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스라이 멀어져 가버린 꿈 많던 여고시절에, “어둠을 밝히는 한 쌍의 촛불”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의 강을 넘고 넘어 이젠 고덕산 터전 삼아 자리 잡은 지성 〮인성 〮영성의 전당 한일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올 가을 어느 날 오전 채플 시간엔 그 책의 저자를 직접 바라보며 생생하게 그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모든 어려움을 딛고 우뚝 미국 백악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의 직임을 맡고 있는 인간 승리자로 소개되어졌습니다. 그가 불치의 시각장애와 불행한 삶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눈물어린 이야기들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신학생들을 향하여 강영우 박사는 ‘인생의 선명한 비전과 분명한 목표를 갖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오전 채플 시간엔 신선한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렸습니다. 그날 채플을 마치고 들국화가 피어 있는 신리 들길을 거닐 때에 경화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오늘 그처럼 겸허한 모국어들 들려주신 강박사님의 말씀에 참 감동했어요.
그 분의 강연을 들으니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향기’란 시가 떠오르네요.”
“제가 그 시를 한 번 낭송해 볼까요...”
가을의 향기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남쪽에선 능금이 익는 냄새
산위엔 마른 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나는 그녀에게 겸허한 모국어를 떠올리게 한 강박사의 간증을, 그녀가 낭송해 준 김현승시인의 시와 함께 나의 기억의 곳간에 또렷하게 새겨 두고 싶어졌습니다.
강박사는 당당한 자세로 단상에 올라서서, “육안으로 여러분의 모습을 못 봐도, 상상의 비전으로 여러분의 모습을 본다.”라고 첫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험난한 인생 여정의 파노라마를 거침없이 펼쳐 내었습니다.
“저는 13세 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했고, 축구공에 눈을 맞아 외상에 의한 망막 박리로 시력을 잃고 실명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제가 장님이 된데요“ 라는 말을 들은 제 어머니는 여덟 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시더니 사망하셨습니다.
이로써 저의 누나가 소녀 가장이 되어 평화시장 봉제공장 직공으로 생계유지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홉 살 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열 세 살 된 남동생은 남의 집 철물점으로 보내졌고, 저는 맹인 재활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점자를 배웠고 이듬해엔 서울 맹인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당시 명절이나 방학이 되면 기숙사에서 나와 갈 곳이 없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가지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 꿈은 맹인이지만 대학과 유학을 가는 꿈을 갖았습니다. 어떻게든 점쟁이나 안마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열여덟에 중학교를 졸업했고 이십 사세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연대에 입학하게 된 것은 NCC총무 김관석 목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후 자랑스러운 연세인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결국 돈 200$에 가방 두 개를 들고 도미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리하여 시각장애인 박사 1호의 꿈을 성취했습니다.
두 번째 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성공적으로 양육하는 꿈이었습니다. 저는 방학하면 갈 곳이 없어, “주여, 내게도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부를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1972년 연대를 졸업하고 5일 만에 결혼을 했고, 신혼부부의 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피츠버그 대에서 공부를 하며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큰 아들의 이름은 Paul(진석)이라 지었는데, 성경의 사도 Paul은 저의 역할 모델로서 거듭나는 신앙에 이르게 해 주었습니다. 큰 아들 진석은 사도 바울처럼 진리의 초석이 되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크리스토퍼(진영)라 지었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의 인내란 뜻과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영이는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내하고 기다리면 더 좋은 문을 열어 주십니다.
저는 아들들은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양육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필립스아카데미 고등학교의 건학 이념-“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대로 이들을 교육하기로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또한 사회와 국가와 세계(남 주기 위해서)를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나라를 확장키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해서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전에 미국 민주당의 토마스라이언 선생은 저에게 “강박사, 당신은 아메리컨 드림을 이루어냈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당대 명문을 이루어 우릴 부럽게 하고 있습니다.”
저의 큰 아들 진석은 죠지타운 의대교수로 있는데, 1년에 1명에게 주는 라이징 스타(‘떠오르는 별’이라 칭함) 상 을 수상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변호사로서 현재 민주당 진행국장으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저의 비전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당시 고아원에 보내졌던 여동생은 서울신대도서관 사서로 있고 남편은 박사요, 큰 딸은 약학박사로 아들은 전자공학엔지니어로 있습니다. 남의 집 철물점에 보내졌던 남동생은 16세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전 청년부대로 참전 후, 야간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큰며느리는 산부인과 의사요, 의학박사이며, 작은 며느리는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로서 죠지타운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딸 중 큰 딸은 공인회계사로, 둘째는 치과의박사로, 셋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저희 가정은 깨어진 가정이었지만 열 한명 중 여덟 명의 박사가 있습니다.
저는 지나간 학창시절에 “나에겐 자장면을 사 줄 사람이 없구나...” 라며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조금 남은 시력으로 한사코 별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얼마 후엔 마저 잃어버릴 시력을 생각하며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치며 절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시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만 첫 번째 꿈과 두 번째 꿈을 이루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겐 이미 땅으로 떨어져 버린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 꿈을 꾸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문자생활까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저자(작가)가 되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을 갖았습니다. 그리고 “빛을 내 가슴에” 라는 간증집을 내었습니다. 저의 이 간증집을 읽은 부시대통령 의 아버지 부시는 저의 책을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고귀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며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 책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미래의 꿈과 비전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한 신앙인의 책이다. 인간으로서의 불굴의 의지가 엿보이는 책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들어있으며, 무엇보다도 주위에 긍휼히 여기고 도와주는 자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저는 미국 수정교회 “능력의 시간” 중 출연하여 간증을 했습니다. 현재 저는 국제적 명성을 지닌 저술가요 연설가로서 일하고 있으며 저의 책은 100만권 이상 팔렸습니다.
1995년 유엔 국제장애인의 날엔 저의 이야기가 “눈먼 새의 노래”라는 드라마로 상영이 되었습니다. 그 후 1997년 워싱턴기념관제막식 전야제 때에 또 다시 방영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세계 도처에서 간증과 강연을 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의 도서관에 제가 쓴 책 중에서 “지혜가 이끄는 삶”,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일곱 가지”,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라는 책을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라는 책의 서문에서 제임스데인 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립보서 4장 13절)라는 말씀을 실천한 현대판 사도바울이다. 그의 불치의 병을 낳게 해달라고 세 번 간구했으나 은혜로 헤아려 감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함 속에서 온전해 진다는 진리를 현대인에게 생생하게 보여준 증인입니다. 윈스턴 처칠의 “결코 포기하지마라” 라는 이 말을 현실로 받아들여 실천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꿈을 이루게 한 현대판 증인입니다.”
지금 저의 책은 미국에서 이달의 선정도서로 전국 도서관에 배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전과 꿈이 하나님의 시각과 방법으로써 모두 성공하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라며 강박사는 그의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렇듯 불굴의 신앙과 의지와 비전으로 인간 승리를 일구어낸 ‘위대한 눈먼 새’ 강 박사의 노래를 나는 늘 마음의 곳간에 간직하며 삶의 교훈으로 삼으렵니다. 그런 까닭에 강영우박사 초청 채플 시간 내내,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연설에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추해 보면서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강박사와 같이 장애를 입고 고통스런 삶의 자리에서 오열하면서도 투철한 신앙심과 정신력으로써 인간 승리의 신기록을 세워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삼중고의 고통 속에서도『내가 만일 삼일 동안 볼 수 있다면』이란 수필을 썼던 헬렌켈러를 떠올려 보게 됩니다.
그녀는 소박하게도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 우유배달 아저씨와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와 석양을 보길 원했습니다. 또한 화려한 문명을 보기 위해선 시간이 짧을 테니 박물관을 찾아보고, 현란한 색으로 그린 그림을 보기 위해서 미술관을 찾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엔 먼동 트는 것을 보고 웅장한 창조세계속의 자연과 햇살에 반짝이는 꽃들을 다시는 잊지 않도록 그녀의 가슴에 새기길 원했습니다.
삼일이 되었을 땐 그녀가 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과 삼일 동안 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눈을 감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맹인이 된다면 지금까지 보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헬렌켈러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보던 방식이 아닌 상상의 비전으로 그의 인생과 미래를 바라 본 강영우 박사! 나는 강박사의 메시지와 헬렌켈러의 삶의 자취를 통해서, 내게 이미 건강한 몸이 있으니 모든 것을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날, 교정에 떨어져 뒹구는 샛노란 은행잎을 뜨거운 눈길로 응시해봅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길을 가는 동안 상상의 비전과 실존적인 열정의 두 날개로 힘차게 비상 할 것을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