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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상을 글로 쓴다는 것이 간단한 듯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하루의 일과를 자세히 소개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헤아려보면 결국 그 내용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듯한 일상에서도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 붙잡아 정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일상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글쓰기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고, 그것을 풀어내는가의 문제라고 하겠다.
자신을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글로 풀어내면서 그와 함께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책의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물감을 물에 풀어 종이에 그린’ 수채화들 인 듯한데, 글과 함께 어우러진 그림들을 통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경력 단절’을 겪었던 저자에게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한 것은 유언처럼 남긴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라고 한다. 오래 쉬었던 탓에 처음에는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으나, 차츰 손에 익고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SNS의 댓글들에 힘입어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목차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타이틀로 내걸고, 각각의 계절에 수록된 글의 내용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수채화를 그릴 때 ‘농도를 조절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농도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느낌을 글로 표현하면서 ‘이 책은 그 농도를 사계절로 나누어’ 풀어내고 있기에, 사계절을 타이틀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목차를 사계절로 나누고 있다고 해서, 해당 계절에 수록된 글들이 온전히 그 계절만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토록 투명한 날’이라는 봄을 표현한 제목은 ‘봄을 그리다’라는 글로 시작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저자가 생각하는 그림과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는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아마도 ‘경력 단절’을 넘어 다시 그림을 시작하여 ‘나만의 그림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마치 사계절을 여는 봄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렇게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여름이라는 계절을 타이틀로 해서, ‘마음을 담는 시간’이라는 제목 아래 풀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제 직업은 화가입니다’라는 생각을 표출하고, ‘보이는 것 너머는 그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가을은 모든 식물들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듯이, 저자에게도 ‘삶의 농도’를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드러내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어릴 때부터 예민했던 자신의 성격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림을 다시 그리고 화가로 활동하면서 ‘예민함도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항상 타인들의 기준이나 반응을 통해서 자신을 평가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의 그림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인정의 기준을 달리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평가나 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항목에서는 어릴 때부터 돈독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유언처럼 남기신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을 ‘깊은 밤을 건너온 사람에게’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단 ‘깊은 밤을 건너온 사람’은 저자 자신이지만, 혹시 자신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전해보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화가로서의 길을 안정적으로 걷기까지 ‘충분히 힘들었으니’, 새롭게 ‘화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끝까지 그린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겨울 항목의 마지막 글을 ‘이제 다시 봄’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에 새롭게 펼쳐질 사계절에 대한 희망을 표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그림 안에 행복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처럼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나만의 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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