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의 보편주의)
보편성은 제국 성립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보편성은 진리, 필연과 사실상 같은 개념이다. 세상이 하나의 기준에 의해 돌아간다고 믿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유발 하라리도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강력한 제국은 보편성(이라는 상징, 또는 허구)에 대한 신뢰 위에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제국은 또한, 단일 화폐의 존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의 제국 내에는 하나의 안정된 화폐만이 널리 통용될 수 있다. 유일하고 안정된 화폐는 원활한 거래와 자본축적의 도구로 활용된다. 정치인, 장사꾼에게 보편성은 아주 중요한 자원이 된다.
보편성은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땅의 정치적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철학자들의 주된 탐구 주제이기도 하다. 밀레토스 학파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보편적이고 영구불변의 물질에 대해 탐구했다면, 피타고라스는 세상의 보편적인 운동법칙에 대해 탐구했다. 피타고라스가 발견했다고 주장한 세상의 운동법칙은 수의 조화였다. 그는 수의 비례가 잘 이루어진 질서와 조화의 상태는 우주의 이상과도 부합한다고 믿었다. 피타고라스식 질서 하에서 노예는 노예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며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한다. 이는 플라톤의 보편주의, 즉 이데아론과 상통한다.
참고로 피타고라스는 철학적으로 보편주의자이면서 종교적으로는 윤회설을 믿었다. 그에게 혼은 맑은 것이지만 육체는 혼탁한 것이었기에 죽음은 혼탁한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길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금욕이 필요하다는 기독교 사상의 뿌리가 된다. 하지만 후에 니체가 지적했듯이 정신과 육체를 이분화하고 전자를 위해 후자를 부정하는 사고방식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허무주의에 불과하다. 수능 고득점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학창시절의 고통은 무조건 견뎌야 하며, 명문대 입학 이후에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고 그 이외의 삶은 의미가 없다는 한국식 교육관도 피타고라스, 기독교 사상과 비슷한 허무주의라고 볼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피타고라스 비판)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에게 영향을 준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판을 제기했다. 첫째, 세상은 평화롭거나 조화롭지 않다. 만물의 근원이자 진정한 정의는 싸움과 다툼이다. 모든 것은 다툼에서 탄생하며 다툼이 없으면 세상은 생명력을 잃고 소멸한다. 예컨대 사용하지 않는 활은 정지되어 있는 물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활 내부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만일 활의 줄을 끊으면, 줄이 풀어진 활은 생명력을 잃고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제자가 거의 없어서 그의 사상은 일단 대가 끊겼으나, 후에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해 재조명을 받게 된다.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세계는 상호 대립되는 것들의 상호작용과 변증법적인 힘에 의해 변화한다.
둘째,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 이외에 보편적인 것은 없다. 예컨대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므로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이 같은 그의 사상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고정된 실체가 아무것도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불교적 세계관과 비슷하다. 니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은 해탈이 빠진 불교 철학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현대과학에 의하면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매 순간 분열하면서 각각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고,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약 8년을 주기로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고 한다. 세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추신 : 파르메니데스의 불변론)
피타고라스 이후 플라톤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고 보았던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운동은 불가능하고, 실재(實在) 전체는 하나의 단일하고 부동, 불변인 실체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존재는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이런 결론은 그리스의 문법 때문에 발생한 혼돈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제인은 여자’(Jane is/was a woman)가 참이라면 파르메니데스의 생각대로 ‘제인은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닌 존재(Jane is not a woman)’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그러나 제인이 어디인가 존재(There is/was a Jane)했다가 거기에 존재하지 않을(There is not a Jane)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즉 플라톤에 의하면, 파르메니데스는 그리스 문법체계(영어도 마찬가지)에서 한 단어(am, are, is)가 ‘이다’(상태)와 ‘있다(존재)’의 의미를 모두 가질 수 있음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론(“존재는 달라질 수 없다”)에 이르렀다고 본 것이다.
첫댓글 강의 내용 요약,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