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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주의 학술지를 표방한 '무의식의 저널(Umbr(a))'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지난 2010년에 출간했던 것을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자끄 라깡은 프로이트의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한 정신분석학자로써, 그의 이론은 문학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라이팅(Writing)'은 곧 글쓰기를 지칭하는데, 글을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도 라깡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다. 나 역시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써. 읽고 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여기고 있다. 특히 문학 작품을 분석할 때, 다양한 관점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문학 작품을 분석한 다양한 관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신분석에 의한 방법론이라고 하겠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한 방식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신분석적 방법이 특히 작가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이해에 있어 작가의 역할이 분명 중요하지만, 작가와 무관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라깡의 이론을 토대로 글쓰기와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유용하다는데 공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론으로 간주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주제로 다룬 이 책의 내용들은 나에게 상당히 유용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서론에서 '글과 말하기 치료'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마이클 스탠쉬를 비롯하여, 이번 시리즈에서는 모두 8명의 필자가 참여하고 있다. 허먼 멜빌의 작품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인 바틀비의 어법을 분석한 주판치치의 글은, 비록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와 관련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렇게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라고 번역되는 단어 'prefer'가 지닌 '경계성'을 추출하여, 필자가 '순수한 공간'이라고 지칭하는 자신의 완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읽어내고 있다. 여기에 캐서린 말라부의 '신경문학'은 푸코의 이론에 기반하여 문학을 정신분석과 접맥시켜 다루고자 한다. 프로이트의 '늑대인간 임상사례'를 중심으로 '문자'와 '글'의 의미를 탐색하는 루씨 캔튼의 작업도 다소 어렵게 다가왔지만, 흥미롭게 읽어낸 내용이었다.
이밖에도 '라깡의 문학비평'의 특징을 설명하는 글과, '왜 작가인가'라는 도전적 제목으로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고자 하는 내용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어학에서 기초적으로 다루는 '기표와 기의'라는 주제를 통해 라깡과 키에르케고르의 텍스트를 분석한 시기 요트킨트의 글은 제목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햇다. 마지막에 수록된 '제약의 작동'은 히틀러의 전번으로 처벌받은 아이히만의 확신이 문자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고 있음을 들어, 글과 신념의 문제가 어떤 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반면 유대교의 랍비들의 토론을 제시하면서, 그 과정에서 행해진 '하늘의 뜻'을 거부하고 성문법적 조항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글이 글 쓰는 이의 생각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거리를 안겨줬다고 이해한다. 여전히 정신분석이나 라깡 이론은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그것을 문학 또는 글쓰기라는 주제와 연관시켜 논하고 있어 조금은 편안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라깡 이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안겨줄 수 있는 글들이라고 생각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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