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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을읽고 또 읽어도 통 제머리로는 이해가 않되는군요..
요즘세상 윤리마저 조각이난 판-충효사상이 뭣인지 모르고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켜야 아름다운 세상이 되려는지--
이웃 독고노인이 홀로 세상을 비판하다 자결을하고 노인복지를 외치던 정치꾼들.
그들의 복지정책은 허울좋은 개살구 아닙니까?
이런나라가 되면 않되지 않되지 생각하면 뭘합니까?
모두들 걱정뿐이지-도무지 나같은 돌대가리로는 답이 라고 내세울것이 없군요.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이 썩어가고있는데 잘사는 나라라고 말할수있을까요?
옛성인들의 발뒷꿈치에 때만도 못한것들--
옛 성인들의 말씀 정말 틈잡을곳이 없군요---
유교의 근본이념(근본정신) 1 - 우주관
유교의 사상가들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관찰하면서 이 세계가 어떠한 원리에 의해 규정되는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왔다. 이는 특히 ‘존재는 어떻게 생성되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사물은 어떻게 운동하며 그 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관계가 있는데, 이들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으며, 그것을 도덕적 관점에서 규정하고자 했다.
자연 속에는 온갖 변화가 다 숨어 있지만 크게 보면 자연의 운동은 끊임없는 탄생의 과정이며, 더욱이 자연은 누구를 속이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욕심을 내는 법도 없다. 정직하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변화를 보여주며 아낌없이 주는 것이 자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지극히 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지극히 성실하며 지극히 도덕적인 존재이다. 경험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거기에는 항상 도덕성이 숨어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자연 현상 너머에 그 현상들을 초월해서 항상 도덕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구체적인 자연 현상은 그 본질을 반영하게 되어 있으므로 자연의 도덕성이야말로 모든 현상을 가능케 하는 근거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크게 보면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며, 꼭 한 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연과 인간의 구조는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가 거대한 도덕적 원리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보았으며,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도덕성을 추상화한 대표적 개념이 태극(太極),이다. 태극이라는 말은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태극으로부터 양의(兩儀:음양), 양의로부터 사상(四象), 사상으로부터 팔괘(八卦)라는 생성론적 도식을 제시하였다.
주(周)나라 초기 이래의 경천사상(敬天思想) 중에서는 상제(上帝)를 초감각적인 대상으로서 신비롭게 보는 경향과 함께 종교적 신념으로서의 천명설(天命說)이나 천도관(天道觀)의 전개가 나타났는데, 그 후의 관심은 조화의 도(道)로 향하였다. 형이상학적 본체로서의 도를 개념적으로 처음 규정한 것이 『주역』의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形而下者)를 기(器)라 한다”고 한 것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도는 실천적으로는 만물화생(萬物化生)의 요인으로 간주되는 천지신도(天之神道)·천지지도(天地之道)·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도 등의 총칭으로, 그 중에서도 주로 천지의 도를 의미하는 개념이었다. 그것은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에 의해 만물을 화생(化生)하지만 그 자체는 음양불측(陰陽不測)의 신적 존재로서 태극이라는 독립불변의 실체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 후 이 태극은 『여람(呂覽)』에서 말하는 『춘추(春秋)』에서 말하는 원(元), 『노자(老子)』에서 말하는 현(玄)과 함께 우주 현상의 근원으로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태극에 관해 오늘날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에 이르러서이다.
송대에는 리기(理氣)·심성(心性)에 대한 논의가 중시되었는데 리기는 곧 실재로서 본체에 해당된다. 그들은 노장(老莊)과 『주역』『계사전』의 사상을 취하여 유가 철학의 본체 관념을 수립하였다. 주돈이(周敦)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은 태극·음양·오행(五行)·만물의 순서로 본체우주론을 세웠고, 소옹(邵雍)의 『태극경세서(太極經世書)』는 태극·음양·사상·팔괘의 순서로 태극일기(太極一氣)의 운화(運化)를 해명하였으며, 장재(張載)의 태극론(太極論)』은 태허(太虛)·음양의 기(氣)로써 유무혼일지상(有無混一之常)을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정호(程顥)·정이(程)도 역시 ‘천지인온만물화순(天地絪縕萬物化醇)’의 본체론을 세웠는데, 특히 정이는 음양기화(陰陽氣化)의 근거로서 리(理)의 실재를 확립하여 리기설(理氣說)을 창설하였으며 그 다음 주희(朱熹)에 이르러 대성되었다. 주희는 리와 기로써 이원론을 수립하였고 나아가서 그것을 성(性)과 정(情)에 배당함으로써 인성론(人性論)에까지 일관시켰다.
주희의 리기이원론은 그 이후 명(明)의 나흠순(羅欽順)의 리기일물설(理氣一物說)을 거쳐 왕수인(王守仁)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이 되었고, 청대(淸代)에 이르면 실재로서의 리를 부정하고 기를 중시한 대진(戴震)의 설로 결정(結晶)된다. 그리고 주자학(朱子學)은 우리 나라와 일본에 전파되어 각기 특색 있는 발달을 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성리학(性理學)이 유입된 이후 이언적(李彦迪)이 태극론(太極論)을 통해 태극을 리(理)로 이해하였으며, 서경덕(徐敬德)은 장재와 같이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전개하였으나 태허(太虛)가 아니라 허(虛)를 기(氣)로 봄으로써 독특한 일면을 보였다. 이황(李滉)은 주희의 설을 계승하면서도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창안하여 리(理)의 능동성을 주장하였고, 이에 비해 이이(李珥)는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리의 능동성을 부정하여 리기를 각각 발(發)하게 하는 원인과 발하는 것으로 구분하면서도 리기의 불리성(不離性)을 강조하여 리기지묘(理氣之妙)를 논하였다.
유교의 우주관에서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는다.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그 내용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 두 세계는 언제나 연관을 맺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유교의 근본이념(근본정신) 2 - 인간관
유교의 특징은 인간중심주의에 있으며, 다른 어느 종교나 사상보다도 인간을 중시한다. 이 점은 기독교의 신(神)중심적 사고, 노장철학이나 도교·불교 등의 자연중심적 내지는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사고와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자연 자체나 인간이 죽은 후의 내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으며, 오로지 인간이란 무엇이고 그 인간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완성시켜 갈 수 있으며, 또 현실 속에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반영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실천 위주의 인간관에 대한 문제를 중시하고 있을 뿐이다.
공자(孔子)는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라고 했고, 또 “삶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답하였다. 이 점은 공자의 관심이 귀신이 아닌 인간, 죽음이 아닌 삶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후에 모든 기반을 인간 본성의 선함에 두고 그 확충을 통한 실천을 주장한 맹자(孟子)와 비록 인간을 악한 존재로 보았지만 인간의 의지 작용을 통해 악한 요소를 극복할 것을 주장한 순자(荀子)를 통해 발전하였고, 특히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에서는 태극(太極)으로부터 모든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면서도, 만물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고를 리(理)와 기(氣)의 개념을 빌어 철학화하였다.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유교에서는 우선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요소를 도덕적 보편성에서 찾으며, 그 도덕성을 어떻게 자각하고 실현하느냐에 따라 인간다움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본다. 공자는 인간을 소인(小人)·군자(君子)·인인(仁人) 성인(聖人)의 4단계로 나누었다. 이 점은 “군자면서 인(仁)하지 못한 사람은 있지만 소인이면서 인한 사람은 없다”라고 했고, “만약 백성에게 널리 베풀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자공(子貢)이 물었을 때 “어찌 인에만 머물겠는가. 반드시 성(聖)일 것이다”라고 한 데서 잘 나타난다.
그 각각의 단계를 나누어 살피면 소인은 이(利)에 밝고, 주체성을 상실한 채 남과 같아질 수는 있어도 주체성을 제대로 살리면서 남과 어울리진 못하며, 견주기만 하되 두루하지 못하고,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존재이고, 군자는 이와 반대로 의(義)에 밝고, 주체성을 살리면서 남과 어울릴 수는 있어도 주체성마저 버리면서 남과 같아지지는 않으며, 두루하되 견주지 않고, 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존재이다.
인인(仁人)은 그만큼 어려운 단계로서 능히 남을 좋아하고 능히 남을 미워할 수도 있으며, 반드시 용기를 지니고, 살기 위해 인(仁)을 해치지 않고 몸을 버려서라도 인을 이루며,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이르고자 하면 남을 이르게 해 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위의 존재가 성(聖)이다. 인의 궁극이 성인데 인인이 아직 인위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경지라면, 성은 『맹자(孟子)』에서 요순을 본성대로 한 인물로 평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단계로서, 공자 자신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따라가도 법도에서 어그러지지 않는다”라고 한 경지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에서 출발하여, 모든 인간이 외모나 감각 기관에 공통점이 있듯이 마음에도 공통점이 있으며, 이것이 리(理)와 의(義)로서 천부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천부적 공통점은 구체적으로는 인(仁)·의(義)·예(禮)·지(智)로 나갈 수 있는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이며,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측은지심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기르면 개인의 완성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이상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맹자는 인간의 감각적 욕구도 인정하지만 감각적 욕구는 인간 내면의 노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환경과 관련된 한계성이 있기 때문에 본성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맹자는 감각적 본성이 아닌 도덕적 본성을 어떻게 제대로 구현할 것인가를 중시했으며, 그 방법들로 사단(四端)을 확충할 것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것, 말을 말 것, 욕심을 줄일 것 등을 강조한다. 사실 이러한 방법은 모두 인간의 내면에 그 동기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만물이 모두 내게 갖추어져 있다”고 했고,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게 되고 본성을 알게 되면 하늘을 알게 된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에서 출발한 맹자와 달리 순자는 인간의 천부적 본성을 자연성으로 보아서, 그 욕구대로 따라가면 다툼이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인간의 본성은 악(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욕구는 사물에 대해 구체적인 좋고 나쁨 등의 감정으로 드러나고, 이때 인간은 선택을 하게 되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오히려 욕구와는 반대로 행동하기도 하는데 그 욕구를 거스르기도 하는 작용을 의지로 보았다.
그러므로 공자나 맹자가 도덕의 근원을 하늘에서 찾았던 것과 달리 하늘을 기계적인 자연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면서, 인간의 의지는 하늘과 관계없이 오직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고, 그러한 의지적인 작용을 구체화하여 틀에 맞춘 것이 예(禮)이다. 예란 순자에게는 인간 내면의 본래성의 구현이 아니고 요청된 행위 규범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순자는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사회성이란 측면으로는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고 욕구의 대상인 재화는 한정되어 욕구대로 따르면 싸우고 빼앗는 혼란만 있을 뿐이므로 이를 공리적 차원에서 조절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자연을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개개의 인간보다 힘이나 능력에서 뛰어난 자연을 단결된 힘으로 극복해 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맹자와 순자가 서로 상반된 인간관에서 출발하였음에도 궁극적인 도달을 성인에 두었고, 또 인간 누구나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공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대 초기의 동중서(董仲舒)는 맹자와 순자의 이론을 절충하여 인간의 본성에는 선한 단서와 악의 요인이 함께 있으며,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심리적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후천적인 수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당시 팽배했던 노장적 분위기 속에서, 맹자 이후 하늘과 인간의 상관성을 강조한 여러 학파의 입장을 더 발전시켜 사지와 사계절, 오장(五臟)과 오행(五行) 등과 같이 연관 관계를 기계적으로 대입하여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을 주장하였다. 이밖에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이면서도 악이 섞여 있다고 하면서, 선과 악의 갈라짐이 기(氣)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기를 악의 근원으로 본 양웅(揚雄)과, 본성은 흔들림 없는 고요한 상태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情)이라고 설명한 유향(劉向)도 있고, 순자의 성악설은 보통 사람 이하에 해당하고 양웅의 성선악혼설(性善惡混說)은 보통 사람에 해당하며 맹자의 성선설은 보통 이상의 사람을 말한 것이라고 하여 성삼품설(性三品說)을 주장한 왕충(王充)도 있다.
특히 왕충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기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설명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철저히 현실의 관점에 서서 악한 사람도 부유하고 귀해질 수 있으며 착한 사람도 가난하고 천할 수 있다는 관점에 섬으로써, 종래 하늘이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준다는 전통적인 천인관계(天人關係)를 부정하였다.
당대(唐代)에는 번창한 불교의 영향 속에서 한유(韓愈)와 이고(李)가 다시 도덕적 인간의 틀을 제시함으로써 송대 성리학에서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유교적 인간관이 나올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특히 이고는 인간의 본성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 받은 성 그대로면 성인이라고 하였고, 성은 고요함을 주로 삼고 성에서 정이 나온다고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을 이상적 인간과 현실적 인간으로 구분하며, 궁극적으로는 현실적 인간이 그 한계성을 극복하고 이상적 인간에 합치되기를 바란다. 이상적 인간이란 본연지성(本然之性)을 체득한 인간이며, 한계성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악의 근원인 기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이다. 이때 본연지성은 리(理)이며 인간 존재의 근거인 동시에 인간의 바른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이고 구체적으로는 인·의·예·지의 4덕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현실적 인간은 지혜·덕성·재질 등이 달라지는 모든 차별상의 원인인 기에 의해 얽매어져 있어 완전한 제 모습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질지성의 존재이다. 이때 기질에 근거하여 정(情)과 욕(欲)이 생기며 이것이 구체적인 악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인간의 욕심을 제거한다”는 생각이 나오게 되며, 완전한 인간의 달성은 기의 변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고, 이를 위한 수양방법이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대표되는 궁리(窮理)와 내적 성찰이 중심이 되는 거경(居敬)으로 집약된다.
위에서 말한 이상적 인간과 현실적 인간의 구분 가운데 이상적 인간 곧 본연지성으로서의 리를 중시하면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엄격히 가르려는 흐름이 리와 기를 이원으로 보려는 흐름으로 발전하였고, 또 이와 달리 현실에서 존재 가능한 인간은 기질지성의 인간이라는 인식 아래 기질지성 속에서 본연지성을 찾으려는 흐름이 리와 기를 일원으로 보려는 흐름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조선성리학에서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로 대표되는 철학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황이 기대승(奇大升)과 벌였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중심으로 한 논변이나, 이이가 성혼(成渾)과 더불어 벌였던 사단칠정·인심도심(人心道心)에 관한 논변이 모두 이러한 관점들의 충돌에서 비롯된 학술적인 규명 과정이었다. 다음으로 성리학과 다른 리기철학의 또 하나 큰 흐름은 양명학(陽明學)이다.
양명학에서는 성리학이 인간을 성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한 것과 달리 마음「心」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곧 리(理)이며 마음 밖에 다른 리가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때의 리는 도덕적 조리를 의미하며 따라서 생동하는 도덕심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하였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타고난 양지(良知)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 양지를 잘 기르면 완전한 인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후대에 기철학자인 대진(戴震)은 현실에 존재하는 기질지성만을 인정하면서 성(性)을 인간의 구체적인 혈기심지(血氣心知)로 보았다. 이때 혈기의 기능은 정욕이며 심지의 기능은 지(知)인데 개인의 사사로운 욕구 충족을 위한 정욕은 부정하였지만 남과 나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는 긍정하였다.후대에 기철학자인 대진(戴震)은 현실에 존재하는 기질지성만을 인정하면서 성(性)을 인간의 구체적인 혈기심지(血氣心知)로 보았다. 이때 혈기의 기능은 정욕이며 심지의 기능은 지(知)인데 개인의 사사로운 욕구 충족을 위한 정욕은 부정하였지만 남과 나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는 긍정하였다.
이상에서 살핀 유교의 인간관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관심의 집중이다. 특히 인간의 현실 행위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과 연관하여 규명해 보려는 노력이 많다.
둘째는 인간에 대한 신뢰이다. 유교적 인간관의 대부분이 인간의 선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을 말한 학자들도 그 극복의 가능성을 인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는 유교가 인간 중심적 사고이기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귀결이다.
셋째는 도덕주의 또는 수양주의를 들 수 있다. 이는 인간이나 우주의 개념 규정에서부터 인식론·수양론 전반에 걸쳐 강하게 드러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유교의 근본이념(근본정신) 3 - 윤리관
유교는 인간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윤리와 도덕 규범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나에게서 남에게 미쳐 나간다는 기본적인 사유에 바탕하고 있다. 윤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인간이란 서로 어울려 살게 마련이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저절로 습관 풍속이 생겨나게 되며 이런 습관 풍속을 바탕으로 윤리도덕이 정립된다. 윤리란 말하자면 한 집단, 한 사회국가를 지탱하는 질서이며, 질서가 없으면 기강이 서지 못하게 되고 질서 기강이 서지 못하면 그 집단 그 사회국가는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인간사회에서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이 윤리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있다. 보편성은 인류의 도덕적 원리로서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부자(父子)·남녀(男女)·장유(長幼) 등 인간 생활에서 기본적인 질서가 되는 윤리를 가리킨다. 특수성은 시대·지역·사회제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회발달사에서 남녀관계라든지 신분관계라든지 그 시대와 사회제도에 따라 윤리도덕은 신축성 있게 변화되어 왔다. 이렇게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윤리는 항상 인류문화의 발달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이런 보편성을 상도(常道) 또는 경(經)이라 하고, 특수성은 권도(權道)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권(權)이란 저울질을 말하는 것으로 때에 따라 저울추가 왔다갔다 하면서 적절하게 무게를 저울질하는 것을 뜻한다. 어느 종교 어떤 사회이든간에 그 윤리는 보편성이 있는 대신 특수성을 띠고 있으며, 유교 윤리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사회의 생활 속에서 움튼 유교는 윤리 도덕 위에 정립된 종교요 철학이다.
유교에서는 윤리도덕의 원리로서, 윤리 도덕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또는 행동지침으로서 예(禮)를 중시하는데, 이 예야말로 크게는 우주의 질서인 동시에 작게는 인간사회에서 요구되는 낱낱의 행동규범인 것이다. 예는 유교의 윤리사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의례(儀禮)도 이에 포함된다. 유교윤리는 자기 수양에서 비롯해서 남을 가르쳐서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내 몸을 닦는 것을 먼저하고 그런 뒤에 남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은 유교사상의 기본이 된다. 비단 윤리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에서 이런 자세가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大學)』 첫장에 잘 나타나 있다. 『대학』 첫장은 팔조목(八條目)을 설명한 대목인데 팔조목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여덟 가지이다.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 다섯 가지는 수기(修己)에 속하는 일이고, 제가·치국·평천하는 안인(安人) 또는 치인(治人)에 속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자기 자신을 수양해서 인격적으로 완성된 이후에 남을 가르치는 과정을 차근차근 순서를 따져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인격의 완성이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 정도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 몸을 바로잡고서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는 윤리는 누구나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수양은 지식을 먼저 확실하게 다져놓은 뒤에야 가능하다. 지식의 확실성, 그것이 자기 수양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자로(子路)가 군자란 어떤 사람을 일컫는 것이냐고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는 먼저 “자기 수양을 해서 경건해야 한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어 자로가 “그렇게만 하면 되느냐고 묻자, ”자기 수양을 하고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남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은 도덕규범·윤리감각·문화의식을 북돋아 줌으로써 정신적으로 안락하게 해 주고 또 삶의 안락을 누리게 해준다는 뜻이다. 요컨대 자기가 바로 서야 남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이며, 자기가 바로 서 있으면 저절로 남이 본받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면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성(誠)과 경(敬)이다. 성은 성실이고 경은 경건·공경이다. 사람은 성실해야 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중용(中庸)』에는 ”성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한 구절이 있다. 성이란 진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성실이다. 성실을 말하자면 우주의 운행으로서 말할 수밖에 없다. 하늘과 땅의 순환 이치는 자로 잰 듯이 정확하며, 성실 바로 그것이다. 우주의 이러한 성실성에 힘입어 인간은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인간은 소우주이므로 우주의 성실을 본받아야 한다. 성실에 의해서만 인간세계도 질서가 형성되고 원만한 삶이 영위될 수 있다. 인간도 성실에 의해 태어나고 살아 움직이며 역사도 성실에 의해 이루어지고 발전해 나간다. 이 성실은 하늘의 도리이지만 인간도 그것을 본받아야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다.
한편 경은 원칙적으로는 정제(整齊)·엄숙(嚴肅)·순수(純粹)·수렴(收斂)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마음을 엄숙하게 가다듬어야 하며, 그렇게 해서 착한 마음을 한결같고 확고하게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철학적으로 경은 ‘마음을 주재하는 것이고 만사의 근본이라고’ 설명된다. 현대적 해석으로는 마음가짐 몸가짐을 가다듬어 모든 행위에 경건성을 지니는 일이 된다.
따라서 성(誠)은 이런 경건성을 한결같게 하는 덕목이 될 것이다. 성실성과 경건성은 서로 안팎이 되기도 하고 서로 밀고 당겨 보완하는 사이가 되기도 해서 개인윤리의 바탕이 된다. 어떤 일이든간에 성실성이 없이는 이루어내기 어렵고, 어느 경우에도 사람은 경건성이 있어야 인격과 품위가 유지된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할 때 자연히 사람과 사람 상호간의 올바른 관계 즉 인륜성이 거론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오륜(五倫)이다.
흔히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삼강은 그 출처가 유교 경전도 아니며, 더구나 공자(孔子)나 맹자(孟子)의 사상도 아니다. 그러나 오륜은 오상(五常)·오품(五品)·오전(五典)으로 『서경(書經)』에 이미 언급되어 있고 『맹자(孟子)』에도 나와 있다. 오륜이란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로서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이 그것이다.
부자유친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도리에 대한 규정으로서 아버지와 자식 사이는 가깝고 사랑으로 맺어져 있으니 그에 합당한 도리를 서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군신유의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국가와 국민의 개념으로 바뀌어 이해되어야 한다.
부부유별은 남편과 아내 사이는 분별이 있다는 말이다. 즉 남자와 여자 사이는 신체적으로 분별이 있고 역할에도 각각 분수가 있으므로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듯이 남편은 남편다워야 하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다는 말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각각 분별이 있고 서로 순서 질서가 있는 것이 인간사회의 윤리이므로,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젊은이의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젊은이는 나이 많은 사람의 경험·경력·지식을 존중해서 선배로 받들어 모시는 겸양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늙은이는 이 사회, 이 나라를 위해 먼저 일한 분이고 역사를 이룩하였으며 전통을 이어 준 분이다. 따라서 늙은이를 받드는 것은 바로 전통을 받드는 일이고 역사와 민족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늙은이를 존중하는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은 우리 민족의 밝은 내일을 기약해 주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늙은이와 젊은이, 어른과 아이가 각기 분수대로 차례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그 사회국가에 기강이 서고 질서가 깍듯하다는 뜻이다.
붕우유신은 친구끼리 믿음 곧 신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믿음, 신용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감에 반드시 지니지 않으면 안 되는 덕목이다. 유교 윤리관의 또다른 대표적 예는 충효(忠孝)이다. 충효는 인(仁)을 실천하는 첫걸음이고 그것이 바로 사랑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충은 중심(中心) 곧 마음을 뜻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순수한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충은 성(誠)이라고도 한다. 충실이라는 것이 적절한 표현으로서 마음의 충실, 마음의 성실 그것을 사회에 확충하면 봉사정신이 되고 국가에 확충하면 충성이 된다. 충에 대한 주석에 진기지심(盡己之心: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충이란 먼저 자기 마음을 충실히 하고 성실히 한 뒤에 그 마음을 사회국가에 확충하는 것이며, 이렇게 될 때 진정한 국가윤리로 정립된다. 따라서 무조건 상관에 봉사한다든가 대의명분이 서지 않는 일에 분별없이 빌붙는 것은 참된 충이 아니다. 충은 자기 충실에서 비롯되고 대의명분을 지닐 때에만 국가윤리로서 빛을 발한다.
한편 효는 가정윤리이다. 효라는 글자는 자식이 늙은 어버이를 업고 있는 형용이다. 좁은 뜻으로는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효의 윤리는 더욱 확충이 되어, 가까이는 부모에 대해서지만 더 넓혀서는 조부모·증조부모 등 조상으로 확대되어 간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각을 달성하는 일로 규정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조상을 갖고 있고 뿌리를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이 오늘날 존재하기 위해서는 위로 수많은 조상이 있어야 한다.
효는 바로 이 수많은 조상에 대한 윤리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수많은 조상의 은혜에 의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 조상에 대하 감사의 염(念)이 없을 수 없다. 제사(祭祀)가 바로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추모의 의식이다. 유교에서 제사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는 것과 같이 한다’는 정신으로 올려지는 의식이다. 귀신이 있어 제사상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서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계시는 듯’ 절을 드리고, ‘살아 계시는 듯’ 음식을 올리며 추모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사는 효 윤리의 확충이다. 인간이란 역사적 존재이고 효는 그에 대한 자각인 증거로 사람은 젊어서 어버이에게 효도하지만 늙어서는 자식에게 효도를 받게 된다. 이같이 효는 주고받는 윤리인 것이다.
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물질적으로 받드는 효도『養體』와 뜻을 받드는 효도『養志』가 그것이다. 물질적으로 받드는 효도는 부모를 음식으로만 받드는 것으로, 일찍이 공자는 ”지금 효도라는 것을 봉양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개나 말도 음식을 주어 기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구별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양지(養志)는 부모를 정신적으로 안락하게 받드는 효도를 말한다. 부모의 뜻을 잘 받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참된 효도인 것이다. 양구체(養口體)가 효도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양지가 한층 높은 효도라는 뜻이다.
윤리에서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면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이다. 충은 서(恕)와 함께 쓰여 충서(忠恕)라고 할 때도 있다. 여기서 충은 내 마음 그것이고 서(恕)는 여심(如心)으로 내 마음과 같이 한다는 뜻이다. 서는 나를 미루어서 남에게 미친다『推己及人』는 윤리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易地思之』 자세가 필요하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평생토록 지켜 행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을 물었을 때 공자는 ”바로 서(恕)이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 이것이 서의 요점이다. 그래서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내가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게 한다’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나오는 것이다.
유교 윤리관의 특징은 쌍무 호혜성의 논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인륜성은 자녀의 효성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자녀의 부모에 대한 효성과 그 부모의 자녀에 대한 자애가 합해지는 상황에서 비로소 부자유친의 친(親)이라는 인륜성이 구현되는 것이다. 어느 일방으로만 말해진다면 삼강(三綱)이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경우에서처럼 강(綱)이나 계(戒)로 이야기되지 륜(倫)으로는 지칭되지 않는다.
유교의 근본이념(근본정신) 4 - 정치관
인간의 삶이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듯이 정치적 관계 또한 잠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치 현상은 항상 복종과 통일을 가능케 하는 권력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권력의 획득·유지를 둘러싼 항쟁 및 권력을 행사하는 활동, 또는 어떤 힘에 의하여 사람들의 의사나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것 등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 비록 그러한 힘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유교에서는 그것을 정치 해석의 중심으로 놓지 않았다.
즉 공자(孔子)의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는 말로 대표되듯이, 인민들을 교도해 가는 정의(正義)의 구현에 그 진의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위정론(爲政論)에서는 언제나 치자(治者)의 인격과 덕성이 문제되었으며, 사람들을 다스리는 통치 행위에 앞서 치자 자신의 품덕과 지성을 함양하는 내면적 과제가 먼저 강조되고 있었다.
유교에서 이상적인 시대로 들고 있는 요순시대(堯舜時代)에는 우(禹) 이후와 같은 세습군주체제의 형태가 아니고 천하 제일의 어진 자에게 왕위를 이양한다는 덕치(德治) 구현의 이상적 선위방법(禪位方法)이 구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교사상의 정립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세속화된 왕권이 세습체제로 말미암아 비록 왕조국가의 전환기라 하더라도 그러한 선위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 같은 왕조체제의 현실성과 성왕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기본 논리는, 요순의 정신을 말하되 그 실천의 모델은 바로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에 두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유교경전에서뿐만 아니라 유교정치의 역사 속에서 부단히 추구된 정치이상 구현에의 복고주의적 입장이었고, 또 이로 말미암아 군권세습체제 속의 성군현상주의(聖君賢相主義:성인다운 임금과 어진 재상)를 표방하게 되는 것이었다.
유교의 각 경전들이 정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될 만큼 유교에서 말하는 정치의 영역은 실로 방대하다. 따라서 그 내용들을 간단히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성격들이 내재되어 있다.
첫째, 천인합일관(天人合一觀)을 전제로 한 왕권천수설(王權天授說)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유교의 최고 절대 개념은 천(天)으로 상정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 해석과 정치 원리는 천리(天理) 또는 천명(天命)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의 최상위자는 그 천인합일을 지향하는 천자(天子)라 불리었다. 유교의 천하사상(天下思想)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국가들의 정당성은 그 유일 절대의 ‘천자의 나라’에 연계하여 제후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군주가 갖는 통치의 권한은 하늘로부터 부여받는다는 이른바 왕권천수설의 정치의식이 지향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 제후국은 천자국에 대한 주종적 화응관계를 유지함은 물론, 각 군주들에게는 순천명(順天命)의 정치 전개가 의무화되어 있었다. 『서경(書經)』「주서(周書)」에서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으로부터 하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이 듣는 것으로부터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천의(天意)와 민의(民意)를 통일적인 것으로 파악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 하늘에 따르는 정치는 현실적으로 백성에 따르는 형식으로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천민일치관(天民一致觀)으로 말미암아 순천명의 정치원리를 빙자한 군주의 자의성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유교의 왕권천수 의식은 서양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입장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둘째, 유교의 정치는 군주정치를 지향하면서도 민본주의(民本主義)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치자 위주의 정치 현실에서 피치자 중심의 정치 전개로 바뀌어야 한다는 전향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그 근본이 견고해야만 나라가 편안하다”,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올리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 그러므로 온 백성에게서 지지를 받아 천자가 되고 천자의 신임을 받아 제후가 되며 제후의 신임을 받아 대부가 된다”는 등의 명제는 유교의 민본주의적 성격을 잘 드러낸 말들이다.
특히 맹자는 군주정치체제에서도 군주보다 백성을 중시하였으며 천자도 백성의 지지 기반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그 정당한 위상이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서경』의 민본정신을 단순히 구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 이상의 성격을 가지는데, 치자에 앞서 피치자가 위주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 정치사에서 기존 군주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여 민주의식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일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유교의 정치 과정에서 ‘백성은 나라의 기본’이라는 『서경』의 민본 이념이 현실적으로 확인됨으로써 애민정치·위민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강조되었다.
셋째, 유교정치의 기본 이념은 인(仁)이라고 하는 인간 보편성의 원리를 구현하는 데 있다고 본 점이다.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에서 보위(寶位)의 기본 정신이 인(仁)으로 설명된 이래, 이른바 인정(仁政)의 실현은 부단한 정치 과제로 간주되어 왔다. 공자의 덕치주의나 맹자의 왕패로(王覇論)이 모두 그 인정 구현의 기본 입장에서 출발한다.
인이라는 개념은 경전상 용례에 따라 다의성을 갖지만 『중용(中庸)』과 『맹자(孟子)』에서 사람 인(人) 자로 말하고 있듯이, 그것은 전형적인 이상형의 인간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유교의 인정은 인간 보편의 인도주의로 표방되는 것이었으며, 그 방법에서는 법보다는 덕을, 그리고 형정(刑政)보다는 예교(禮敎)를 중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절대 덕목으로 중시된 것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도와 정치인의 백성에 대한 신의의 문제였다. 결국 그 인정의 총체적 형태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서 밝혀지듯이 각각의 명(名)과 실(實)이 일치하는 조화의 세계를 실현하는 데 있다.
넷째, 유교 사회에서의 정치인은 성현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성군현상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란 정치하는 사람에 달려 있다는 『중용』의 ‘위정재인(爲政在人)’의 논리에 충실한 정치발전론의 적극적 양태이다. 정치의 발전은 인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인들의 자기 혁신, 즉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해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이다. 그 정치인의 이상적 모델이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다. 따라서 경전에서는 물론 유교정치의 실제에서 현실의 위정자들에게는 항상 치자로서의 자기 반성과 정치력 함양이 촉구된다.
즉 유교의 정치인은 단순한 통치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적 사상가로서, 또 인륜 도덕의 수범자로서 정교일치(政敎一致)의 계도자적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된다고 본다. 이로써 이른바 힘에 의한 정치의 타락상인 패권주의가 극복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교정치의 이상인 지선(至善)의 대화평세계(大和平世界)가 전개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군주의 성군화(聖君化)를 위해 경연(經筵)이라고 하는 성학 연찬의 제도적 장치를 운용하고 있었던 유교정치의 전통적 형태가 주목된다.
유교의 정치사상은 정치형태론에서 민본이나 위민의 형식으로는 가능하되 인민의 참정권이 보장되는 민주의 성격으로는 평가될 수 없는 점이라든가, 치자의 자질이 고양되지 못했을 경우 군주의 실정을 저지하는 다각적인 장치 마련에 미흡하다는 점이라든가, 지덕본재말(德本財末)의 가치관과 자연주의의 소극적 사고에 치중하여 생산적이고 인위적인 가치 지향이 미약했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인본적 도덕 원리를 정치 원리로 제시함으로써 치자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인민에의 강압정치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 현실에 대한 반성과 비판적 견해를 수렴하게 하여 정치문화의 발전을 꾀하는 진취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 등은 장점으로 지적된다.
유교의 근본이념(근본정신) 5 - 교육관
유교는 그 자체가 교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런 만큼 교육은 유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공자(孔子)는 교육자로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맹자(孟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세 가지 즐거움[三樂] 가운데 하나로 말하였다. 교육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매를 가지고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을 가르친다"는 교(敎))의 의미와 "갓 태어난 아이를 살찌게 한다"는 육(育)의 의미가 합쳐진 것으로 '기른다' 혹은 '길들인다'는 의미는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서 교육이란 인간의 내부적 능력을 개발시켜 미숙한 상태를 성숙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됨의 문제를 중시하는 유교의 교육은 '각 개인의 인격 완성을 통한 이상사회의 건설'을 지향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교의 교육 목적은 군자(君子) 즉 지(知)·덕(德)·행(行)을 겸비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데 있으며, 교육 내용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중심으로 인간이 생활하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교양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윤리학[禮]·역사철학[春秋]·문학[詩]·정치학[詩·書·禮]·우주론 및 본체론[易] 등이 그 중심 내용인 동시에 교육 원리가 된다.
교육 방법은 경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공자의 '유교무류(有敎無類: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의 정신과 '교불권학불염(敎不倦學不厭: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고, 배움에 싫어하지 않는다)'의 연구 태도, 그리고 '개인의 능력에 알맞게 가르치고 절대로 엽등의 폐단을 없앤다'는 것이 그 주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교육은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서의 인간 교육을 근본 정신으로 한다. 개개인 속에 들어 있고 만인에게 공통된 가치를 확인하고 인간의 본래적 생명을 실현케 하려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조화할 수 있는 바탕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또한 개인에게서의 자주정신과 인류사회에서의 봉공의식을 주 가치로 하는 인도주의 정신의 배양, 전통문화의 계승과 새로운 창조를 주된 이념으로 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느 면으로도 발전 가능하며, 또한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룬 인간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는다. 성숙된 인간이란 지(知)·정(情)·의(意), 그리고 도덕성이 하나의 통일된 인격 속에 갖추어진 경우를 말한다.
공자는 자신에게서나 제자들의 교육에서 전인적인 성취를 위해 힘썼다. 인간의 순수정신적 가치와 이익의 추구 및 욕구의 충족으로서 현실적 가치라는 두 측면을 조화시키는 의미의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교육은 인간 교육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유교 교육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공자는 "남의 자식된 자는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회에서는 어른에게 공손하며, 부지런하고 신실하게 행동하며,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자를 더욱 가까이 하며, 이러한 것들을 행하고 남는 여가가 있으면 지식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찍이 자신의 뜻을 묻는 제자에게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노인들에게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도와주고, 사회 생활을 할 때에는 친구들에게 언제나 믿음을 주고, 아직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사랑으로 따뜻이 감싸 안아주고 싶다"고 대답하였는데, 이는 인간 삶의 가치를 인간다움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다움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 교육이 모든 교육에 전제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인간 관계에서나 당면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적의하게 대응 처리할 수 있는 이성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하는 마음이 없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이기심이 없다"는 공자의 절사(絶四)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공자는 시서예악(詩書禮樂) 등을 교재로 가르쳤으며, 또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공문사과(孔門四科)라고 이르듯이 덕행(德行)·언어(言語)·정사(政事)·문학(文學)으로 나누어 가르쳤다. 공자는 서책에 의한 교육을 하였지만, 그 근본 취지에서는 그것이 다만 지식의 탐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의 인간 도리를 익히는 일을 중시하였다.
유교의 기본 교과는 원래 주대(周代)의 육덕(六德:知·仁·聖·義·忠·和)·육행(六行:孝·友·睦··任·恤)·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의 향삼물(鄕三物)과 관련을 갖는 것이었으나, 송대(宋代)에 이르러서는 사서(四書)를 경전으로 높였으며, 오경(五經)보다도 먼저 사서를 읽도록 하였다. 공자는 스승으로서 먼저 모범을 보임으로써 제자들을 본받게 하였으며,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탐구하고 연마하는 정신을 길러주는 계발적 교육방법을 취하였다.
공자는 제자들의 개성과 자질에 따라 그에 합당한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를 일러 '사람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 한다' 혹은 '재질에 따라 가르침을 베푼다'라고 하였다. 유교에서는 박문(博文)·약례(約禮)라 하여 널리 배워서 고금을 통하고 문물제도 등 객관적 사실을 탐구하여 견문을 넓힐 것과 이것이 단순한 지식의 파편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집약정리하고 수렴음미하여 체인함으로써 실천을 통하여 행할 수 있기를 강조한다.
공자는 스스로 경험적으로 많은 것을 배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하여 하나로 꿰뚫어 안다고 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평시에는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즉 형이하의 구체적이고 비근한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높은 진리에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도 유교의 교육 이념에 기초하였는데, 그 중심은 인성교육에 있었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효경(孝經)』이 초학자의 교재로 널리 채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소학(小學)』이 중시되었으며, 중엽 이후에는 우리의 선현에 의해 저술된 동몽선습(童蒙先習)』·『격몽요결(擊蒙要訣)』과 사서오경의 순서로 가르쳤다.
나는 위의 본문중에 유교 문화에 불교의 사상이 믹싱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본문을 능통한다면 바로 불교의 교리속으로 들어갈수있다고 본다..
주책없이 남에글을 펌질하여 늘어놓았읍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무심정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멍텅이님~ 한국사람들 다 무신론자라고 하지만 다 애국자요 유교주의자입니다.
사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라는 말이 새삼 되새겨지는데요..
정치와 아이들 교육문제..그리고 이웃들간의 화목..
무엇보다도 노인문제도
동별로 참으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입니다.
다행히 동중에 저희 소요동이 소요산, 마차산을 끼고 있어서
각종 문화행사와 의식이 그래도 깨어있는것 같은데요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알고보면 지독한 유교 골수분자입니다.
실히
가끔씩 스님과 토론하고 언쟁할때는
스님은 현실적, 실용적인데
저는 체면이나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