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사랑함에
"누가 단풍나무의 붉디붉은 색을 가을단풍 중에 최고라 했나?" 아니다, 가을 단풍의 으뜸은 이외로 잡목이 우거진 곳이다. 형형색색 온갖 생김생김의 나무에 황혼이 내려앉을 때면 어찌나 눈물겹던지. 하늘이 무섭지 않은 듯 우람하게 솟아오르던 갈참나무가 계절의 바뀜에는 별 수 없이 갈색 단풍을 불어오는 바람에 우수수 떨구어낸다. 물박달나무의 왜소한 가지 사이로 생강나무 잎이 토해내는 황혼, 노오란색의 단풍 또한 곱다. 노란색, 갈색, 밤색, 또 무슨 색깔의 단풍이 있던가? 이렇듯 늦가을의 산은 울긋불긋 저마다의 색깔로 산사나이를 부른다. 가을 산을 오르노라면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깨우침을 알아들어야 한다.
일사분란하게 붉은 한 가지 색갈로 타오르는 단풍의 명산이라고 일컷는 무슨무슨 산이 그리 대단할까? '아무렇게 생긴 아내'를 못잊어하는 시인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생김이 이쁘다고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다. 산도 그러하다. 당단풍이 곱게 물든 유명짜한 산보다 잡목이 우거진 산이 더 좋다. 이런 산은 단풍이 들 때면 현란하다 못해 눈이 어지럽다. 노오란 색갈로 유혹하는가 하면 새빨간 루즈로 치장을 한 단풍이 처연하다. 응달진 곳에 가까이 가면 그저 칙칙한 갈색일 뿐인 굴참나무잎이 빚어내는 성찬은 어떠한가? 강천사 가는 길은 인파로 매워졌다. 사람 구경하는지 단풍을 구경하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내장산과 이웃하고 있어 새빨간 단풍을 기대했지만 이외였다.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수북했던 노오란 은행잎도 풍성했지만 참나무종인 굴참, 갈참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갈색의 향연을 보는 것 또한 유쾌했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러하지 않은가? 서로의 생김생김이 다르다고 돌아앉을 게 아니라 어우러져 살아야 하느님 보시기에 흐뭇해 하시지 않을까? 그렇다, 저마다의 색갈이 한데 모여 손을 흔들 때서야 천국의 꽃이 피어난다. 부서짐, 빛남, 황홀함 이 모든 게 주님께서 주신 것을.
깊은 계곡에 간 적이 있던가? 울창한 숲일 수록 햇살이 닿는 것마다 찬란하게 빛난다. 깊은 계곡에 숨어 있던 이끼 낀 바위와 고풍스러운 소나무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햇살은 부딪치고 꺾어졌을까? 부딪치고 부서질수록 햇살은 무수히 상처를 받겠지만, 오히려 더욱 오묘하고 부드러운 빛깔과 색깔로 살아난다.
산꼭대기에서 거침없이 내려쬐는 햇빛을 받아봤는가? 따갑게 내려쬐는 햇살에서는 위안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자신은 늘 거침 없었고 꺽어져 본 적이 없었음으로. 그러나 꺽어지고 부딪치다가 마침내 깊숙이 숨어 있는 계곡에서 맛보는 햇살은 우선 부드럽기 짝이 없다. 우리 자신 또한 사노라고 세상에서 무수히 받았던 상처와 질시,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에서 느끼는 아픔을 알지 않은가? 그래서 부딪치고 부서지며 다가온 햇살에서 위로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기에 우리는 편안한 위안에 잠길 수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모욕과 좌절, 안으로 곰삭는 상처에서 고결한 그대의 진주가 탄생한다. '그대의 탄식이 바로, 주님의 은총이 시작하는 자리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일어서라, 그대!.....'
하산하는 산행 친구들 얼굴이 하나 같이 붉게 물들었다. 누구는 홍단을 했다하고 누구는 단풍약을 했다더라. 혹시나 술이라도 자셨는가 음주측정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
아무튼 유쾌한 하루였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