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를 방문한 육십대 후반에서 칠십대 가량의 노신사 고르기아스는 연설술이 무엇이냐는 소크라테스의 집요한 질문에 연설술이란 “말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상대방이 지성을 갖지 못한 무지(無知)한 사람이라면 연설가는 진짜 전문가보다 더 그럴싸하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당시 오십대 후반의 소크라테스는, 따라서 연설술은 옳고 그름과 무관한 설득의 기술일 뿐이지 정의와 비정의를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며 (달콤한) 연설술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에 해로운 아첨(kolakeia)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만일 참주나 연설가들이 무지(無知)한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또는 그들 자신이 무지해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나라 밖으로 내쫓거나, 재물을 빼앗거나 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설술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불의를 저지른 자가 있다면 (그것을 연설술로 무마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나 가족, 친구라 하더라도 고발과 응징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며, 반대로 만일 상대방이 자신에게 불의를 저질렀다면 법적 처벌을 받지 않도록 그냥 놔둠으로써 불의를 저지른 자가 오랫동안 부정의(不正義)한 상태로 살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에게 나쁜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더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젊은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자연(physis)과 법(nomos)을 필요에 따라 혼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법적 정의는 약자들이 강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만든 허상에 불과하며,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정의 역시 자연법칙이 아니라 약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법적 장치일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어 칼리클레스는 강자가 자신들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법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쾌락과 덕(개개인의 탁월함)은 다른 것으로서 쾌락의 추구가 좋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덕의 본질은 질서와 짜임새에 있을 뿐 아니라 우주적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는 주장을 통해 강자의 쾌락 추구가 자연법칙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결론적으로 고르기아스와 그의 추종자인 칼리클레스는 약육강식의 자연법칙과 정치적 연설술을 옹호하고 인위적인 법적 정의를 불신한 반면, 소크라테스는 옳고 그름과 무관한 정치적 연설술을 폄하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엄격한 처벌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법적 정의를 옹호했다.
(추신) 칼리클레스가 자연법칙을 옹호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연법칙, 즉 자연적 정의(正義)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치적 행동(연설술)을 옹호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우주의 질서와 자연적 정의를 확신했기 때문에 정의와 무관한 정치적 연설술을 불신했던 것이 아닐까요? 완전히 풀리지 않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사고체계에 대한 의문은 시즌3 “소크라테스의 변명(defense)”에서 계속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9월 7일 목요일 첫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