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월의 르완다에서 약 100일에 걸쳐 벌어진 제노사이드 즉 대학살은 너무나 잔인하여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를 두려워합니다. 약 100일간 100만명이 살해되었는데, 다수족인 후투족이 그동안 자신들을 핍박해온 소수족 투치족에게 피의 보복을 한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잔인한 대학살은 몇 차례 있어왔고, 인간의 가장 극악한 면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런 행위에 대해 유엔에서도 그건 엄연한 범법이라고 규정했다지요.
그러나 100일 동안 후투족이 밀림에서 쓰는 넓적한 벌목용 칼 마체테를 휘두르며 투치족의 아킬레스건과 수족을 잘라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그리고 투치족의 가정을 방문해 그 아버지에게 어린 자식들을 변소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한 뒤 아이들의 시신 위에 부모를 죽여 덮는 동안, 또 그리고 병원에서 후투족 의사가 투치족 환자들을 죽이고, 회사에서 마을에서 살생부를 작성해서 골라 죽이고, 성당으로 피해 들어간 이들을 사제들이 교묘하게 속여 살인자들에게 넘기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강간이 벌어지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가 비어져 나오게 하는 살육이 벌어지는 동안 유엔은 애써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더 믿을 수 없는 일은, 애초 르완다의 갈등 해결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름 의연하게 르완다로 무기를 가지고 들어온 프랑스가 어찌된 일인지 대학살을 주도한 후투파워의 편에 서서 꼭두각시놀음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보다 못해 자신들이 나서서 이 대학살을 막겠으니 미국에게 장갑차 몇 대만 지원해달라고 청했건만, 미국은 유엔을 통해 장갑차를 임대해주겠다며 임대료를 올리느냐 내리느냐로 실랑이를 벌이느라 끝내 장갑차는 르완다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투치족이 중심이 된 르완다 애국전선이 죽기 살기로 총공격해 대학살이 벌어지는 조국 르완다를 해방시키자, 학살자들은 이번에는 난민의 대열에 끼어들어 이웃나라에 마련된 난민캠프로 흘러들어갔고, 국제사회가 그제야 “저 가련한 난민들에게 인류애를 베풀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한없이 퍼부은 구호물자는 결국 난민캠프에 군사기지를 마련한 후투파워들에게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는 사실도 기가 막힙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건물이 다 부서지고 자원이 하나도 남지 않은 르완다에서는 어떻게든 나라를 재건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무슨 망령에 쏘였는지 대학살을 주도한 세력들은 여전히 인종청소를 끝내지 못했다고 무기를 들고 설치며, 국제사법재판소는 범법자들에 대한 처벌에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15,6년 전에 벌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참사입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마체테를 들고 술에 취해 이웃집을 두드려 가족들을 살해한 후투족 사람들도, 그 손에 일가족 수십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찌어찌 간신히 살아남은 투치족 사람들도 이제는 다시 예전처럼 한 마을에 모여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 그 갈등이란…, 그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한이란…,
르완다 국내의 감옥은 살해에 가담한 자들로 이미 초만원이고, 썩어가는 시신 위에 허물어진 오두막에서 두 손을 놓고 있는 사람들 틈새로, 재건이라는 희망의 냄새를 맡은 국외거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개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르완다를 여섯 차례 방문하며 꼼꼼하고 치밀하게 현장추적을 한 미국인 필립 고레비치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사이좋은 공동체가 서구열강의 식민지배로 어떻게 갈등이 첨예해졌으며, ‘인종학’이라는 섣부른 이론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어떻게 서열 매겼는지, 그리고 독립한 국가들에 여전히 침을 흘리고 있는 서구 세계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이 반쯤 가려진 국제구호단체의 무지를 매우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사건은 민병대로 이름을 바꾼 후투파워 추종자들이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르완다와 주변국가를 침범해서 살육을 다시 저지른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대학살이 막을 내린지 3년이 지난 1997년 4월에 두 곳의 학교에서 벌어진 살육현장을 고발합니다.
키부예에 있는 학교를 공격했을 때처럼 기세니의 학교를 공격할 때도 민병대는 자고 있던 학생들을 깨워 후투족은 후투족끼리, 투치족은 투치족끼리 모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거부했다. 두 학교 여학생들 모두 자신들은 르완다인일 뿐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무차별하게 매질과 총격을 당했다.(425쪽)
두 학교에서 살해당한 학생들은 30명이 넘습니다. 후투파워 일당들은 같은 부족인 후투족 여학생들에게마저 총질을 했던 것입니다. 이 끔찍한 비극이 막을 내릴 때는 멀었을까요? 하지만 저자는 그 열쇠는 결국 아프리카 사람들이 쥐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무기와 권력을 가진 자 편에 서면 살 수도 있었으나 죽음을 선택한 후투족 여학생들을 언급합니다. 아프리카가 서구열강에 의해, 부패하고 무지한 권력자들에 의해 파탄이 났다고 해도 함부로 종말의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작은 희망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체로 넘쳐나는 르완다인들의 상상력 안에는 순교자가 더 들어설 여지도, 필요도 없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살 수도 있었지만 대신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들을 르완다인이라고 부르는 쪽을 택했던 저 용감한 후투족 여학생들의 사례에서 조금만 용기를 얻으면 안 될까?(425쪽)
책 한 권이 참 많은 메시지를 안겨줍니다. 다 읽고 난 뒤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첫댓글 호랑이가, 사자가, 모기가 무서운게 아니라 '사람'이 무섭습니다..생각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