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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까지’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는 우생학을 근거로 자행되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정치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그것이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기도 하다. 우생학(優生學)이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을 일컫는데, 이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합리적인 근거도 갖추지 않은 나치의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차별이 우생학에 근거해서 대학살로 이어졌고,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한센인들을 격리하고 수술을 통해 생식능력을 강제로 거세한 사례들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그러한 경향이 ‘개혁 우생학’이나 ‘신유전학’ 등으로 포장되어, 과학적이라는 외피를 쓰고 지금도 만연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거의 모든 임산부들이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받는 ‘산전 검사’ 역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이나 차이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산전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되면 쉽게 낙태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현실에서 존재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공저자 중에서 톰 세익스피어는 ‘연골무형성증으로 인해 왜소증을 지닌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그러한 저자의 풍부한 자기 경험을 근거로 한 주장들이 제시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학으로 포장된 유전자 연구는 그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경제적 능력을 지닌 소수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 공학을 통해서 얻어진 기술은 특정 집단의 특허로 이어지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러한 집단이 정치인들로부터 강력한 후원을 받으면서, 막대한 연구비를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한동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분명 우생학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지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현실에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선 ‘우생학의 등장’과 그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나치의 인종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나치의 대표적인 만행으로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초점을 맞추어졌지만, 유대인 이외 일정한 거주가 없이 떠돌아다니던 집시와 장애인들 역시 학살과 시설 수용 등의 피해를 함께 겪었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평범한 의사들이 동원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우생학’의 관점에서 장애를 ‘척결’의 대상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의 생식 능력을 거세하는 단종 수술이 당연시되었는데, 그러한 현상은 비단 나치 치하에서만 발생했던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내세웠던 ‘악의 평범성’이 우생학을 신봉하고 있던 의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그러한 비인간적인 현상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유전학의 발달로 인해서 태아 단계에서부터 장애를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더욱이 유전학에 대한 대중들의 맹신은 언론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여기에 정치권력이 결탁하면서 ‘유전학 만능주의’라는 그릇된 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유전자 분석 역시 불확실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기에, 그것을 맹신하는 태도는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술적 성과들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유전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장애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양산하고, 그로 인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장애인들의 삶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장할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생학에 근거한 현재의 유전학의 문제를 지적한 이 책을 ‘장애학 책이 아니라 존재학 책이며, 우생세(우생학의 세상)와 능력주의를 넘어서기를 원하는 이들의 필독서’라고 평가한 추천사의 구절에 동의한다. 나아가 유전학의 발달로 인해서 ‘혹시 미래의 지구상에 완전한 존재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추천사의 구절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삶은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보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즐기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조금은 미흡하고 부족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을 배제와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이들이라는 것을 깊이 인지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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