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52)
제 1권 난세의 강
제8장 천자를 활로 쏘다 (1)
동생 태숙 단(段)의 반란을 진압한 이래 매년 한두 차례 전쟁을 치르며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를 보이던 정장공은
총애하던 두 신하 영고숙과 공손알의 죽음을 계기로 의기가 꺾였다.
마음이 무겁고 침울했다.
"지나친 군사 정책은 백성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합니다.“
때마침 제족(祭足)이 이렇게 간언했다.
"옳은 말이오."
정(鄭)나라 백성들은 모처럼 전쟁이 없는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은 참 이상하다.
이미 시대가 조용한 것을 용납하지 않게 되었는가.
중원의 무법자로 불리며 천하를 시끄럽게 하던 정장공(鄭莊公)이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질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노(魯)나라와 송(宋)나라 공실에서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시해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것이 향후 5백여 년 간 끊임없이 발생하는, 춘추전국시대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난신적자(亂臣賊子)의 출현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었다.
이 무렵, 노나라 군주는 노은공(魯隱公)이었다.
그런데 그는 본래 정식 군주가 아니었다.
그 전 군주는 노혜공(魯惠公)으로, 노나라 시조인 주공(周公) 단(旦)의 14세손이었다.
노혜공의 첫째 부인은 송나라 출신의 '맹자(孟子)'라는 여인이었다.
여기서 잠시 여자의 이름에 대해 살펴보면,
당시는 여자에게 이름이 없었다.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살아 있을 때 부른 이름이 기록된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여자 이름은 죽은 후에 붙인 것이거나,
또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성 혹은 관작(官爵)을 합쳐 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땅 이름과 성을 합쳐 부르기도 하였다.
이 소설 앞에 등장한 요녀 포사의 이름만 보아도, '포'는 땅 이름이요, '사'는 성(姓)이다.
'포 땅에 사는 사씨'라는 여인이란 뜻으로 포사로 불린 것 뿐이다.
정장공의 어머니 무강(武姜)도 마찬가지이다.
무(武)는 그 남편인 정무공(鄭武公)의 무자를 딴 것이고, 강(姜)은 친정의 성인 강을 딴 것이다.
쉽게 풀면 정무공의 부인 강씨라는 뜻이다.
노혜공의 정부인 맹자라는 여인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맹자는 송나라 공녀(公女)인데,
여기서 맹(孟)은 첫째라는 뜻으로 장남 혹은 장녀를 뜻한다.
뒤의 자(子)는 친정인 송나라의 성이 '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서 붙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송나라 제후의 장녀'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춘추>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당시 제후들의 딸에게는 이런 호칭이 통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성(亞聖) 맹자(孟子)와는 엄연히 다른 호칭이다.
이때의 자(子)는 존경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그런데 노혜공에게로 시집온 맹자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노혜공은 맹자가 데리고 온 잉녀인 성자(聲子)를 첩으로 삼았다.
성자는 맹자의 조카딸이다. 노혜공의 첩이 된 성자는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식고(息姑)라고 지었다.
그 뒤 노혜공은 다시 송무공의 둘째딸인 중자(仲子)를 새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중자는 맹자의 친동생이다.
자매가 차례로 노혜공의 정부인이 된 것이다.
이렇듯 노나라와 송나라는 가까운 사이였다.
중자(仲子)는 시집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공자 궤(軌)이다.
노혜공은 장차 공자 궤(軌)로 하여금 대를 잇게 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런데 노혜공은 공자 궤(軌)를 본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노나라 공실은 후계자 문제로 고심했다.
관례대로라면 당연히 정부인 소생인 공자 궤(軌)가 군위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이때 공자 궤(軌)는 어린아이였다.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이에 노나라 중신들은 서출 식고(息姑)를 임시로 군위에 올렸다.
- 나는 정식 군주가 아니다. 공자 궤(軌)가 장성할 때까지만 그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겠다.
식고(息姑)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정식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도 않았다.
이 식고(息姑)가 바로 노은공(魯隱公)이다.
그러므로 노은공은 공자 궤(軌)를 대리하는 섭정 군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노은공(魯隱公)은 어질고 정치를 잘했다.
당시의 실력자 정장공과 손을 잡고 영토를 확장하는 등 나라를 부강시켰다.
신하들과 백성들로부터도 두터운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어느덧 노나라 사람들은 노은공이 섭정 군주인 것을 잊어버렸다.
공자 궤(軌)는 점차 신하들 머릿속에서 멀어져갔다.
단 한 사람 - 노은공만이 공자 궤(軌)를 잊지 않았다.
'궤(軌)가 좀더 자라면 군위를 그에게 넘기리라.‘
늘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할 때 노(魯)나라 군권을 장악한 공자 휘가 다른 생각을 품었다.
공자 휘가 누구이던가.
정장공이 송나라를 칠 때 선봉을 맡아 많은 공을 세운 노나라 제일의 장수가 아니던가.
그는 욕심이 많았다.
군권뿐만 아니라 내정의 실권까지도 손에 쥐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군주인 노은공(魯隱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정, 제, 노 삼국 연합군이 허나라를 치고 돌아온 해의 일이었다.
이 해는 노은공(魯隱公)이 군위에 오른 지 11년째 되는 해이기도 했다.
어느 날 공자 휘는 노은공을 찾아가 슬며시 마음을 떠보았다.
"이제 국방도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저는 태재(太宰) 벼슬에 올라 내정을 해보고 싶습니다.“
공족인데다가 공을 많이 세운 공자 휘의 말이라 노은공(魯隱公)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그대도 잘 알다시피 나는 잠시 국사를 살피는 섭정일 뿐이다.
이제 공자 궤(軌)도 많이 자랐다.
장차 이 나라는 궤(軌)가 맡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궤(軌)가 군위에 오르거든 태재 벼슬을 달라고 하여라."
같은 것이라도 사람마다 각자의 그릇에 맞춰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공자 휘도 그러했다.
노은공(魯隱公)의 이 말을 공자 휘는 자기 식대로 해석했다.
'주공이 마음속으로 공자 궤(軌)의 존재를 꺼려하는구나.‘
이렇게 짐작한 그는 한 걸음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좋은 것이 손에 들어왔을 땐 그걸 남에게 내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공자 휘가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주공께서는 이미 임금이십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기꺼이 복종하고 있습니다.
천세 후까지도 자손에게 군위를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섭정만 할 뿐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제 공자 궤(軌)도 장성했으니 장차 주공의 자리를 노릴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기회에 궤(軌)를 죽여버리십시오.
신이 앞장서서 주공의 근심을 덜어드리겠습니다."
노은공(魯隱公)은 대경실색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타오르는 눈길로 공자 휘를 쏘아보았다.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느냐?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인가?
나는 이미 은퇴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나를 잘못 보아도 한참 잘못 보았구나.
만일 네가 진정에서 그 말을 한 것이라면
나는 네 목을 벰으로써 나의 마음을 만천하에 알리겠다."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 공자 휘의 목을 후려칠 기세였다.
공자 휘는 기겁하였다.
얼른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품지 않겠습니다.“
"꼴보기 싫다. 썩 물러가라.“
공자 휘는 도망치듯 그자리를 물러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혹시 주공이 공자 궤(軌)에게 내 말을 전한다면......‘
공자 궤는 자신을 원수처럼 여길 것이 분명하다.
그가 군위에 오르는 날,
공자 휘는 태재 벼슬을 받기는 커녕 주살을 당하기가 십상이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러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다시 수레에 올라탔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비밀리 궁으로 들었다.
공자 궤(軌)와 대면하자 그는 한껏 말소리를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