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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잠시 여유가 있을 때 낯선 곳을 찾아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여행 중에 만난 사람과 풍경들은 특별한 경험으로 남게 되고, 그 기억은 오랫동안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된다. 이제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여러 해 동안 떠나기 힘들었던 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여행은 떠나는 이의 계획과 그에 맞는 여러 조건들이 잘 맞으면 즐거운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물론 때로는 여행 중에 계획을 바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이라는 단어만 듣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에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상상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고, 여행은 생활에 여유로운 양반이나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여행에서 마주쳤던 풍경이나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 달리 낯선 곳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은 여행의 설레임이 아닌 두려운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5명의 사례는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배를 타고 가다 험한 기후 조건에 정처없이 떠돌다 돌아온 사람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배의 규모가 커지고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좋은 시설들을 갖추고 있지만, 과거에는 바람을 활용하는 돛과 배를 저을 수 있는 노 등에만 의지해야 했다. 더욱이 배의 규모도 그리 크게 않아 거센 파도에도 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을 때 배를 타고 출항을 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험한 파도를 만나 표류하다가 낯선 외국에 도착해서 지내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고향에 돌아오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비록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들의 상황은 기적 혹은 천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배에 올랐고, 험한 기상 조건에 표류를 하다가 중국에 도착하여 우여곡절 끝에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최부의 이야기가 처음에 소개되고 있다. 최부는 북경에 도착해서 청나라 조정의 도움으로 귀환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을 기록하여 <표해록>이라는 책으로 남겼던 것이다. 그의 기행문은 중국을 기행한 것들 가운데 ‘3대 기행문’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두 번째는 제주에서 진상하는 말을 호송하는 책임을 맡았던 김대황의 일행이 오늘날 베트남에 해당하는 안남까지 표류했다가 귀환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표류의 과정은 매우 힘들고 험난했지만, 많은 이들의 배려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그들의 상황은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어선을 탔다가 최악의 기상 조건으로 인해 일본 열도의 최북단에 있는 홋카이도까지 표류하여 그곳에 살았던 아이누족들을 만났던 이지항의 사례가 세 번째로 소개되고 있다. 다음으로 제주에서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배를 탔던 장한철이 남쪽의 유구(오키나와)를 거쳐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귀환을 했던 이야기가 이어지며, 마지막엔 홍어잡이 배를 탔다가 표류하여 여송국(필리핀)까지 갔다가 귀환한 문순득의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문순득의 사연은 당시 우이도에 유배를 가 있던 정약전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배를 타고 험한 기상 조건에 표류를 하다가 살아 돌아온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기에, 이러한 경험과 기록들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하겠다.
이제는 SNS가 널리 보급되면서, 많은 이들이 일상이나 여행 중의 기록을 사진과 글로 남기는 사례가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지인들의 SNS를 접속하여 근래의 근황을 확인하면서, 그들이 남긴 사진과 글을 통해서 여행의 과정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과거에는 몇몇 사람들만이 남기던 여행 기록이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이제는 보편화되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조선시대 뜻하지 않게 표류하여 낯선 이국을 떠돌던 이들의 기록에는 절박함과 신기함의 느낌들이 어우러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과 생각들을 기록으로 넘겼기에 오늘날에도 접할 수 있고, 그들의 여행기를 통해서 낯선 이국의 문화를 엿볼 수도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수밖에 없었던 다섯 사람의 표류 기록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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