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즈음 생각지도 못한 일로 마음이 묶여 힘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의 차 문제입니다. 처음 지체들과의 기도 감동을 따라 신청했던 차량이 1년이 지나도 언제 나올지 감감 무소식이어서 갈등하기 시작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주님께 여쭤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신청했던 중간 크기의 차량이 여러 지체들의 기도감동과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점점 주님께서 SUV가 아닌 세단 쪽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차의 하차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를 드러내실 때에 이 차량을 주님의 표적으로 사용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에 더 확실하게 배우는 진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일과 내 자신이 결정하고 이루는 일이 너무나 다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내 천부께서 심지 아니한 것마다 뽑히울 것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우리가 결정하고 행한 일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받지 아니하시고 기뻐하시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마땅히 그리스도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되기 위하여 사라도 리브가도 레아도 라헬도 같은 피를 나눈 혈족에서 나온 신부들이었습니다.
그 행한 일의 상급과 보상도 너무나 다릅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삶에 진정한 성장과 보상의 축복이 없이 힘들게 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라는 말의 의미도 점점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온전히 주님을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지 그 분과 상관없이 내가 훌륭한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코로나를 이기고 이곳 송도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밤낮 주님께 여쭙고 의지함으로 그 분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부흥성회의 축복도 저의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차량을 정하는 것도 내 원함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다 보니 내 현실과 형편과 너무 다른 차량을 지목하심에 내 자의식이 눌리고 부담스러워 집니다. 내 자신의 의식으로 돌아와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또한번 내 자의식의 한계를 넓히시는듯 합니다만 이 산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