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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을 다루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진들이 제작 과정을 엮어낸 책이다. 처음부터 이길보라 감독을 포함해서 함께 작업했던 3명의 제작진과, 후반에 새롭게 합류한 조소나 프로듀서 등 모두 4명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서술되고 있다. '월남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가 살아생전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경력을 자랑스러워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이길보라 감독은 그것을 기화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를 통해서 할아버지의 참전 이유가 이혼 비용을 벌기 위해서였고, 농아인 아들 즉 감독의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의 기억과 함께, 전쟁의 뒤편에 서 있었으면서도 '공적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할머니의 기억을 추적하려는 의도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감독은 밝히고 있다. 이후 제작팀을 꾸려 베트남을 찾아서 당시 참전했던 한국군들에 의해 여러 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으며, 살아남은 이들이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증오비'를 세운 것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음력설을 전후해서 베트남 곳곳에서는 당시 희생되었던 이들에 대한 제사와 위령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기사와 방송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 중에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이 한국에 와서 마주쳤던 장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베트남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그들이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양민 학살에 대한 증언'을 하러 온 장소에 나타나, '학살은 없었으며 베트콩 가족은 베트콩이기에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치는 이른바 '참전용사'들의 집회를 목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참전했던 이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했던 생존자들에게 그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라 이해된다.
그때의 심정을 담아 쓴 편지의 다음 구절이 그래서 아프게 다가왔다. "저희들이 행사장 앞에서 여러분 중의 한 분이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전해 듣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적군의 가족 역시 적군이라고 하셨더군요. 그렇다면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맞서 싸운 의병이나 독립군 가족을 일본군은 모두 죽여도 되는 것인가요?" 이른바 '참전용사'들의 주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오랫동안 그릇되게 전해지던 논리였기 때문이다. ‘희생자’는 존재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가해를 하지 않았다는 논리, 그리고 설혹 ‘희생’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당시에는 불가피했다는 주장들이 바로 그것이다.
멀게는 갑오농민혁명 당시 이른바 '동비'라는 명분으로 관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일본 군대에 의해 희생된 '제암리 학살사건' 등이 떠오른다. 물론 '한국전' 당시의 남과 북 그리고 미군에 의해 희생된 양민들도 있으며, 제주 4.3사건이나 여순사건 당시에 희생된 양민들도 그동안 이념적 잣대로 인해 제대로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은 여전히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일부 집단에서는 이것을 이념적인 문제로 몰고 가서, 수많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희생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서슴지 않게 자행하고 있음을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그저 외면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라도 명확한 사실을 밝히고 가해자가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으로부터 그 상처는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모순된 역사적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전쟁증적박물관'이라고 명명했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전쟁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잊혀졌던 사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살아가는 내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를 둔 이길보라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마을을 찾아, 당시의 생존자들을 찾아 화면에 담는 영화가 기획되었다. 당시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3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전쟁의 형상을 찾는 작업이었다.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혼자서 살아남은 이들이 당시를 증언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촬영과 편집 작업에만 5년이 넘는 기간이 걸린 영화 <기억의 전쟁>은 2020년 2월 개봉이 예정되었으나, 당시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정대로 개봉을 했지만, 코로나19의 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일찍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를 만들었던 이들이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담아 엮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그동안 우리들이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모습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생존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우리 현대사의 모습도 함께 겹쳐 떠올랐던 것이다. 여전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선명하게 대립하고,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당당함으로 인해서 피해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우리 현대사에도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에 특별법이 통과된 '제주 항쟁', 최근 국회에서 입법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여순사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여전히 가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광중민주화운동' 등등.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래 전 '월남파병용사'를 자처하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던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베트남 현지에서는 무고한 양만들이 학살되었고, 그 현장에는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증오비'가 곳곳에 세워져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생존자 중의 한분이 이야기 했다는 이런 구절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한 일은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한 일은 아버지가 책임져야 한다!" 즉 이 말은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을 때 피해자들의 용서가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서 영화가 제대로 상영될 수 없었고 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상황이 좋아져 다시 영화관에서 상영되어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삶일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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