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4
8. 서편제(이청준) 줄거리
전라도 보성땅 소릿재 주막의 주인은 남도소리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소리꾼 여인이다. 어느 날 이 주막에 북장단을 치는 사내가 소릿재 여인 이야기를 듣고 손님으로 찾아든다. 손님의 재촉에 의해 소리를 뽑아대는 그 여인은, 춘향가, 수궁가 등을 열창하면서 소리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기보다 앞서 소리를 하다가 죽은 소리꾼 아비의 사연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놓는다.
어느 해 가을, 소리를 하는 쉰 살이 넘은 아비와 열다섯 정도의 어린 딸아이가 이곳에 이주하여 소리를 하며 살았는데, 소리꾼 아비는 병들어 죽는다. 그 소리꾼 아비의 소리는 어린 딸에게 전승되었는데, 그 딸의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소리꾼 아비의 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주막집 여인은 그 딸한테서 다시 소리를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야기의 진행은 애당초 소릿재 주막으로 돌아간다. 그 주막에 들른 손님이 소리꾼 아비의 의붓아들이고, 어린 딸 역시 의붓동생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친어미를 소리꾼 아비가 죽였다고 오인하는 데서 그 의붓아들의 증오감이 싹튼다. 사실 친어미는 딸을 낳다가 심한 복통 끝에 죽은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그는 어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의붓아비와 그 소리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를 갖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덩어리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살의는 현실적으로 무력하게 되어, 그 자신은 끝내 의붓아비한테서 떠나고 만다. 그가 떠난 후, 의붓아비는 딸의 눈을 멀게 한다. 그런데 딸의 눈을 멀 게 한 것은 좋은 소리를 가꾸기 위해 가슴에 말 못할 한을 심어줘야 했을 거라는 보다 큰 가능성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뿌리깊은나무』2호(1976. 4.)
핵심 정리
갈래 : 연작 소설
배경 : 시간(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공간(남도)
성격 : 회고적. 정한적(情恨的)
문체 : 대화체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단일 구성. 인물들의 대화 속에 과거의 사건이 회상 형식으로 삽입 주제 : 삶의 허무와 예술가의 비극적 정한(情恨), 인간으로서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한의 표출과 그 승화
등장인물
사내 : 어릴 적에 헤어진 누이동생을 찾아 방황하는 인물. 동적 인물
주막집 여인 : 우연히 소리를 배우고 주막을 운영하면서 소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함 .정적 인물
소리꾼 아비 : 소리를 위해 한 평생을 떠돌고, 예술을 위해 딸의 눈까지 멀게 하는 비극적, 정적 인물
소리꾼 여자 : 아버지에 의해 눈이 멀었음에도 이를 판소리의 한(恨)으로 승화시킨 한 많은 여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이청준의 <남도 사람>이라는 연작 소설집 중의 한 편이다. <남도 사람>에는 “서편제”(1976),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나시 태어나는 말” 등이 실려 있다.
영화 “서편제”의 원작은 소설 “서편제”에다 이 작품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소리의 빛”을 합치고, 거기에다 새로운 내용까지 덧붙여 각색한 것이다. 어쨌든 <남도 사람> 연작은, 남도의 한(恨)과 소리 혹은 현실의 억압과 이를 초월하려는 예술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서편제”는 한 많은 일생을 살아가는 소리꾼을 등장시켜, 현실과 예술 사이에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비극성을 한이라는 한국적 정서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소극적 체념으로서의 한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화해와 사랑을 지향하는 예술혼(藝術魂)으로 승화시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여로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행은 회귀의 과정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떠도는 여행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물(主人物)들이 모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이 곳 저 곳 방랑하는 모습은 그와 같은 여행의 성격을 확연히 보여 준다.
의부의 아들(동생)을 찾아다니는 사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 보면, 그의 여행은 표면적으로 동생을 찾아다니는 과정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리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 역시 무한히 떠돎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을 떠돌면서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무함과 한을 달래 주고 풀어 준다. 때문에 여로는 용서와 사랑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서편제>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가슴 아픈 한과 여기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리꾼 아비의 죽음과 그 딸의 실명이 비극의 정점을 이루는데, 실명의 원인에서 야기되는 두 가지 대비적 관계는 '원한'과 '한'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딸이 아비를 용서함으로써 원한은 한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한(恨)에 대한 의식은 소리와 어우러져 작품 <서편제>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해내며, 주제에 직결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의 속편은 <소리의 빛>이다. 연작집 『남도사람』에 수록된 <서편제>와 <소리의 빛>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햇덩이'다. '햇덩이'는 희망적, 긍정적 표상이라기보다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한의 표출과 같은 뜨거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처럼 소리의 빛을 햇덩이에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소리란 것이 바로 도덕적 인습적인 한의 표출이며, 서러움과 원한에서 승화된 한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서편제>는 작가 이청준이 즐겨 다룬 전통적 장인(匠人)의 토속적 애정에 관심을 가진 소설이다. <매잡이>에서 '매잡이', <줄>에서의 '줄광대', 그리고 <서편제>에서 '판소리 속에 사는 소리꾼'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이청준은 문명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우리 것에 대한 애정 어린 향수와 수호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다양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