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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시간의 단위를 하루 혹은 일주일 단위로 끊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학교나 직장에 가서 하루의 일과를 소화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고, 주말에는 다소의 여유를 가지고 휴식이나 취미생활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시작될 월요일부터의 대비하느라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뜻밖에 3일 이상의 연휴가 주어지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찾거나 여행을 통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간의 흐름에는 민감해도 오히려 계절의 변화는 뉴스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겠다.
‘한시에 담은 24절기의 마음’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한시(漢詩)에 나타난 계절의 변화를, 저자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추억을 반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해를 ‘24절기’로 구분하는 것은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절기를 통해서 계절의 흐름을 인식하고, 또한 농사를 짓는데 씨를 뿌리고 거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침 역할을 각각의 절기가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1년 단위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봄에는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만물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이에 따라 주변의 자연 환경도 어둑한 갈색에서 푸릇한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고, 씨를 뿌리고 농작물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뽑는 김매기도 때에 맞춰 이뤄진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볕을 받아 곡식이 여물면, 어느 사이에 가을철의 의 수확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겨울철의 기나긴 휴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과 시간의 단위가 다른 것은 각각의 사회가 처한 문화와 생산 기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절기를 소재로 한 한시에는 작자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는 내용과 함께 과거 농경 사회의 문화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년의 절기는 계절별로 각각 6개씩 배정될 수 있기에, 이 책에서도 이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주제에 따라 각각 6개의 소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각 계절과 절기에 얽힌 경험과 추억들을 소개하면서, 그에 맞는 한시 작품들을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제시하면서 풀이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저자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감성적인 내용을 토대로 한 한시 작품에 형상화된 면모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봄에는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을 비롯하여 우수와 경칩, 춘분과 청명, 그리고 농사가 시작되기 전 곡식에 도움이 되는 비가 내린다는 곡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6개의 절기가 배당되어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같은 내용의 글씨를 기다란 종이에 써서 대문과 집안 곳곳에 붙이기도 하는데, 이를 일컬어 춘첩자 혹은 입춘방이라고 한다. 이 역시 농업을 중시하던 시절의 풍습이라고 하겠는데,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고 사람들 역시 대부분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탓에 이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춘첩자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저자는 먼저 임제의 한시 <입춘첩자 대전> 등 관련 절기를 다룬 한시를 통해, 시인들의 감성과 당대 문화에서의 의미 등을 풀어내고 있다.
이처럼 여름에 배당된 절기는 여름이 시작된다는 의미의 입하와 소만, 망종과 하지, 그리고 더위가 절정에 이른다는 소서와 대서 등에 관한 추억과 관련 한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가을 역시 입추와 처서, 백로와 추분, 그리고 한로와 함께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 등의 절기에 대한 내용과 관련 작품들이 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입동과 소설, 대설과 동지, 그리고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한과 대한 등의 절기에 관한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득해가는 24절기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관련 한시들을 통해서 당대 문화에서의 의미와 시인들의 감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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