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1933) (유정 옮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결코 성내지 아니하며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어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약간의 야채를 먹으며 모든 것을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며 그리고 잊지 않으며 들녘 솔밭 그늘의 조그마한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면서 동쪽에 병든 아이가 아프면 가서 병구완 해주고 서쪽에 지쳐버린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겁내지 말라고 일러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송사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심할 적엔 눈물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도 듣지 않고 골칫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인간이 나는 되고 싶다
[해설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인위적인 기교도 없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나 단단한 생활의 힘이 느껴진다. 직유나 은유가 하나도 없는 시. 얻기 힘든 건 기교가 아니라 순진이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람만이 이 시처럼 살 수 있다. 그냥 착해서도 안 된다. 동서남북을 살피며 죽어가는 사람을 위로하고 싸움을 말리는 적극적인 선을 실천해야 한다. 자기 한 몸 돌보기도 힘든 코로나 시대에 읽으니 울림이 더 크다.
우리는 너무 오염됐다. 몇 년 전 페이스북을 시작한 뒤 나도 모르게 ‘좋아요’에 중독되었다. 칭찬을 듣지 않고 전업작가로 생존할 수 있을까. 시에서처럼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약간의 야채만을 먹으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탐식가인 나는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미야자와 겐지는 농사를 지으며 동화와 시를 썼다. 비에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소망했지만 병으로 서른일곱 살에 죽었다. 그처럼 착하고 훌륭한 사람을 왜 일찍 데려가시는지.(2021. 3. 15.자 조선일보 최영미의 어떤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