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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저자인 풍몽룡은 명나라 말기에 활동했던 문인으로, 명나라가 망한 후에도 명나라 부흥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약 5백여 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저자는 다양한 사료를 참고하여 소설이면서 역사서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저작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동안 <논어>를 비롯한 유가의 경전을 읽으면서,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언급될 때마다 조금은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여러 주석과 해설서들을 통해 해당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전반적인 시대적 흐름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단편적인 지식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장구한 역사를 살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이번 기회를 빌어 중국 고대사를 통독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비단 중국 관련 서적을 읽을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문인들 역시 사서(四書)를 비롯한 중국의 경전과 역사서를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기에, 고전문학 관련 자료들에서도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고사들이 출현하고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중국 관련 서적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조선시대 문인들에게는 고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와 관련된 사건들은 이미 하나의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가의 경전이 ‘전문 서적’으로 취급되고 있기에, 당시에는 ‘상식’으로 통용되었던 고사를 이해하기 위해 별도의 공부를 해야만 한다.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따라 ‘상식’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제환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제1권에서는 주나라 왕실이 약화되면서, 왕도가 호경에서 낙양으로 천도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전체 24회에 걸쳐 48개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후 주나라 왕실을 비롯한 ‘열국(列國)’들의 세력 다툼과 흥망성쇠의 역사를 매우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제나라의 환공이 명분을 앞세운 행동으로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자리를 잡게 되는 과정이 서술되고 있다. 실제 ‘춘추오패’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주나라 왕실을 섬기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명분을 내걸고 제후들의 맹주로 자리를 잡는다. 특히 ‘춘추오패’가 패자로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항상 그를 보좌하는 뛰어난 참모들이 함께하고 있다.
제환공이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흔히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관중과 포숙아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 외에도 습붕을 비롯한 참모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으며, 매번 그들의 조언을 새겨듣고 명분을 앞세워 행동했기에 제환공이 당대의 존경받는 패자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참모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인 제환공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2권에서 그 실상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된다. 1권에서 등장하는 정나라 장공의 경우에도 채족과 영고승 등의 뛰어난 참모들이 있었지만, 주나라 왕실과의 불화로 인해서 패자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당대의 역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춘추오패에 버금가는 ‘춘추소패(春秋小覇)’로 불리기도 하는데, 제환공과의 차이는 주나라 왕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제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던 인물들 중에 관중에 대해서는, 공자와 맹자의 평이 엇갈리기도 한다. ‘인(仁)’을 중시했던 공자의 경우 제환공과 관중의 명분을 내세운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강조했던 맹자는 그들의 행동은 왕도(王道)에 어긋나는 패도(覇道)일 뿐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러한 평가의 차이는 그들의 말을 기록해서 엮은 <논어>와 <맹자>를 읽다 보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서 나라가 망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던 춘추전국시대에, 과연 공자와 맹자의 논리가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즉 그들의 논리는 명분으로는 옳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제후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후대의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 책은 장구한 시대의 역사를 다루면서 그 분량도 상당하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을 뗄 수가 없는 매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사서를 비롯한 유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던 내용들이 전제되었기에 이 책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 책을 가까운 곳에 두고, 이와 관련된 인물이나 시대를 확인하고자 자주 뒤적여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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