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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사상 가운데 유가(儒家)의 논리가 현실 정치를 관통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도가(道家)는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도가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을 아울러 일컫는 개념인데,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두 사상이 전혀 이질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논하기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공자가 노자를 찾아 가르침을 얻었다는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는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노자의 사상이 유가의 논리를 초월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도(道)’와 ‘덕(德)’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도’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가에서도 ‘도’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 둘은 통하는 듯하면서도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노자의 언행을 기록한 <도덕경>은 노자 사상의 진수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논하기보다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다분히 관념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추상적인 사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도덕경>을 이해하는 첩경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중국의 춘추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로 여겨지는데, 군웅이 할거하며 치열하게 세력을 다투던 현실에서 인위적인 행위를 배척하던 ‘무위(無爲)’의 사상을 내세웠다. ‘인’을 강조했던 공자의 사상이 외면을 받았듯, 노자의 사상이 당시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춘추시대의 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법가의 뿌리로 노자를 거론하기도 한다.
<도덕경>은 전체적으로 대단히 함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어, 실상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주석을 참고해야만 한다. 이 책의 특징은 원문과 번역을 제시하고, 간략한 원문의 ‘한자 풀이’와 저자의 해설로 구성된 ‘깊이 보기’를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원문 번역의 경우, 저자의 관점이 깊이 개입되어 있어 때로는 해석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예컨대 <도덕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 중의 하나가 8장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 구절을 ‘최고의 선, 가장 높은 덕성은 마치 물과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상선(上善)’을 ‘가장 높은 덕성’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설명하는 것은 자칫 그 의미를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밖에도 축약적인 표현에 대해서 다양한 수식어를 통해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도덕경>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해석상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장점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풀어서 번역과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주지하듯이 <도덕경>의 핵심 사상은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때의 ‘무위’란 정치나 실생활에서 인위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데, 예컨대 유가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의, 도덕’ 등도 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사마천은 사기에서 노자가 예의로 무장한 공자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서술했던 것이다. 본성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일러 ‘자연’이라고 한다면, ‘무위자연’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인위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그저 자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갈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 하겠다. 아마도 그러한 결과가 바로 ‘선’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물처럼 늘 아래를 향하는 태도가 바로 ‘상선(上善)’이라 칭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에 동학들과 더불어 힘들게 <도덕경>을 강독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당시에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이라는 <도덕경> 첫 구절의 읽고, ‘도(道)’와 ‘명(名)’의 개념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었다. 어쩌면 반어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 구절을 나름대로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도덕경>을 이해하는 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단 한가지의 ‘방법(道)’이나 ‘명분(名)’만을 고집하지 말고, 항상 상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때로는 번역자와는 달리 이해하는 구절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의 번역과 해석을 통해서 다시금 <도덕경>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 음미하는 기회가 되었음을 밝힌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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