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란 무엇인가? (6)
이민숙
인문학이란 어린왕자의 꿈이다. 그의 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어른들은 도무지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가슴속 보물을 보여줄 수가 없다. 그림에 깃든 선과 면, 단순한 색채만으로 모든 사물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그 실체의 진실을 알 수가 없다.
사각형을 그렸다고 그것이 사각형인가? 모자 형태를 그렸다고 그것이 모자인가? 사각형 안에는 양도 있고 꽃도 있고 떡도 있을 것이다. 화가의 마음에 품은 소중한 것들은 다 그릴 수가 없다. 그냥 단순히 표현된, 그림의 내적요소?--- 모자 안에 들어있는 사물은 어떤가? 겉모습은 분명 모자지만, 그 안에는 코끼리도, 산도,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돛단배도 있을 수 있다. 그 안의 깊은 비밀의 정신세계, 또는 너와 나 사이를 만나게 하는 주관적 실체, 서로의 내면을 털어놓았을 때 갑자기 마음의 귀가 번쩍 뜨이는, 유레카! 그것이 인문학의 핵심이다. 인문학을 했다 하면서 털어놓음의 진수를 모르고 있다면 그건 인문학적 방법을 새롭게 정립해야 마땅할 지점이다.
우리 모두에게, 안다는 건 무엇인가. 그건 소통의 질료이자 조각품이다. 소통을 위한 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다. 단순명료한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단순명료한 사실들의 배면을 채우고 있는 복잡성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어린왕자가 만난 각각의 별의 주인공들은 세계 속의 복합성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자신들의 도그마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소통이나 대화는 가능하지 않은 현실 너머의 늪이다.
인문학은 모순의 실체를 밝히는 현미경이다. 인문학의 행간에 그 현미경의 초점을 맞추는 과학적이며 미학적인 언어들이 독자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러나 그 언어들은 그러므로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현미경을 사용하여 생물체나 기타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듯이 인문학적 시간들도 더 찬찬히, 더 느긋하게, 더 끈질기게 인문학적 현미경 사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많은 인문학 전문가들은 인문학의 참된 방법은 질적 요구를 높여가는 시간투자와 꾸준한 축적을 이야기한다.
하루 한 시간, 또는 하루 책 한 단원 등 인문학적 삶의 패턴을 만들 것을 충고한다. 삶의 패턴은 중요하다. 한 패턴이 형성되기까지 수없는 관찰과 형상화, 추상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떤 지식이 자신의 삶을 더 완성된 패턴으로 만들어줄 것인가는,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나 구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그러므로, 끝없는 언어들과의 좌충우돌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날 어떤 목적을 하나 달성했다 해도, 새로운 도전과 응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삶의 과정 속에서 작고 큰 도전의 열매는 얼마든지 딸 수 있지만, 궁극의 목표란 누구에게나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삶의 궁극의 목표는 무엇일까.
너와 내가 일체되는 순간 그 목표지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 사랑과 우정! 그리고 우리 사회의 탁한 부조리들이 더 이상 어리고 순수하고 아무 욕망 없는 생명들의 뒷덜미를 이유 없이 쥐고 흔들지 않을 때까지....인문학의 길은 쉼없는 정진에 정진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오늘 말을 걸어갈 그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가 그의, 그녀의 우울에 한 발짝 다가가 더 환히 웃을 때까지 말갛게 그들이 마음 헹굴 때까지 가슴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한 인문학적 인간이다. 가자! 그리고 말하자! 그의 마음을 열어주자! 어린왕자처럼, 맑고 고귀한 눈빛이어서 금세 그가 눈물 글썽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을 수 있도록....자신의 틀은 고집하지 말고, 자신의 행복에 취해서 그를 슬프게 하지 말고, 그의 슬픔과 고통과 고독한 존재의 담벼락을 따뜻하게 감싸 비추는 햇살 한 자락으로.
칸트가 이야기했던 정언명령의 한 마디는 그냥 무시하고.....그러해야 한다는 너무 딱딱한 의무감 말고, 도덕법칙 말고, 다만 그런 인문학적 요소를 통해 우리의 인격이 조금은 성숙했다고 믿는 그 소박한 자세로, 다만 엎드려서 겸손하게 그의 눈을 바라보자. 오늘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마음 다한 위로의 인문학! 소리 없는 햇살처럼 그저 눈부시게 빛나는 윤슬처럼, 인문학은 거창한 게 아니다. 가만히 따스하게 비춰주는 행위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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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것으로 다가가는 것!!
손잡고 함께 외치는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