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저서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지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주요 해설자로 하거나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과 편지를 많이 남겼다. 16세기 중반 제네바의 스테파누스라는 인쇄가(家)는 플라톤의 책을 수집하고 집대성하여 플라톤 전집인 <대화편>을 만들었는데, 그가 1578년에 만든 플라톤 전집의 각 페이지에 표시된 번호를 스테파누스 번호(Stephanus pagination)라 한다. 오늘날 플라톤 책의 모든 번역본들은 원전(原典)을 표시할 때 스테파누스 번호, 페이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대화편>의 주인공인 소크라테스가 한 말들은 정말로 소크라테스가 한 게 맞을까? 소크라테스가 주요 해설자로 등장하는 플라톤 전집, 즉 <대화편>은 플라톤이 각각의 책들을 저술한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중-후기, 말기로 구성된다.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의 변론’(‘辨’明 아닌 ‘辯’論이 옳은 표현이다)과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등은 대화편 초기에 등장하고, 대화편 말기에는 ‘소피스트’, ‘정치가’ 등이 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자료의 일관성 등을 꼼꼼히 분석하는 문헌비평(text critic)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포함한 초기의 저작들은 소크라테스의 실제 주장을 거의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말기 저작으로 갈수록 플라톤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담은, 소크라테스에 관한 소설책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소크라테스 발언의 진위 여부와 함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을 쓴 의도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469년경에 태어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원전 399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플라톤(BC 424/423~348/347)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지 20년이 지난 BC 370년대에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소크라테스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기원전 400년 중후반대는 많은 아테네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대화편에 등장하는 많은 소피스트들의 발언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플라톤이 책을 쓰기 시작한 BC 370년대에는 아테네에 많은 시련과 위기가 찾아왔다. 이 혼란기를 겪은 플라톤에게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중우정치의 허깨비 같은 실체와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하고 소피스트들을 악한 조연으로 등장시킨 플라톤의 <대화편>이 출간된 이후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계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흐름은 마르크스에게까지 이어진다. 플라톤의 사상은 복잡한 우주에서 근본의 단일성에 대해 탐구한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우주에서 조화와 질서를 찾아낸, 혹은 발명한 피타고라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권선징악-희극-의 기준이 되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는 본질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보편성과 본질주의를 부인하고, 오로지 개별성과 특수성만 인정하는 유명(唯名)론자 니체 이후 플라톤에 의해 매장되었던 소피스트는 다시 부활한다. 현대철학에서는 소피스트가 주인공이다. 확실성과 분명한 선(善)이 존재한다면, 오직 선을 추구하는 무오류의 하느님, 교황님, 부처님, 공자님, 수령님, 회장님의 권위와 그들의 무소불위적 권력이 모두 인정될 수 있다. (물론 하느님과 공자님과 수령님과 회장님의 기본 생각이 불일치하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간이 죽음을 벗어나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비극과 부조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이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생들에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지만, 세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자주 변한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본질주의자들에 의해 생매장 당했던 비극을 부활시켜야 한다.
추천 도서 : 희랍철학 입문(주 교재), 소피스트 단편선집 1&2, 프로타고라스(플라톤 저, 강성훈 옮김, 아카넷), 고르기아스(플라톤 저, 김인곤 옮김, 아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