을 보이며 말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원님을 모시고 살아가자니
하루도 걱정이 끊일 날이 없어 그렇습니다."
"원님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니요?
세상(世上)에 그런 일도 있습니까?
자고로 고을 원님은 백성(百姓)을 보살피고 보호(保護)할 목민관(牧民官)인데, 원님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대서야 말이 됩니까?"
"누가 아니라오? 그러나 우리 고을의 원님은 전혀 그렇지가 못해요."
주인은 이같이 말을 하며 한숨까지 내 쉬었다.
"원님이 어째서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말씀인지
그 이유(理由)를 좀 들려주시죠."
김삿갓은 필시(必是) 무슨 곡절(曲折)이 있으리란
생각에 주인(主人)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주인(主人)은 한숨을 길게 쉬고 말을 했다.
"우리 고을 원님은 토색질이 얼마나 심한지, 이 년 전에 부임(赴任)해 오자. 이방(吏房)을 통해
신임사또를 환영(歡迎)하는 뜻에서 가가호호
(家家戶戶) 무명 두 필씩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명절(名節) 때마다 세찬비(歲饌費), 생일(生日) 때는 수연비(壽筵費), 아들딸 여읠 때는 혼수비(婚需費) 등등(等等), 서너 달을 멀다 하고
뇌물(賂物)을 공공연히 요구(要求)해 왔다오.
그래서 백성(百姓)들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는데 이번에는 다른 고을로 영전(榮轉)해 가면서
전별금(餞別金) 명목(名目)으로 각 가구(家口)대로 현금 스무 냥씩을 내놓으라고 닦달을 하니
우리 같은 가난뱅이가
무슨 재주로 스무 냥을 내놓을 수 있겠냐 말이오."
"그야말로 무서운 탐관오리(貪官汚吏)로군요. 백성들 사이에서 원성(怨聲)이 끊이지 않을 텐데
그런 자가 영전(榮轉)해 간다니요?
도대체 고을 원님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성씨(姓氏)가 이가(李哥)라는 것만 알 뿐, 이름은 잘 모르지요. 그런데 그깟 놈의 이름은 알아서 뭐하겠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동헌(東軒)에 찾아가 따져 보려고 하지요."
"그만둬요! 한양에서도 으뜸 세도가(勢道家)로 손꼽는 재동(齋洞) 대감의 뒷줄을 붙잡고 있는
모양인데 섣불리 따졌다가는 오히려 봉변(逢變)을
당할 거 같구려."
"그렇다면 주인장(主人丈)께서는 전별금(餞別金)
스무 냥을 마련해 놓으셨소이까?"
"천만(千萬)에요! 그날그날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형편(形便)인데 현금(現金) 스무 냥을
무슨 수로 마련하겠소?
아직 추수(秋收)도 못 한 때이니
수중(手中)에 돈이 있을 수도 없지요."
"그렇다면 그 문제(問題)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 주십시오."
김삿갓은
생각되는 바가 있어 이렇게 말을 하자,
주인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노형(老兄)은 무슨 재주로 그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오?“
~~~ 2부 2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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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堵 안도
安 편안 안
堵 담 도, 강 이름 자
{土(흙 토) + 者(놈 자)}
唐慌 당황
唐 당나라 당
慌 어리둥절할 황
歡迎 환영
歡 기쁠 환
迎 맞을 영
餞別金 전별금
餞 보낼 전
{𩙿(밥식 식) + 戔(나머지 잔)}
別 나눌 별
金 쇠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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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 청안 안민헌
관아란 관원들이 나랏일을 보기 위해 지은 건축이지요. 나랏일을 보는 곳이므로 궁궐 건축이나 사찰 건축과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관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냅니다. 조선시대 관아의 건물은 고을의 원님이 공무를 살피는 동헌과 객사가 있고 원님이 거주하는 내아와 부속건물이 있는데요. 청안 안민헌은 동헌만 남아 있습니다.
- 괴산군청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