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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해서 한강의 소설들을 읽고 있다. 몇 해 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그의 작품이 지닌 특징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었다가, 오래 전에 구입한 책들을 하나씩 읽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작가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라는 것, 그 상처를 드러내며 즐거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장을 나눠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점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것도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작품은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고 살아가는 여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1인칭 화자인 ‘나’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로,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이민을 갔다가 홀로 귀국하여 문화센터에서 희랍어 강사를 하는 인물이다.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익힌 희랍어를 한국에 돌아와 문화센터에서 가르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점점 말을 잃어가는 ‘그녀’는, 이혼을 하고 재판에서 패소를 하여 아들까지 전 남편에게 빼앗긴 상황으로 그려지고 있다. 문화센터의 강의실에서 만난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그들이 처한 상황과 사연들이 상세히 소개되는 것이다.
그밖에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그저 두 사람의 조연 정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휴가를 앞둔 어느 날 건물에 날아든 새를 내보내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남자의 안경이 깨어지면서, 그가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휴가철을 앞두고 텅빈 강의실을 찾았던 강사를 기다리다, 눈이 어두운 그를 도와 병원을 거쳐 남자의 집에까지 바래다주는 여자. 그렇게 그들은 강의실이 아닌 공간에서 마주치면서, 어렴풋하게 서로의 상황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두 인물의 사연과 내면의 감정들을 서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소개를 ‘침묵을 그려내는 단단하고 섬세한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일까?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모두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품어주었던 것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서로의 상처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단지 두 인물의 섬세한 내면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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