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시간 영어와 노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재미가 붙었다는 말은 그동안은 재미가 없었다는 말? 그랬다. 아니, 재미가 없었다기보다는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영문이 함의하는 것을 백 퍼센트 잡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 말로 옮기고 나면 맞지 않은 옷을 입혀 놓은 것처럼 어딘지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결국은 실패를 수 없이 반복한 뒤에야 백 퍼센트까지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한 단락의 문장이 눈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마침 오늘 공부한 영문의 제목도 실패에 관한 것이다.
On failure
실패에 대하여
"If you failed nine times, you've tried nine times," says an old Tibetan saying in a restaurant I visited recently. Last year I submitted a short story to a literary contest in a local newspaper. Sadly, my story wasn't chosen. Up until now, I've submitted many of my manuscripts to numerous literary contests. I've now realized that the number of times I failed far exceeds the number of times I've succeeded. Nonetheless, I still get that rush of excitement waiting for the results after every contest I submit to. I relish those moments of unpredictability.
"당신이 9번 실패하면 9번 시도한 셈이다." 최근에 방문한 한 식당에서 본 티베트 속담이다. 작년에 나는 지역 신문 문학 작품 응모에 단편소설을 제출했다. 슬프게도 내 소설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원고를 수많은 문학 작품 응모에 제출했다. 실패한 횟수가 성공한 횟수보다 크게 웃도는 것을 이제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작품 응모 후에 결과를 기다리는 흥분의 돌진을 감행한다. 나는 그 예측할 수없는 순간들을 즐긴다.
In the past, I admit that I felt discouraged when my work was not selected. These days, if my manuscript isn't chosen, I congratulate the prize winner in my heart and pick up my pencil once again. I try my best not to get too attached to the result and move on. Instead, I consider these times to be fresh opportunities to write something new. Failure is not always bad. Once I participated in a poetry contest. My poem wasn't selected, however, I revised it and included it in my own book at a later stage. Over the long run, all those experiences helped me to publish my very own book.
과거엔, 내 작품이 선택되지 않았을 때 낙담했음을 나는 시인한다. 요즘엔, 내 작품이 선택되지 않으면 수상자를 축하해주고 다시 한 번 연필을 잡는다. 나는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다음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대신, 나는 이 시기가 새로운 것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긴다. 실패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시 작품을 응모했다. 나의 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수정해서 나중에 내 책에 포함시켰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모든 경험을 통해 나만의 책을 출판 할 수 있었다.
If we succeed in whatever we try, success will not bring much joy. Success is relative, and is really determined by the satisfaction we draw from it. If we try 100 times and fail 100 times, our frustration may be great. However, the reality remains that the more we try, the more we succeed. Last year I published a book of illustrated essays. My manuscript was selected in an essay contest of a non-profit foundation, which then funded the publication of my book.
우리가 시도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한다면, 성공으로 큰 기쁨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성공은 상대적이며, 실제로 우리가 얻는 만족도에 의해 결정된다. 100번 시도하고 100번 실패하면 좌절감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시도할수록 더 많은 성공을 거두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 나는 삽화가 있는 수필집을 간행했다. 나의 원고는 비영리 재단의 에세이 공모전에서 당선되었고, 책 출판에 자금을 지원 받았다.
Because of my experiences of sending my manuscripts to many publishers and being rejected, I know and respect how difficult it is to publish a book. Thanks to the experiences of failure, I was all the more grateful to be able to publish the book through a publishing company, with the help of the foundation. We may fail many times, but as long as we don't give up and keep writing, our work will reach the hands of readers someday. You just have to believe in yourself and push through.
원고를 많은 출판사에게 보내고 거부당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존중하게 되었다. 실패의 경험 덕분에 재단의 도움을 받아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낼 수 있는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수없이 실패할 수 있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는 한, 우리의 작품은 언젠가 독자의 손에 닿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If we repeatedly fail, we may grow uneasy, with our self-confidence decreasing. Sometimes anxiety seems to overwhelm us. It is a powerful energy. But what if we can use and harness this energy? Imagine the outcome if we can freely harness the vast source of energy that we waste on anxiety, and use it more productively? We will be able to pursue what we really want to accomplish in our lives.
실패를 계속하게 되면 자신감이 줄어들면서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때때로 불안이 우리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강력한 에너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에너지를 자유롭게 이용하고 지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불안으로 낭비하는 방대한 에너지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더 생산적으로 사용했을 때의 결과를 상상해보라. 우리는 인생에서 실제로 성취하고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Many of us have avoided facing our anxiety and potential that exists just beyond our grasp, escaping into the Internet or television when such feelings of unease arise. Nevertheless, what will happen if we examine the root causes of our anxiety when we are anxious? What exists beyond these feelings of anxiety? We might have been afraid of tapping into our true potential. We need to keep asking ourselves who we really are and what we can become.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불안감이 생길 때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출구로 삼고 우리의 손아귀 너머에서 존재하는 불안과 잠재력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곤 한다. 어쨌거나, 우리가 불안해 할 때 그 근심의 뿌리를 탐색해 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불안감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우리는 진정한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필요가 있다.
Let's begin again even if we fail countless times. Although we can't always succeed, we won't always fail. Becoming oneself is beautiful.
수없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해보자. 항상 성공할 수는 없지만 항상 실패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끝)
<비하인드 스토리>
다음 영문을 예로 들어보자.
I've now realized that the number of times I failed far exceeds the number of times I've succeeded.
(나는 지금 깨닫고 있다/내가 실패한 횟수가/훨씬 초과한다는 것을/내가 성공한 횟수보다)
이를 우리 말 어순으로 정리하면
“나는 내가 실패한 횟수가 내가 성공한 횟수보다 훨씬 초과한다는 것을 나는 지금 깨닫고 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어색하다. 다섯 번의 실패 끝에 얻은 우리말 문장은 요거다.
실패한 횟수가 성공한 횟수보다 크게 웃도는 것을 이제 실감한다.
다음은 실패의 과정에서 출몰한 문장들이다.
내가 실패한 횟수가 성공한 횟수를 훨씬 초과한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실패한 횟수가 성공한 횟수보다 훨씬 초과하고 있다.
실패한 횟수가 성공한 횟수보다 크게 웃돈다.
실패한 횟수가 성공한 횟수보다 크게 웃도는 것을 이제 실감한다.
첫댓글 글 내용 마음에 담아 갑니다!
성권아우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글이었나 보이. 딱 한 줄로 댓글을 단 것이 더 진지해보여서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